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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즈음에

by 이각형

세밑이 다가오면서 추위도 기세를 점점 더해가는 것만 같다. 어젯밤에는 코끝이 시릴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었다.



시끄럽던 밤이 지나고 귓볼을 스치던 바람소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한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북쪽에 터를 잡은 이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이 깊어지는 일에 한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손끝이 시린 일엔 여전히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본성이 자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자르는 일에는 무관심한 터라 세밑이라고 특별한 심상에 젖어드는 일은 평소 나와는 먼 일이라고 자인하고 있었다. 서양의 명절이 멀리 떨어진 동쪽으로 흘러들어왔어도 성인이 되고나서부터 내게 주는 의미라고는 하루 정도의 숨 돌릴 휴식시간이라는 정도였다.



거리를 채색하는 온갖 화려한 색상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마치 숲 속 산책로를 걸어가듯이 끝에서 끝으로 지나가는 대수롭지 않은 장식물들이다. 계절의 변화가 인간사에도 그 손을 뻗쳐 가지각색의 모습들이 나타나는 일에도 호응할 여지도 없다.



다만 겨울이 겨울다워지면서 여름에 들떠있던 마음은 반드시 겨울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놓치지 않고 있다. 사계절의 의미란 결국 삶에서 불가피한 변화를 전적으로 수용하라는 데에 있는 것만 같다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며 겨우 그 의미를 알아차리게 된다.



호사트르의 노부부 그림을 감상해야 할 사람은 정작 젊은이들이라는 데에 예술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불변을 꿈꾸는 일은 필변에서 나오는 법이니 이러한 역설 그 자체가 삶의 본질적 속성이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나의 미래를 짐작하고, 슬하에 거두고 있는 아이를 보며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자식을 키우는 사람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손녀딸을 안는 것은 한참 생계를 책임지느라 놓쳐버렸던 딸의 어린 시절을 늙은 가슴으로 안아주는 일이라고도 한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곳에선 언제나 소멸이 있다고도 한다. 아무리 미래를 계획해 봤자 그 미래를 그려나가는 현재는 덧없게만 느껴지기도 하며 그마저도 속절없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멸의 인간이 지닌 본성 덕분에 언제나 꿈을 그리고 산다. 하루하루에 만족하라는 소박한 꿈에서부터 언젠간 나의 거울이 세상을 비출지도 모를 것이라는 부푼 꿈까지 아우른 시간이 삶을 구성하고 있다.



삶을 지탱하는 루틴이라고 불리는 습관을 새롭게 만들자는 거창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한 번도 안 한 것을 한 번이라도 해보고, 두어 번 해본 것들은 수십 번 시도하는 일로 확장하기만 해도 충분할지 모른다.



이토록 나의 그림은 언제나 생계전선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다. 생계 그 자체가 내 삶이 아니듯이.



생계를 위한 활동보다 분명히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다. 예민한 사람들만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기이한 행동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구든 자신의 마음속에 꿈 하나 정도는 품고 살기 마련일 테니까. 다만 그 그림의 내용이 각자 다를 뿐이 아닌가.



제각기의 다른 그림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것 아닌가. 세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전후를 두리번거릴지언정 내 그림은 내 몫이다.



비록 하루하루 연속되는 날들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일에 무관심하다고 해도 이처럼 가끔씩 한눈을 팔아가며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펼치는 일에는 어떤 위해함도 없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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