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형이상학이란 용어는 평상시 자주 듣는 말이 아닌 만큼 우리에겐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알쏭달쏭한 무엇을 들여다볼 때에는 기본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떤 용어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은 과연 무엇인가?
언어가 갖는 의미의 최소 단위는 음절이다. 따라서 낯선 언어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음절 하니하나를 뜯어서 살펴봐야 한다.
형이상학은 형태를 뛰어넘는, 형상 그 위에 있는 무엇이다. 형태와 형상은 눈에 보이는 실재를 일컫는다.
눈에 보이는 실재를 뛰어넘는 무엇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시 말해 관념과 다름이 아니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관념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다시 관념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그렇다고 기죽지 말자. 물음표가 붙으면 그 물음표에 집중한 채 몰입하면 언젠가는 답을 찾기 마련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관념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의 눈은 언제나 세계를 향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시각을 담당하는 기관인 눈은 뇌가 진화한 최후의 결과이다.
눈은 곧 뇌라는 기관의 일부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생각과 사유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한 눈이 바라보는 세계, 뇌의 일부인 눈이 바라보는 세계 그것은 바로 관념과 동일하다. 따라서 관념은 세상을 바라보는 망루이다.
어떤 철학자가 말했듯이 인간은 시각이라는 감각을 통해 존재론적인 갈망을 투영한다. 갈망하는 그 무엇을 뚫어지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눈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눈길의 마지막 발걸음이 결국 그 자신이라는 의미이다.
즉 관념은 세계관이며 그 사람 인생의 대변자이다. 또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먼저 말해 본 적이 없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관념의 반영이며, 관념은 그 사람의 인생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언어가 내포한 세계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언어가 세계관의 대변인이다.
언어는 비록 표면적으로는 음성학적인 분야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철학의 한 분야를 이루고 있다. 그러한 사유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통제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인생이자 삶이며 구체적 삶의 양태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인생에 관한 것이자 관념적이며 세계관에 관한 그 무엇이다.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이 꿈꾸고 희망하며 노력하는 그 모든 것의 대리인이 바로 형이상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