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정부과제는 공고가 뜨기 전에 시작된다

정책 흐름을 읽는 게 사업관리의 시작이다

by 우주문과

예산이 흐르는 방향을 먼저 봐야 한다

사업관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정부과제 공고가 올라오면 그때부터 움직이면 되는 줄 알았다.

공고를 보고, RFP를 분석하고, 제안서를 쓰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됐다. 정부 예산은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걸.

공고가 뜨기 전에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었고, 그 방향을 먼저 읽는 것이 사업관리의 시작이었다.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이 큰 그림을 그린다

우주산업의 정부과제는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에서 시작된다.

5년 단위로 수립되는 이 계획은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큰 로드맵을 제시한다. 어떤 기술을 개발할 것인지, 어느 시점까지 달성할 것인지, 예산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가 모두 여기에 담긴다.

처음에는 이 문서가 너무 방대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민간 우주산업 활성화', '기술자립도 제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 같은 표현들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이게 실제로 무슨 의미인지 감이 안 왔다.

하지만 몇 번 읽고 나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본계획에 나오는 키워드가, 몇 달 뒤 공고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발사체 고도화', '저궤도 위성통신', '우주부품 국산화' 같은 표현들이 기본계획에 있었고, 실제로 그 분야에 예산이 몰렸다.


과기정통부 주관에서 우주항공청 시대로

예전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우주기술 개발 과제를 주관했다.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에 따라 과기정통부가 기술개발 공고를 진행했고, 예산도 과기정통부 예산으로 집행됐다.

하지만 우주항공청이 개청 하면서 우주기술 개발은 우주항공청이 전담하게 됐다. 예산 규모도 커졌고, 과제 설계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았다.

정책 흐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연구개발 로드맵을 먼저 파악하는 것.


연초 부처 통합설명회는 놓치면 안 된다

매년 연초가 되면 각 부처에서 통합설명회를 연다.

우주항공청,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이 올해 연구개발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다.

처음에는 이 설명회가 단순한 행사인 줄 알았다.

'어차피 나중에 공고 나오면 다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직접 가보니 달랐다.

담당자들이 올해 중점 추진 과제를 소개하고, 예산 배분 방향을 설명하고,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공고문에는 나오지 않는 뉘앙스들이 여기서 나왔다.

"이 과제는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실증까지 포함됩니다."

"올해는 민간 주도형 과제를 확대할 예정입니다."

이런 말 한마디가 제안서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설명회 일정이 나오면 무조건 참석한다. 직접 가서 듣고, 질문하고, 담당자 명함도 받아온다.

당해 부처별 연구개발 로드맵을 여기서 파악해야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다.


수요조사가 사업의 시작점이다

정부과제는 공고가 나오기 전에 수요조사 단계가 있다.

"이런 기술이 필요하십니까?"

"이런 과제를 추진하면 참여하시겠습니까?"

정부나 전담기관이 산업계에 의견을 묻는 절차다.

처음에는 이게 형식적인 절차인 줄 알았다. 어차피 정부가 다 정해놓고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아니었다.

수요조사서를 제출해 선정되면, 우리가 제안한 기술이 실제 사업공고로 반영된다.

그런데 수요조사는 단순히 기술만 던지면 되는 게 아니었다.

기술개발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 것인지, 예산은 얼마나 필요한지, 대략적인 컨소시엄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까지 함께 작성해야 한다.

무작정 '이 기술 필요합니다'라고만 쓰면 안 된다.

이 기술이 정말 필요한 기술인지, 우리 회사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우주산업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물론 과제 공고가 나올 때 제안을 해도 수주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큰 흐름을 알아야 한다.

수요조사 단계부터 제대로 돌입해야 사업의 전반적인 흐름을 잡을 수 있다.


정책 흐름을 읽는 게 사업관리의 시작이다

지금은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펼쳐본다.

'올해 우주 예산이 어디로 흐르는지', '어떤 키워드가 반복되는지',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인지'.

부처 통합설명회 일정이 나오면 미리 체크해 두고, 수요조사 공문이 오면 전략적으로 대응한다.

이걸 먼저 보고 나면, 나중에 공고가 떴을 때 당황하지 않게 된다.

"아, 이거 예상했던 흐름이네. 우리 준비한 거 있으니까 바로 움직이자."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정부과제 사업관리는 단순히 공고를 보고 제안서를 쓰는 일이 아니다.

우주개발진흥 기본계획에서 큰 그림을 읽고, 부처별 로드맵을 파악하고, 수요조사부터 전략적으로 참여해 흐름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 흐름을 읽지 못하면, 늘 뒤늦게 쫓아가게 된다.

하지만 흐름을 먼저 보면, 기회는 먼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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