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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이라는 실재

by 이각형


관념만큼 현실적인 것은 없다. 생각에 불과한 관념이 어떻게 현실적일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반문하는 이들이여, 당신들도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만 한다. 당신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야만 한다.

그러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관념은 결단코 현실적이다.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저 허구에 불과한 영상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 전이가 가능한 것이 바로 인간은 관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상과 우리는 접촉점이 없다. 피부로 느껴지거나 향기를 맡거나 촉감이라곤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 영상을 보면서 감정적 동화가 가능한 이유는 상상력이라는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되게 하는 본질적 속성 덕분이다. 인간적인 것은 우리가 살아본 현실이라는 공통분모에 기인한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개개인은 헌법에 동의한다.

동의, 함께 뜻을 모았다는 건 물리적으로 한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단지 같은 생각을 가진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공통분모를 지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협력이라는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동물과 구별될 수 있는 인간이 인간이 되게 하는 그 무엇인 것이다.

본질이란 바로 무엇이 그 무엇이 되게 하는 그 무엇이다. 인간은 상상력과 협력에 의해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정신(!)에 동의하지 않는 인간은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기 어려워진다. 대표적인 인간 군상을 우리가 지금 경멸하고 있다.

단지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우리의 삶을 위협했던 그 인간이야말로 상상력과 협력의 부재에 힘입어 그야말로 천인이 공노할 일을 저질렀다. 극우주의라는 늪에 빠진 인간들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

그들은 민주주의 정신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는 12월 어느 날 밤을 지새웠고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부둥켜 울부짖었다.

그만큼 관념이 현실성이라는 실재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공동체가 동의한 사회 시스템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관념의 중요한 위치 때문에 괴테는 우리에게 이러한 교훈이자 당부를 남겼던 것이다.

생각이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개개인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이 어떤 관념에 젖어 있는지 매 순간마다 파악해야 하며, 그렇게 발견한 관념 그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대한민국이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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