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by 장준영

https://www.youtube.com/watch?v=aOnEksa8f4w&t=141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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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3


일상의 루틴을 꼼꼼하게 지키는 편이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담배를 연달아 세 개 피운 후 화장실에 다녀온다. 소파에 10분 정도 누워 전날의 꿈의 잔상을 더듬어본 뒤, 샤워를 하고 다시 커피를 마시며 담배 두 개를 피운다. 이를 닦고 간단한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 식사 전까지 금식하다가 오후 5시 30분쯤 명상을 하고, 적당히 운동을 한 후 집 청소를 한다. 7시 즈음에는 하루의 첫 끼이자 마지막 식사를 한다. 이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 10시쯤 잠자리에 든다.


이 단순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나름의 루틴이 있다. 적당한 운동, 명상, 독서, 글쓰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누군가와 점심 약속이 생기면, 1일 1식의 루틴이 깨지고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식사를 하게 된다. 요즘은 그마저도 조금 느슨해져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점심을 먹기도 한다. 몸무게는 비슷하지만, 눈에 보이는 몸의 변화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평소엔 문자나 전화 한 통조차 거의 없고, 술 약속도 드문데, 이상하게도 한 번 술자리가 시작되면 연달아 3~4일씩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면 일상이 무너지고, 다시 회복하는 데 약 7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완벽한 하루란 과연 무엇일까? 누군가 인생의 목표를 물었을 때, 한때는 별 생각 없이 '행복'이라고 대답하곤 했지만, 지금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소유하는 것보다는 일상 속의 작은 즐거움을 더 자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기분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햇빛과 바람이 적당히 어우러질 때면 행복을 느낀다. 백사실 계곡을 산책하며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햇빛, 지저귀는 새소리,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같은 작은 것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나는 그 순간을 '행복'이라 느낀다.


최근 북한산 계곡에 놀러갔을 때, 친구가 내 얼굴에서 평온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나는 그 순간에 '멍'한 상태였던 것 같다. 익숙한 환경에서는 멍 때리기가 어렵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사물이나 장소를 바라볼 때, 생각이 사라지는 그 상태가 좋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루틴의 반복 속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일상을 조명한다. 영화가 시작되고 10분 동안, 과묵한 남자의 하루는 대사 한 마디 없이 흘러간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이를 닦고, 수염을 다듬은 후, 이층 다락방에 올라가 식물에 물을 준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빌라 앞 음료 자판기에서 BOSS 캔커피를 산 후,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공중화장실 청소 노동자로 일하는 주인공은 묵묵히, 성실히 자신의 일에 몰두한다. 그의 손길이 닿은 변기는 마치 장인이 작업하듯 정성스럽게 닦여 나간다. 점심시간이면, 그는 신사 근처의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오래된 필름 카메라에 담는다. 퇴근 후에는 목욕탕에서 후지산 타일을 바라보며 목욕을 하고, 휴게실에서 잠시 쉬다가 지하철 근처 음식점에서 간단한 식사와 함께 컵술을 즐긴다. 가끔은 선술집에 들러 술을 마시기도 하고, 쉬는 날에는 중고 서점에서 낡은 책을 구입하며, 사진관에 들러 찍어둔 필름을 현상한다. 그리고 그날 찍은 사진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오래된 책을 읽다가 잠에 든다.


영화의 전반부 약 1시간 동안, 주인공의 일상은 이렇듯 큰 변화 없이 반복된다. 그는 옛날 아날로그 카세트 테이프와 오래된 필름 카메라, 그리고 중고 서점에서 찾은 낡은 책들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이 아날로그의 흔적들은 그에게 단순한 취향을 넘어서는, 과거의 기억과 아픔을 보듬는 매개체가 된다. 주인공에게 이러한 물건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새기고, 지나간 세월 속에서 자신을 찾는 도구로 작용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서, 조카의 등장은 이 고요했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다. 조카는 단순한 가족 이상의 존재로, 주인공이 억눌러왔던 과거와의 연결고리이자, 그가 회피해온 내면의 상처를 다시금 건드리는 계기가 된다. 조카의 등장 이후, 주인공의 일상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다. 그가 자주 가던 목욕탕이 사라지고, 짝사랑하던 술집 여주인이 전남편과 재회하는 모습을 목격한 순간, 주인공의 내면은 급격히 붕괴된다. 그는 피우지 않던 담배를 손에 들고, 억눌렀던 슬픔과 분노가 폭발하듯 표출된다. 그토록 완벽해 보였던 그의 일상은 이제 불안과 혼란 속에 휩싸인다.


그러나 영화는 주인공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마치 죽음 뒤에 찾아오는 새벽의 태양처럼, 그는 Nina Simone의 "Feeling Good"을 들으며 출근길에 나선다. 그때 그의 표정은 울지도 웃지도 않은, 슬픔과 평온이 공존하는 형언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이 장면은, 비록 그의 일상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혼란 속에서 다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주인공은 다시 일상의 궤도로 돌아가며, 삶이란 끊임없이 균형을 잃고 다시 찾아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 모두가 겪는 인생의 여정과 닮아 있다.


삶이란 이런 것 아닐까. 절대 끝나지 않는 아포리즘. 균형과 비균형의 끊임없는 싸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반복되는 단조로운 모노로그.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바흐는 생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텔레만이 더 유명한 작곡가였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악보는 화려한데, 바흐의 악보는 상대적으로 심플하다. 그것은 멜로디의 음악이 아닌, 구조의 음악이다. 하지만 1950년대,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바흐의 음악을 재조명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바흐의 음악을 진정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이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 내가 사랑하는 정서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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