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중순 무렵, 불볕더위를 넘어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무렵 같이 일하던 직원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손 하나라도 아쉬운 마당에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그 뒷모습이 못내 아쉬운 나머지 환송회 자리를 마련했다.
떠나는 자는 좀처럼 말이 없는 법인데 구태여 앉은자리에서 일으켜 세우고 한마디 말을 남기게 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 한마디가 10년 전 친구에게 다짐했던 나의 약속과 판박이처럼 빼닮아서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없었다.
인재 욕심이 많았던 조조가 음흉한 계략을 펼쳐서 유비라는 덕장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서서가 강가까지 배웅하러 나온 군주에게 남긴 말이었다. 비록 몸은 군주의 곁을 떠나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한결같이 당신 곁에 남을 것이다.
그 약조에 대한 증거로써 자신은 결단코 조조를 위해 작은 책략조차도 권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유비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노모를 모시기 위해 떠나는 당신과의 이별이 이토록 가슴 아픈 일이니 지금 내 가슴이 무너질 것만 같다고 말했다.
한사코 배웅을 마다했던 서서의 가슴에 도리어 큰 짐을 떠앉게 했던 유비에게 약조를 한 서서의 고백이었다. 사무실을 떠나는 직원이 서서의 말을 있는 그대로 진솔한 어조로 우리에게 남겼다.
이 일화를 빗대어 나도 10년 전에 이 조직을 떠난 동기에게 비록 내가 몸은 여기에 남아 있지만 서서와 같은 마음으로 작은 아이디어조차 이 조직에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실제로 나는 지난 10년간 새로이 몸담게 된 이 조직을 위해 나의 정신을 할애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렇다고 일을 팽개치고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이름 세 글자에 먹칠하지 않을 정도로만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해내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소싯적에는 고참급에서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면 비겁한 일이라며 그 사람의 안주한 태도에 반기를 들기도 했었다. 그랬던 자신이 정작 비슷한 시기에 이르자 그들과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자각했을 때 그 자괴감이란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나의 저급한 자세에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이 조직은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표본으로써 자기모순을 밥 먹듯이 일삼는 비겁함의 대표주자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특징짓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서관이다. 이 건물 7층에는 도서관이 있다.
영리법인이 자신의 건물에 도서관을 마련했다면 이는 그 영리법인이 독서에 관해 상당한 관심을 지니고 있음을 표출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하드웨어에 불과한 도서관을 마련해 놓고선 직원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눈을 흘기면서 뒷말을 남기곤 한다.
그 실례로 업무가 시작되기 전까지 책을 읽고 있는 직원이 있다면서 이런 모습은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사명의식으로 업무에 임하는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던 일개 부서의 장이 남긴 증언을 들 수 있다. 업무시간 외 휴게시간에 책을 읽고 있는 건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직원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반조직적인 행위라고 규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BBC 뉴스를 PC에 틀어놓기 일쑤였다. 그것도 우리 조직은 PC에선 외부 인터넷이 막혀 있기 때문에 BBC 라디오를 연결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장이라는 직급을 십분 활용해 외부망을 내부망과 연결시켜 놓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부장은 결코 모국어로 된 책은 손으로 펼쳐 본 적이 없다. 해외 유학의 경험이 없는 작자가 외국어로 표기된 글만 눈에 담았으니 그 참뜻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
이처럼 지적인 겸손이 없는 이는 자신의 위상을 외부에 걸어놓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 군상의 주요한 특징은 허영심이 채워지지 않는 순간마다 험담을 입에 올리기 바쁘기 마련이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외부의 시선은 모조리 적개심의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적인 겸손이 부족한 자는 자신의 성과를 내세움으로써 위상을 공고히 구축할 방법만을 모색할 따름이다.
그리고 부장이라는 상대적으로 고위급인 직급의 남용도 문제지만 그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나는 업무시간에 BBC 라디오를 들을 정도로 너희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를 은연중에 드러내려는 속물근성을 가졌다는 게 큰 문제였다. 거기에 더해 자신이 하는 업무 외적인 행위는 정당화시킴과 더불어 자신의 휘하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그저 고개를 책상에 파묻힌 채 일만 해야 한다는 관념, 지배관념에 젖어 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런 식의 관념을 가진 인간들이 경영진의 주류를 형성했으니 도서관을 설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책을 읽고 있으면 놀고 있다고 간주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책에 대한 허영심과 위선적인 태도는 애서가에게 있어서 얼마나 경멸스러운 짓인지 모른다.
모름지기 애서가라면 책을 가까이는 것은 물론이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인생의 은사로 여김과 동시에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거대한 지적 존재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 사람을 동경해 마지않는 법이다.
그리고 지적인 거인 앞에서 언제나 몸을 바짝 엎드리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갖지 못한 지적인 허영심을 순식간에 눈치채고 만다. 또한 그는 반면교사보다는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영도자를 찾기에 급급하다.
반면교사에 포위된 애서가는 이토록 외로운 법이다. 아무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지성의 보고로 이동할 있는 환경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실재의 모순 앞에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