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스패너와 A. I.

by 장발그놈

작업현장에는 박혀 있는 너트 하나에 렌치를 하나하나 대보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꺼내지 않는 몽키스패너가 있다.


맞는 게 없는 상황에서도 '내일 다시 와서 풀고 조여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공구가방 안쪽에 그대로 둔다.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너트를 조이고 풀 수 있는 공구지만, 몽키는 위험하고 투박하다. 손잡이는 작업도중 미끄러지기 쉽다. 조이는 순간은 편하지만, 너트 머리를 망가뜨린다. 몽키를 쓴 현장은 다음 작업자가 왔을 때 욕을 먹는다. 그래서 현장에서 몽키스패너는 쓰라고 있는 공구가 아니다. 다만 마지막까지 버텼다는 증거, 심리적 안전장치로서 가방 한켠에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키스패너를 챙기는 이유는 타협의 가능성 때문이다. 현장은 늘 부족하다. 작업 시간은 빠듯하고, 사람은 모자라며, 공구는 매번 맞지 않는다. 그 순간 몽키를 꺼낸다는 건 작업을 이어간다는 말이 아니라, 기준을 낮춘다는 뜻에 가깝다. 규격을 포기하고, 안전을 외면하고, 다음 작업을 배려하지 않는 선택이기에 숙련자는 몽키를 들고 다니되 꺼내지 않는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충분해서 안 쓰는 공구다.


꺼내는 순간 완벽하지 않은 작업이 된다. 지금은 넘어갈 수 있지만, 뭉개진 흔적은 반드시 남는다. 그래서 몽키는 항상 가방 안에 있지만, 손에 쥐지 않는다.


글쓰기에도 항상 곁에 있는 공구가 있다.

막힌 문장, 삐걱대는 논리, 표현되지 않는 감정 앞에서 a.i.는 고개를 들이민다. 문장은 흘러가고, 구조는 맞춰지며, 감정은 정리된다. 그러나 쓰면 쓸수록 글은 뭉게진다. 몽키로 조인 너트처럼, 겉으로는 붙잡혀 있지만 이미 면이 닳아 있다. 문장에 각이 사라진다. 어디서 힘을 줬는지, 어디에서 감정이 폭발하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왜 이 리듬이어야 하는지, 왜 이 단어여야 하는지, 왜 여기서 끝나야 하는지를 내가 아니라 a.i.가 결정해버린다.


그렇게 남는 건 고칠 수 없는 글이다.

다음 문장이 손댈 수 없는 글, 다음 날의 내가 읽고 욕하게 될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구가방의 몽키스패너처럼 a.i. 페이지를 열어 둔다. 없으면 불안하고, 있어도 쓰지 않는 공구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 아무것도 맞지 않을 때, 여기서 그만 접어야겠다고 느낄 때도 꺼내지 않으려 한다. 끄집어내는 순간 글이 살아나는 게 아니라, 닳아서 뭉개지기 때문이다.


a.i.를 안 쓰려는 건 고집이 아니다. 다음을 망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오늘 완성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내일의 문장을 살리기 위한 판단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서 더 쓰게 된다면, 내 욕심 마저도 또 하나의 몽키스패너가 되어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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