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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21. 2023

죽은 자를 태우는 곳에서

침묵의 시간 


인생은 무상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짧은 여행을 시작한다고.


약 2500년 전 석가족의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성인이 되던 해 마부와 성 밖을 나갔다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병자와 약자 그리고 거리의 거지들과 들것에 의해 치워지는 시체들까지.


한 달 네팔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파슈파니트 사원이다. 네팔의 국교인 힌두교의 최대 사원이 있는 곳이며, 다른 편에서는 매일같이 죽은 자를 태우는 곳이다.   

  

시체를 이곳에서 화장하는 이유는 이곳 강물에 재를 뿌리면 그 영혼이 힌두교의 영원한 성지이자 시바신의 삼지창 끝으로 세운 도시 바라나시가 있는 갠지스강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면서 죽은 자를 본 적이 몇 번 있다.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염을 하는 모습, 고등학교 때 대천 해수욕장에서 발견된 익사체의 모습 등이 당시에 충격적이어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파슈파니트에서 목격한 화장의 장면은 내가 본 모든 장면을 상쇄시킬 정도로의 꽤나 충격적인 인상으로 다가왔다. 

     










인도에서는 변사한 사람과 어린아이의 시신은 화장하지 않고 강에 떠내려 보낸다. "변사한 사람과 어린아이는 제 수명을 다하지 못했으니 회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지요." 그러고 보면 화장되는 자의 유족은 장례를 치르면서 그리 애통해하지 않는다. 수장되는 자의 유족이 종종 미친 듯이 울부짖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후지와라 신야-     


한 구의 시신을 태우면 다음 장례를 준비한다. 이 과정은 끝없이 반복된다. 남은 재를 치우고 새로운 장작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저쪽 한편에서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멍하니 화장을 바라본다. 한쪽에서는 빨래를 하며,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장례 의식을 시시덕거리며 구경한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개의치 않는다.     








죽은 자를 장례하는 일은 으레 경건해야 하고, 인간은 존엄하다고 배웠으며 또 그렇게만 생각했던 문화의 차이, 이른바 힌두인들의 화장 풍습은 너무나 낯설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시체를 아무렇지 않게 태우는 광경, 제대로 타지 않는 시체 주위에는 먹이를 얻기 위해 개와 원숭이 그리고 비둘기 떼들이 서성인다.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 하찮은 것이었나 싶은 생각을 들게 하는 광경들이다.         

  



장작더미 사이 붉은 불길이 뿜어 나온다. 불길이 두 발을 어루만진다.‘발'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그것은 ‘물체'다.

후지와라 신야 –인도 방랑-   

  








...허연 내장이 흘러나오면 거기에 불이 붙어 불꽃이 튀어 올라. 그러면 떠돌이 개들이 기다렸다는 듯 서로 싸움질을 하면서 그 내장을 물어뜯곤 했지. 인간의 뇌수는 개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좋은 편인가 봐. 시체를 태우는 인부들은 다반사로 겪는 일이어서 그런지 개들이 시체에 달려들어도 막지 않았어. 막기는커녕 타고 남은 그을린 다리를 개에게 던져주기도 했지. 그 냄새는 지금도 잊지 못해. 풍향이 바뀌어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냄새가 몰려올 때도 있었지. 살과 뼈를 태운 냄새가 콧구멍 속으로 밀려드는 거야. 구운 오징어와 비슷한 냄새였어.  

후지와라 신야   –황천의 개-     


 

시신이 다 타면 화부는 강물을 끼얹어 타고 남은 찌꺼기를 강에 흘려보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제아무리 대단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모두 그렇게 갠지스강으로 흘러간다고 믿고 있다.    

  


종교가 무엇이고, 철학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힌두교의 사두는 죽으면 자신의 몸 하나 태울 만큼의 장작을 살 수 있는 돈을 버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고 한다. 이날은 아침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멍하니 시신이 화장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체 타는 특유의 냄새 때문에 밥 생각은 없었으며, 신기하게도 당시의 사진을 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것 같다. 


죽은 자를 촬영한다는 것 자체가 어느 문화권에서도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장례 의식을 촬영한다는 게 참 불편하고, 어색하고 무엇보다 망자와 유가족들에게 미안했다. 50mm 단렌즈이기 때문에 멀리서 당길 수도 없어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지켜봤으며, 셔터를 눌렀고, 눈을 마주쳤으나 서로 간단한 목례로 상주와 방문객의 짧은 인사를 마쳤다. 


머리 한 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인간은 고작 100년도 채 못 살면서 1000년의 고민을 안고 사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죽을 것인가?’삶의 질문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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