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 시의 풍경

by 장준영

https://www.youtube.com/watch?v=F14gbBf__ow


학창 시절, 오직 시험을 위해 다이제스트식 독서를 하던 때, 윤흥길 선생의 소설에서 기억에 남은 한 문장이 있는데 그것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음에 깊이 새겨진 문장이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그 문장은 최근의 힘들었던 날씨를 떠올리게 하며, 잊지 못할 여운을 남긴다. 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 꿉꿉한 빨랫감의 냄새는 나를 자꾸 과거로 되돌리게 한다. 나는 습관처럼 몸에서 나는 냄새를 '킁킁' 확인하고 , 매운 음식을 찾곤 했다. 왜 그렇게 덥고 습한 중국 사천성에서 마라, 즉 맵고 강한 음식들이 태어났는지, 그 음식을 통해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내외부의 기혈을 유지했는지를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지루한 장마가 지나가고, 삶의 마지막 힘을 다해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면, 나는 한 달여 남은 여름을 더욱 즐기겠다고 다짐한다. 인터넷에서 태닝 오일을 주문하고, 남는 시간마다 한강 수영장에 가겠다고 작은 약속을 한다. 얼마 전 중고로 판매했던 라이카 카메라를 바라보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인 오뉴월을 떠올리며 혼자서 자주 산책하던 그곳에서 짧은 회상을 한다.

하지, 24절기 중 하나로 북반구에서 가장 긴 절기인 이 시간을 나는 특히 사랑한다. 가회동 고개를 지나 창덕궁이 보이는 원서동으로 향할 때,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기분 좋았던 날, 나는 그 날의 날씨를 기록해 놓았다. 기온 22도, 습도 55%, 풍속 4m/s, 기압 1009hPa.

나는 입추를 기준으로 1년의 절반은 오후 네 시의 빛을, 나머지 반은 오후 다섯 시의 색깔을 좋아한다. '오후 네시의 풍경' 김정선 작가의 표현처럼, 하루를 마감하기엔 이르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 그때쯤 나는 어색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문득 살아 있다는 사실에 어색함을 느낀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평생 이 상태를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다. 밤이 깊어야 정오의 뜨거운 태양을 느낄 수 있으며, 혹독한 겨울이 있어야 찬란한 봄의 생명력에 감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을 점점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청춘의 시간이 끝나고 있음을, 눈물을 품고 조용히 눈을 감으며 그 시간을 작별할 수 있는 상태인 것인가. 누군가 그랬다. 청춘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최근 결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금강경을 독송하며 공부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씨앗이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J에게는 날카로운 칼을 버리고 부드럽고 온화한 힘, M에게는 삶의 평화가 뿌리내리길 바라는 모습. 그리고 나에게는 진흙탕 속에서도 굳건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존재의 깊이를 나누며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각기 다른 마음의 씨앗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듯이, 단순히 하루, 한 달, 일년이 아닌 10년 후를 바라본다.

금강경의 클라이막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인생은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 영원할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문득 찰나의 순간이었다는 사실.

삶의 소중함.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







L1070340.JPG?type=w773




L1070339.JPG?type=w773




L1070380.JPG?type=w773




L1070381.JPG?type=w773




L1070388.JPG?type=w773




L1070390.JPG?type=w773




L1070396.JPG?type=w773




L1070399.JPG?type=w773




L1070400.JPG?type=w773




L1070401.JPG?type=w773




L1070405.JPG?type=w773




L1070406.JPG?type=w773




L1070408.JPG?type=w773




L1070409.JPG?type=w773




L1070410.JPG?type=w773




L1070415.JPG?type=w773




L1070417.JPG?type=w773




L1070419.JPG?type=w773




L1070421.JPG?type=w773




L1070422.JPG?type=w773




L1070424.JPG?type=w773




L1070425.JPG?type=w773




L1070427.JPG?type=w773




L1070428.JPG?type=w773




L1070430.JPG?type=w773




L1070432.JPG?type=w773




L1070433.JPG?type=w773




L1070434.JPG?type=w773




L1070435.JPG?type=w773




L1070438.JPG?type=w773




L1070444.JPG?type=w773




L1070449.JPG?type=w773




L1070451.JPG?type=w773




L1070454.JPG?type=w773




L1070458.JPG?type=w773




L1070466.JPG?type=w773




L1070473.JPG?type=w773




L1070478.JPG?type=w773




L1070483.JPG?type=w773




L1070486.JPG?type=w773




L1070489.JPG?type=w773




L1070496.JPG?type=w773




L1070499.JPG?type=w773




L1070501.JPG?type=w773




L1070507.JPG?type=w773




L1070508.JPG?type=w773




L1070512.JPG?type=w773




L1070517.JPG?type=w773




L1070531.JPG?type=w773




L1070533.JPG?type=w773




L1070329.JPG?type=w773




L1070332.JPG?type=w773




L1070334.JPG?type=w773




L1070337.JPG?type=w773




L1070524.JPG?type=w773







keyword
작가의 이전글꽃을 주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