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 안에서

by 장준영

https://www.youtube.com/watch?v=DinEKqtCDkg&list=RDDinEKqtCDkg&start_radio=1


며칠 전, 할머니를 보내고 왔다.


입관 때 할머니를 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주름이 적어 잠시 놀랐고, 이상하리만치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육체는 곧 화구로 옮겨졌고, 결국 탄소 상태의 재로 남았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여전히 낯설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이란, 이토록 유한하고 덧없는 것인가. 우리는 매일 먹고, 자고, 배출하는 일들을 큰 줄기로 삼아 그 반복을 길어야 백 년 남짓 이어간다. 할머니의 몸이 화구로 들어갈 때, 나도 모르게 ‘뜨겁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그 안에 계신 분은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쓸쓸하게 다가왔다.


내 삶은 얼마나 유한한가. 고작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면서 천 년의 고민을 짊어지고 산다. 뉴스 속 정치와 경제, 연예인의 사생활 같은 이야기들. 그것들이 어느 순간에는 전부 부질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든 물속에 가라앉는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다만 가라앉는 데 걸리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주의 시간 앞에서는 찰나라는 말조차 과분하다. 삶은 반딧불 같고, 이슬과도 같다.


나는 타인의 죽음을 마주할 때 유독 사유가 깊어진다. 예전에는 어떻게 잘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죽음으로 향할 것인가를 더 많이 생각했다. 이 땅에 태어나 무엇을 남길 것인지, 어떤 영향을 남길 것인지 같은 질문들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그런 생각마저도 결국 무의미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더 나누는지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돈이 없으면 미소라도, 그것마저 어렵다면 따뜻한 말 한마디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다. 말은 쉽다. 타고난 성정이 순하지 못해 늘 매끄럽게 행동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애써보려 한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오지만디어스도 죽음을 정복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아마 그 너머의 세계를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불교의 열반이나 정토와는 다른 의미다. 살아 있는 것은 결국 모두 사라진다.


장례식장에 사흘을 머물렀다.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시간밖에 없어서였다. 착해서도, 유난히 효자라서도 아니다. 다만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고 싶었다. 어릴 적의 큰 기억들이 있다. 우리 집과 외가가 가까워 나는 외조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할아버지의 등에 올라 말타기 놀이를 했고, 화려한 자개장 안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여우 머리가 달린 할머니의 목도리를 내 목에 두르고 인디언 놀이를 하던 기억도 선명하다.


할머니는 세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내가 기억하는 1990년대의 집은 풍요로웠다. 온 가족이 자주 모였고, 할머니의 집은 늘 시끄러웠다. 놀러 가면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 시절의 소음은 지금 생각하면 온기에 가까웠다.


가끔 부모님이 다투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몸을 피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아빠가 데리러 왔고, 인자한 할아버지는 아빠를 붙들고 조용히 달랬다. 그런 장면들이 내 기억 속에 여러 겹으로 남아 있다.

세기말이 지나고 밀레니엄이 시작되면서, 단단해 보이던 대가족은 조금씩 균열을 보였다. 부모님의 이혼, 막내 이모부의 죽음. 가족을 지키는 일을 자신의 의무이자 자랑으로 여겼던 할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점점 총명함을 잃어갔다. 걸음걸이가 흐트러지고, 얼굴은 점점 무표정해졌다. 아마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은 몇 년 만에 고향을 찾았을 때였다. 병실에 계셨고,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병간호에 지친 할머니는 하룻밤만 함께 있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나는 그와 마지막 밤을 보냈다. 평소 복숭아를 좋아하시던 할아버지는 그때 아무것도 드시지 못했고, 마시지도 못했다. 말을 할 수 없던 그는 내 손을 붙잡고, 때가 낀 긴 손톱으로 내 손바닥에 글자를 새겼다.
사.랑.해.

그것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였다. 이후 할머니는 혼자서 15년을 더 살았다. 타고난 체력과 삶의 의지가 대단한 분이었다. 2년 전, 내가 직접 차를 몰고 할머니를 모셔와 엄마 집으로 옮겼다. 한 달 동안 푹 쉬셨지만,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요양병원에 입원하셨고, 그곳에서 1년 남짓 지내다 편안히 가셨다.


이제 내 나이도 곧 마흔이다. 단단하지 않게 태어난 사람이 제법 거칠게 살아온 탓에, 얼굴에는 중년의 기색이 서서히 배어들고 있다. 할머니를 모신 납골당을 뒤로하고 한참을 앉아 담배를 피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크게 무너지지 않고 살아온 이유는, 어릴 적 조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이 아직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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