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주는 마음

by 장준영

https://www.youtube.com/watch?v=--JuMkludKM


나의 시간이, 뜨거웠던 청춘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스스로 자각할 무렵, 꽃이 좋아졌고 꽃을 선물하는 나의 마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과거 가끔 술에 취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한 것이 몇 번 있었고, 내가 꽃을 선물받은 것은 학교 졸업식과 북 콘서트 때 현중이 형에게 받은 것이 전부였다.


지인의 소개로 봄날, 노란 프레지아가 만발할 즈음, 고모에게 줄 꽃을 사러 갔다가 남대문 시장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시장의 풍경은 다채롭다. 인상 더러운 아저씨 몇몇은 뒤에서 묵묵히 꽃을 재단하고, 꽃과 같이 곱게 주름진 얼굴을 지닌 그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사장님이 앞에서 꽃을 판다. 이곳에서는 가격을 흥정하거나 호객 행위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상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꽃을 정리하고, 고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상인 중 한 명인 김 씨 아저씨는 고무장갑을 낀 채 장미와 백합을 다듬고 있다.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시든 잎을 제거하고, 꽃다발을 예쁘게 묶는다. 그의 옆에서는 이웃 상인들이 크고 작은 꽃병들을 정리하며 다양한 꽃들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일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평일 점심에 꽃 시장을 방문하면, 대부분의 손님은 인근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이다. 평소에는 북파공작원 마냥 어둡게 입고 돌아다니지만, 꽃을 사러 갈 때만은 화사하게 입고 가서 꽃을 한 뭉텅이로 사는데 포장은 신문지로 러프하게 싸준다. 아마 그들은 내가 여자친구에게 줄 꽃을 고를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꽃을 주는 특정 대상은 없다. 그저 꽃이 주는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도 사랑하는 사람은 아직 없다. 하지만 꽃을 주고 싶은 사람은 많다. 요즘은 사랑이라는 것이 꼭 애인 사이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꽃을 받으면 좋아할 이들에게 선물을 준다.


동네 스님, 그 스님이 모시는 부처님, 지나가다 몇 번 마주친 세검정 성당의 성모마리아님, 이웃집 아주머니, 고모, 얼마 전 생일을 맞이한 엄마, 10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새롭게 자기 일을 시작하는 친구, 꽃 안 좋아한다고 하더니 막상 받으니 엄청 좋아했던 감독님, 한 번의 데이트로 끝났던 제시카, 몇 번의 캐쥬얼한 데이트 후 프랑스로 떠난 줄리엣, 예전에 집 구해줬던 부동산 아주머니.


마지막엔 돌고 돌아 나를 위한 꽃 한 다발을 산다.


2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동안 알고 지냈던 많은 친구들을 떠나보냈다. 아쉬운 친구도, 전혀 아쉽지도 않은 친구도 있지만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 가지 바람은 있다. 꽃이라는 대상보다 꽃을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을 고맙게 여겨주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


시장을 나서며, 나는 마음에 새겨진 꽃의 향기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향기는 남대문 꽃 시장의 특별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꽃은 금방 시들지만, 꽃을 선물하는 찰나의 마음은 영원하니깐.


나중에 꽃집을 차린 나의 모습을 상상하다 인상 쓰고 꽃 팔다 망한 나의 모습이 잠깐 스쳐, 꽃은 그저 사기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일주일이 지나 시든 장미꽃을 치우면서.

장마가 시작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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