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SVlK1hFQfg8
그날 밤, 침묵은 유령처럼 방 안에 내려앉았다. 나는 고요 속에서 말러의 교향곡 5번, 그중에서도 4악장을 틀었다. 첫 음이 흘러나오자, 공기가 흔들리고, 숨은 깊어진다. 첼로와 바이올린이 천천히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 순간, 나는 이 음악이 사랑을 닮았다고 느꼈다. 아니, 사랑이 남긴 잔향에 더 가까웠다.
사랑은 어쩌면 시작의 빛과 함께 그늘을 품는 법이다. 말러의 선율은 그런 이중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따뜻하게 시작하지만, 그 안엔 무언가 더 깊고 쓸쓸한 것이 자리한다. 나의 글쓰기 또한 그렇다. 문장 속에서 빛을 찾으려 하지만, 그 빛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진다. 당신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갈 때, 방 안의 정적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나는 글로 표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정적을 꺼내어 문장으로 변환하는 일을 당분간 멈추려 한다.
말러의 4악장은 사랑의 환희와 상실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것은 완전한 행복을 꿈꾸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그것에서 멀어져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내가 소설 속에서 사랑을 노래할 때마다, 그 사랑은 늘 상실의 그림자와 함께였다. 마치 당신이 떠난 후에야 그 사랑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았던 것처럼.
노르웨이 여행 중, 새벽녘 북극해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 바다가 꼭 이 음악 같다고 생각했다. 차갑지만 경이로웠고, 무한히 이어지는 수평선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의 바다처럼 말러의 음악도 나를 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떠나보냈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아센바흐가 타지오를 바라보던 그 찰나처럼, 말러의 4악장은 완전한 아름다움과 슬픔의 균형을 유지한다. 사랑은 갈망과 고통을 함께 가져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선율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영화 헤어질 결심 속 서래의 사랑은 그러한 사랑의 본질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사랑의 도착점이 어디일지 모르는 불안정한 경계선 위에서, 그녀는 그 끝을 사랑이라고 명명했다. 그녀의 침묵과 시선 속에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자각이 담겨 있었기에 더욱 고통스럽고도 찬란했다.
내게 있어 이 곡은 단순한 음악 이상의 존재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이 곡이 최고"라고 했을 때,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나이 마흔을 앞두고, 그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 곡은 인생의 장대한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들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젊은 날에는 그 광활함과 깊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울함이 밀려올 때 이 음악은 내게 "괜찮아"라고 속삭여준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모래톱을 씻어내듯, 말러의 선율은 내 영혼을 닦아준다. 그리고 지금, 곧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실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나를 짓누를 때, 이 음악은 그 감정의 무게를 덜어준다. 할머니의 숨결과 나의 기억, 그리고 삶의 모든 끝맺음을 품어주는 따스한 장막처럼.
주름이 가득하고 까칠해진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그 손이 그녀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꼈다. 생을 살아온 한 세기의 흔적들이 손금처럼 펼쳐져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빨리 결혼하라는 말을 했을 그녀는 이제 "잘 살아"라고 말했다. 그 말에는 모든 작별 인사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이미 떠날 준비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 비장함은 나를 잠시 멈추게 했고, 동시에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다짐을 심어주었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말러의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