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 계획의 스토리를 비목으로 번역한다.
제안서 작성 중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 예산 설계다.
공고문을 보면 총 연구비 규모가 나온다.
'총 5억원'
처음에는 이 금액을 어떻게든 채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예산은 금액을 맞추는 게 아니라, 과제 수행 계획을 숫자로 증명하는 작업이란 걸 알게되었다.
정부과제 예산을 짜려면 가장 먼저 규정을 알아야 한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과 그 하위 법령인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사용기준이 기본이다.
처음 이 규정을 펼쳤을 때는 막막했다.
'이걸 언제 다 읽지?'
하지만 예산을 짜다 보니, 자주 찾게 되는 부분들이 생겼다.
비목 구성, 인건비 계상 기준, 간접비 계상 방법, 비목 간 전용 제한.
이런 부분들은 반복해서 보게 되고, 결국 외우게 된다.
규정을 모르고 예산을 짜면, 나중에 정산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 항목은 이 비목에서 쓸 수 없습니다', '이 금액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다.
예산을 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정부출연금과 민간부담금을 나누는 거다.
정부출연금은 정부가 지원하는 금액이고, 민간부담금은 기업이나 기관이 부담하는 금액이다.
기업의 분류에 따라 정부출연금 비율이 정해져 있다.
중소기업은 정부출연금 75% 이내, 중견기업은 70% 이내 이런 식이다.
사업에 따라 별도 비율이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공고문에 이 비율이 명시되어 있으니, 이를 정확히 지켜야 한다.
민간부담금은 현금과 현물로 나뉜다.
현금은 실제로 기관이 지출하는 금액이고, 현물은 기존 보유 자산이나 인건비를 현물로 인정받는 거다.
규정에 따라 민간부담금 산정 방식이 정해져 있으니, 이를 정확히 따라야 한다.
총 예산이 정해지면, 과제 수행 계획 대비 필수 항목을 우선 배정한다.
연구재료비, 연구장비·시설비, 연구활동비, 간접비.
이 항목들은 과업을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항목들이다.
예를 들어, 시제품을 3개 만들어야 한다면 연구재료비가 필수다.
특정 장비 없이는 실험을 할 수 없다면 연구장비·시설비가 필수다.
출장이 계획되어 있다면 연구활동비에 출장비를 반영해야 한다.
필수 항목을 먼저 배정하고 나면, 남은 예산으로 인건비를 배정한다.
간접비는 기관 유형에 따라 산정 방식이 다르다.
간접비 고시비율이 적용되는 기관은 고시비율로 산정해야 한다.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소가 여기에 해당한다.
고시비율은 직접비의 일정 비율로 정해져 있고, 기관마다 다르다.
기업의 경우 간접비는 다르게 산정한다.
홍보비, 성과활용비, 안전관리비 등으로 구성된다.
홍보비는 전시회 부스 비용 같은 것들이고, 성과활용비는 특허 출원이나 기술료 같은 지식재산권 관련 비용이다.
안전관리비는 연구 수행 중 안전 관리에 필요한 비용이다.
각 항목은 지침을 참고하여 연차별 수행 계획에 맞게 반영한다.
1차년도에 특허 출원이 계획되어 있으면 성과활용비를 1차년도에 반영하는 식이다.
정부과제는 대부분 다년도 과제다.
1차년도, 2차년도, 3차년도 이런 식으로 나뉜다.
예산도 연차별로 나눠서 짜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차별 과제 수행 계획과 예산이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1차년도에 시제품 제작이 계획되어 있으면, 1차년도에 재료비가 많이 배정되어야 한다.
2차년도에 시험 검증이 계획되어 있으면, 2차년도에 장비비나 활동비가 배정되어야 한다.
계획과 예산이 어긋나면, 심사위원이 바로 질문한다.
"1차년도에 시제품을 만든다고 했는데, 왜 재료비는 2차년도에 더 많습니까?"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예산 설계가 엉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필수 항목 배정이 끝나면, 남은 예산으로 인건비를 배정한다.
인건비는 투입 인력의 급여에 참여율을 곱해서 계산한다.
예를 들어, 월 급여가 500만원인 연구원이 참여율 50%로 12개월 참여하면, 인건비는 3,000만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3책5공과 참여율 100% 제한이다.
3책5공은 연구자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과제 수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책임연구자로는 3개, 참여연구자로는 5개까지만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
참여율은 모든 과제를 합쳐서 100%를 넘으면 안 된다.
A 과제에 50%, B 과제에 30%, C 과제에 30%를 하면 110%가 되니까 안 되는 거다.
정부출연연구소는 예외적으로 130%까지 허용된다.
예산을 짤 때 참여 연구원들의 다른 과제 참여율을 확인해서, 10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또 중요한 점은, 사업의 성격에 따라 인건비 총액 제한이 있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인건비는 전체 예산의 40%를 초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제한이 공고문에 명시되어 있으면, 이를 지켜야 한다.
연구장비·시설비를 배정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부가세 포함 3천만원 이상 장비는 심의 대상이다.
제안서 단계에서 이 장비가 왜 필요한지, 기존 장비로는 안 되는지, 임차는 불가능한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심사위원들은 고가 장비에 특히 민감하다.
"이 장비 꼭 사야 하나요?"
"임차하면 안 되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3천만원 이상 장비를 넣을 때는 필요성을 매우 구체적으로 쓴다.
"본 과제에서 개발하는 소재의 인장강도 측정 범위가 기존 보유 장비로는 부족합니다. 외부 임차 시 측정 일정 조율이 어렵고, 시료 이동 중 특성 변화 우려가 있어 자체 보유가 필수적입니다."
이렇게 써야 심사위원도 납득한다.
예산 설계를 하다 보면, 숫자를 맞추는 데만 집중하기 쉽다.
'총액을 5억으로 맞춰야 해', '비율을 이렇게 해야 해'
하지만 예산 설계는 숫자 맞춤이 아니라 연구개발 계획의 스토리를 따라가야 한다.
1차년도에 기술 개발을 한다면, 재료비와 인건비가 많이 필요하다.
2차년도에 시제품 제작을 한다면, 재료비와 장비비가 증가한다.
3차년도에 실증과 인증을 한다면, 활동비와 성과활용비가 필요하다.
과업 계획 → 필요 자원 → 예산 배정
이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심사위원이 납득한다.
처음에는 이걸 몰라서 비율로만 맞췄다.
'인건비 40%, 재료비 30%, 장비비 20%, 활동비 10%'
하지만 이렇게 기계적으로 나누면, 과업 내용과 안 맞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은 과업 계획의 스토리부터 보고, 그에 맞춰 예산을 배정한다.
예산은 숫자가 아니라 과제 수행 계획의 구체화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예산으로 표현된다.
인건비는 투입 인력 계획이고, 재료비는 시제품 제작 계획이고, 장비비는 시험 검증 계획이다.
규정을 지키면서, 과업 계획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논리적으로 배정하는 것.
그게 예산 설계의 핵심이다.
사업관리자에게 예산 설계는 단순한 회계 작업이 아니다.
규정을 이해하고, 과업과 자원을 연결하고, 연구개발 계획의 스토리를 숫자로 증명하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