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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Sep 18. 2024

인고를 거치지 않는 안락은 없다.

관악산 산행기 240918



글을 쓰기 위한 경험은 인위적이지만 경험을 느낀 점을 글로 옮기는 일은 기울어진 달이 다시 차오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 마련이다.

비록 그 언어가 가시적인 사물을 묘사하기 위해 발전해 온 것일지라도 우리는 비가시적인 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바로 그 언어를 필요충분조건으로 사용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플라톤이 이데아와 일자를 설명하기 위해 공간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의 철학을 명증하게 이해하기 위해 철학도는 언어가 가진 한계를 양쪽 귀 사이에 짊어져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플라톤을 이해하지 못한다. 플라톤을 오해한 채 그를 신비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힌 고대의 한 인간으로 전락시킨다면 그는 철학도로서의 자질을 의심해야만 하며 철학을 하느니 차라리 형이하학적인 자신의 성향을 과감히 인정하며 빛과 색의 세계를 향해 진로를 변경하는 것이 그에게 유리할 것이다.

수십 년 전 오늘은 내게 생명이 부여된 날이었다. 이런 날을 수십 년째 독특한 날로 기린다는 것은 어쩌면 낡은 아집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그저 내게 부여된 여러 날들의 하루와 다르지 않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 위해 어김없이 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문제는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렇게 혼자서 전투적으로 산행에 나선 것은 약 일곱 달 만인 것으로 체력에 관해서 자신할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이었다. 그동안은 혼자가 아닌 상태로 동행자의 물리적인 상태며 심리적인 상태를 모두 살피는 시간이었기에 나 자신만의 산행을 할 수 없었다.

또 다른 하나는 추석임에도 불구하고 기온이 섭씨 33도에 육박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추석이라도 33도에 이르는 날씨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수밖에 없었고 폭염으로 인해 실외활동에 주의를 당부하는 행정부의 문자가 없을 수가 없었다.

예전의 추석이었다면 폭염주의보는커녕 해가 지면 찬바람이 불어 조석 간의 상당한 일교차로 인해 감기를 걱정할 때였다. 그렇지만 오늘의 기온은 "개미가 집으로 기어 들어오는 계절이 되었다"라는 문장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무더웠다.

오후 두 시 반경에 시작한 산행의 첫 발걸음은 상쾌했다. 연변장에서 기초훈련을 받는 병사들의 기상찬 걸음이었다고 말할 만했다.

하지만 그러한 기상은 채 45분을 넘기지 못했다. 관악산 다람쥐라는 아호로 불렸을 때 관악산 곳곳에 이를 때마다 경과된 시간을 머릿속에 담고 다녔었다.


항상 시간을 체크하며 산속을 헤집고 다녔던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습관처럼 이 지점까지는 몇 분이나 걸렸지라며 시계를 확인하곤 했다.

아무리 오랜만이라고 해도 자신의 체력을 시험하기 위해 항상 55분 만에 도착하는 그곳에 오늘도 55분 만에 도착하려고 온힘을 쏟아부었다. 다행히도 1차적 목표는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55분 만에 휴식터에 앉아 가뿐 호흡을 다스리고 있을 때 이미 모든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그래서 바위 위에 앉아서 어쩌면 나는 이미 체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자인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떤 철학자는 두 사물이 같은 공간을 동시에 차지하고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산행을 시작하고 최초의 55분 동안은 완등 후의 성취감과 홀가분함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현재 한계에 도달한 체력적 여건을 애써 무시하고 발걸음을 서두르곤 했다.

다시 말해서 나는 포기하고 싶은 심정을 성취감에 대한 기대감으로 무마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체력이 바닥을 드러낸 순간 나는 오로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납덩이처럼 무거운 발을 하나하나 옮기는 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정상까지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서 온정신을 집중하고 집중했다.



구슬땀이 이마와 팔뚝에 맺히면서 온몸이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처럼 축 쳐져 버렸다. 한여름에 산길을 달리고 나면 상의는 물론이고 속옷까지 모두 축축해지곤 했었는데 추석에도 여전히 등산복이 모두 젖어버리고 말았다.

7개월 동안 나태하게 지낸 일상이 내게 나태의 값을 모조리 치르게 하고 있었다. 내 다리를 붙잡고 숨구멍 앞에서 일제 순사처럼 지키고 서 있던 그 나태라는 녀석은 대가를 혹독히 치를 준비를 하라며 이를 갈고 있는 암흑의 칼잡이처럼 느껴졌었다.

등산을 인생에 비유하곤 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그 속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속담을 무시하거나 부정할 방법이 달리 없었다. 나로서도 도리가 없었다.

인생을 산행에 비유하는 건 산행길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구성된, 단순히 물리적인 유사성으로 인한  때문만은 아니다. 산행이 인생과 같다는 건 산행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삶의 무대에 그대로 옮겨서 응용할 수 있다는 연계성 때문이었다.

평지길이 아니라 굴곡진 산길을 평속 4km 이상의 속도로 버틸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인생에서 고군분투하는 실패의 순간마다 고비를 넘기게 하는 밑거름이자 힘의 원천으로 그대로 작용하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산행은 인생의 축소판이 된다. 단지 굴곡이 있다는 점이 비슷해서가 아니다.

흔히들 지고 있다가 막판에 경기를 뒤집어 금메달을 따내는 경기를 예술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건 고작해야 감정의 기복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한 것으로 극치의 경지와 같은 예술에 자신의 인생을 애써서 일치시킴으로써 삶의 고상함을 끌어낸 억지에 불과한 것이다. 인생이 굴곡진 것이 예술과 같다고 망하는 가설은 말 그대로 가설에 불고한 것이다.

하나의 스포츠 경기가 예술이 되기 위해선 굴곡이 아니라 인간적 문제가 우주 차원에서 보편성을 획득해야만 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평소보다 10분이나 시간을 쓴 뒤에 간신히 연주대에 올랐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맥심 커피믹스 두 봉지를 스테인리스컵에 털어놓고 온수를 부었다.

달콤하고 그윽한 커피 향이 콧등을 찌르고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75분 동안 악전고투했던  나를 위로해주었다.


고생했다고, 잘 버텨주었다고, 그렇게 힘들었어도 까짓껏 인생의 짧은 고비를 넘긴 것 아니냐며, 75분 동안 이를 악 물고 버틴 걸 잘 기억해 두라며 덕담을 건네주었다.

그제서 나는 안락과 안빈의 길로 접어들었다. 역시나 인고를 거치지 않는 안락은 없다.

인고를 거치지 않는 안락이 없다는 말이 진리일까? 진리인지 아닌지 검증하기 위해 잠시 헤르만 헤세를 떠올려 보았다.

안락은 인고를 거쳐야만 한다라고 앞 문장을 거꾸로 써서 바라봤다. 한참을 들여다봤지만 거꾸로 쓴 문장에서도 반박할 여지를 찾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진리다. 인고를 거치지 않은 안락이 없다는 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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