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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그 맥락에 관하여

by 이각형


해외로 출장을 다녔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6주라는 출장 기간이 2달을 주기로 반복되곤 했었습니다.

6주 동안 해외에 체류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2주 동안 머물다가 다시 해외로 나가 6주를 머물곤 했었습니다. 따라서 해외 파트너를 2주 동안은 마주칠 기회가 없던 것입니다.

그렇게 6주와 2주라는 주기가 반복되다가 서울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해외로 출장을 나갔을 때 오랜만에 현지 직원을 로비에서 만났을 때 long time no see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악수를 청한 대상은 남자 직원이었는데요.

그렇게 악수를 나누고 각자의 사무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남자 직원이 제게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뭐라고 말했냐면 너 아까 왜 나한테 악수를 청했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조금 전에 제 앞에 앉았던 과장님께서 겪은 LGBT에 관한 얘기를 듣고 과장님께 제가 겪었던 성적 소수자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자, 여러분 제 얘기를 이해하셨습니까? 이해가 잘 안 되시죠? 악수를 청한 이유를 묻는 게 왜 성적 소수자에 관한 것인지를 이해하셨습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을 더 드리기 전에 방금 전의 이야기를 더 나누어 여러분들께서 맥락을 이해하시게끔 하는 것이 옳은 줄 압니다. 저의 해외 체류 경험을 과장님에게 꺼내게 된 것은 과장님이 겪은 성적 소수자에 관한 에피소드와 관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장님이 학창 시절에 1년 동안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로는 독일인 친구와 영국인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과장님은 친구들과 평범하게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축구를 하게 되었다는데요.

과장님이 넘어졌을 때 영국인 친구가 일으켜 세워주려고 다가왔습니다. 보통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울 때 악수하듯이 손을 잡고 잡아당기기 마련인데요.

영국인 친구는 그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과장님에게 건네기만 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친구가 성적 소수자인 것을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동성애자는 동성과 신체 접촉을 하게 될 때에 보편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마찬가지로 악수를 청했지만 왜 악수를 청했냐고 뜬금없이 물어보는 남자직원에게 이상한 느낌을 받은 제 경험이 떠올랐었던 겁니다.

다시 말해 동성애자들은 성적 관심을 나타낼 수 있는 동성과 신체적 접촉을 할 때 보편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거나 보편적 방식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남자들끼리 나누는 그 흔한 악수조차도 기피하거나 남다른 의미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일화를 꺼내게 된 동기를 이제 조금 이해하실 수 있으시죠?

대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한 길을 모색하곤 했던 인간은 진화론적 과정을 거친 결과 인과론적인 사고방식을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인과론적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이해하기가 쉽다는 점입니다.

왜 이해가 잘 될까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게 이어져 있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맥락입니다. 인간은 맹수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맥락이 담긴 이야기를 구전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언어는 맥락을 이어나가는 방법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래야만 이해가 빠르고 쉽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저의 겉모습을 묘사하는 글을 여러분들께 드린다면 그 글을 바탕으로 저의 모습을 쉽게 그려내실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제가 하루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서술하는 글을 보여드렸을 때 이해가 더 빠를까요?

아마도 모르긴 해도 후자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김새를 묘사하는 글은 맥락이 없는 반면에 제가 하루 동안 한 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성되어 시간이라는 맥락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맥락에 관한 것입니다. 맥락은 이해의 중심축인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MBTI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MBTI를 알면 마치 그 사람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아냈다는 듯이 좋아합니다.

하지만 MBTI로 그 사람의 모습을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은 어떤 흐름에 좌우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그 유명한 대전제가 붙는 것입니다.

어떤 특수한 맥락적 환경에서 MBTI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평소와 같은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볼 수 없는 맥락이 그 사람에게서 툭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MBTI를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재미로만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을 알고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MBTI는 특수한 환경적 맥락에서는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됩니다.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거시적 관점에 의한 결론일 뿐이지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을 관통하는 사람은 개별적입니다.

또한 개별적 사건은 특수성을 띄기 마련이라서 욕망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하면 비슷해 보일지라도 실질적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개인의 의사결정은 당시의 상황적 맥락에 좌우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다시 말해 개별적 상황은 맥락이라는 특수성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결국 MBTI는 현재 시점에서 그 사람의 성격을 편미분 하는 단편적인 시점에 한하여 그나마 합리적인 예측가능성을 시사할 뿐인 것입니다. 반면에 사회적 맥락은 인간의 사회성이라는 중력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맥락은 한 사람을 이해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맥락 또한 특수성이 있습니다.

때로는 맥락의 영향력을 거부하는 독립적인 주체성을 지닌 인물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중력 바깥에 존재하는 것만 같은 이런 인물에 관해서는 맥락에 의존할 때 범실의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인물에 관해선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예측가능성은 개별성과 특수성이라는 속성을 내포하고 있는 하나의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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