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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21. 2023

순수히 어두운 밤을 들이지 마오

침묵의 시간 

https://www.youtube.com/watch?v=xqppbcAKNBo&ab_channel=CHS-Topic



태국만에 위치한 꼬따오라는 작은 섬에 체류한지 일주일 정도 되어간다. 


첫 날 리조트에 막 도착했을 때 밥 딜런의 [Make you feel my Love]가 잔잔하게 흘러나왔고 어떤 상념이 떠올랐다. 떠나보낸 이에 대한 그리움일까?      


이번 여행의 목적은 ‘숨’을 쉬고 싶어서였다. 이별 후 나는 상실을 있는 그대로 삼켰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으며 세상에서 제일 느린 자살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큰 상념이라 그런 것일까? 이후 숨을 잘 쉴 수가 없었다. 긴 기다림 끝에 나는 17키로가 빠졌으며 공황장애, 우울증, ADHD와 같은 정신질환을 한 번에 겪었는데 돌이켜보면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 그때서야 드러난 것 같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전에 그녀를 잠깐 만났다. 약 5개월 만의 재회였다. 그녀를 만나기 전, 겉보기에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폐인처럼 안 잘랐던 수염과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손 편지도 이틀 동안 한자 한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헤어지기 전 깜짝 선물로 주려고 했던 러브레터 LP도 함께 준비했다.      


만나기 직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생전 먹지도 않았던 청심환까지 복용한 채 그녀의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5개월 만에 만난 그녀는 역시나 아름다웠고 내가 좋아했던 뽀얀 피부는 마치 달 항아리처럼 곱게 빛이 났다.      


드디어..드디어..


내가 그토록 바랬던 그녀를 만났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조심스레 포응을 했고 등을 살짝 다독이며 “보고 싶었어”라고 나지막히 말했다.      


우리는 한동안 말 없이 서로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화장실은 아직도 잘 못가? ”

“(살짝 부끄러워 하며)응..”

“이제 물 위에 뜨니?” 

(그녀는 맥주병이라 수영장을 한 달 다녀도 물에 뜨지 못 했다.)

“(웃으며)아니 아직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말을 했다. 당신이 나에게 어떤 존재였고 내가 어떻게 기다렸는지.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지만 당신은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설령 마음 정리를 했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얀 도화지 상태로 만들어서 나의 이야기와 편지를 읽어 달라고. 하지만 거절을 해도 그녀가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으니 거부의 답장을 안 줘도 괜찮다고 말했다.   

   

“너의 상처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말이야, 혹시라도 앞으로 긴 인생을 살면서 가끔 안 좋은 생각 그리고 안 좋은 행동을 생각을 할 때 나라는 사람을 한 번 돌이켜 봐줬으면 좋겠어. 너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인데 그리고 그런 너를 내가 사랑하고 또 기다리는 그런 마음. 나를 보지 말고 내 마음을 봐줘. 그래서 네가 스스로 보잘 것 없다고 생각을 할 때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나의 마음을 이용해줘. 단지 그뿐이야. 나 다시 안 만나도 돼. 그러니깐 끝까지 살아. 건강해. 그리고 너의 상처마저도 사랑해”     


‘긴긴 낮과 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시련을 꾹 참고 나가는 거에요‘     


그녀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 뒤 나는‘살아갈 이유’를 한 동안 못 찾았다. 왜냐하면 그녀를 잠깐 만나기 전까지의 기다림이 살아갈 이유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기다림 끝에는 어떤 깨우침이 있었다.   

   

작년 여름부터 이어 온 긴긴 칩거와 침묵을 깨고 드디어 세상 밖으로 입을 꺼냈다. 숨도 크게 한 번 쉬어보고 천천히 내쉬기도 한다. 마치 어린 아이가 첫 걸음을 하듯 항상 하던 숨을 쉬는 것이 제법 어색했다.     

 

안 하던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다. 고향에 가서 오랫동안 안 보았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봤다. 고맙게도 친구들은 연차까지 내주면서 10명이나 모였 주었다. 이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계신 납골당에 가서 그에게 따로 편지도 썼고 아주 천천히 유년과 청소년 시절,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고 또 따분해했던 대전을 천천히 걸었다. 그때서야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 했던‘양식’들을 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새로운 양식은 발전 된 대전이 아닌 내 내면에 있었다.       


이후 관계가 끊겼던, 예전에는 친하게 지냈던, 형들 몇몇과 재회를 했다. 나는 그들을 만남으로써 당시 관계의 끝도 상대의 잘잘못도 아닌 나의 잘못을 인정함과 동시에 진심으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며 선물을 형들에게 건네줬다.      


“형은 잘 못이 없어. 그 당시 내가 단지 뜨꺼웠고 좀 어렸어. 미안해”     


이처럼 오랜 침묵을 깨고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나와 안 하던 행동들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마치 세상한테 하는 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보여서 일까? 지인 중 한명은 이렇게 말했다.      


“작가님, 다시 오실거죠?”     


고마웠다. 나의 안부를 물어준 이들이 그리고 옛 친구인 영익이와 영호는 여행 경비에 쓰라며 나에게 각각 10만원을 보냈다. 


 “준영아 태국가서 재미나게 놀다와. 팬티도 한 번 내리고”

“미친놈. 팬티는 오줌 쌀 때 빼고는 벗을 일도 없고 나 사마천이다. 아무튼 잘 받을게 고마워!”     


떠나는 나는 당신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단지 숨쉬는 방법을 배우러 간다고. 그것에 대한 일환으로 꼬다오에서 프리바이빙을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가슴속에 가득 차오로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압박을 이겨내고 목표지점을 찍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갈 때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수면에 비치는 동그란 태양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며 올라와서 부표를 잡고 숨을 쉴 때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들숨과 날숨 그리고 끝없는 심연으로 들어간다는 것. 거기에서 나를 마주하고 또 직면한다.      

어두운 구멍으로의 회귀.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었던 따뜻하고 안전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까? 깊고 어두운 구멍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깊은 심연 속에서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했다.      

이제야 나는 여지껏 피해왔던 그 녀석을 안아 주었다.     


자신을 직면한다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다. 비를 맞고 추위를 피해 차 밑에서 움츠려있는 고양이와 같은 내 자신이 있고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은 그 존재를 따뜻하게 안아줘야 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숨을 잘 쉴 수가 있을까? 두렵지만 잘 할 수 있을 거야.      

        


순수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분노하고 또 분노하세요. 
순수히 사라져가는 어둠에 대해.     
Do not go gentle into that kind night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night

       딜런 토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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