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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20. 2023

김밥

엄마를 부탁해 

얼마 전 엄마를 광화문에서 만났다.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았고 엄마는 가방에서 타파통 하나를 꺼냈다.     


"어? 김밥 싸왔네?"

"어, 너 좋아하잖아"

"아니, 피곤할 텐데 이런 걸 뭐하러 싸와"     


나는 오랜만에 본 엄마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며 김밥 한 입을 먹었다.     

김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살짝 데친 시금치에 짭조름하게 소금 간을 한 김밥. 여기서 중요한 건 밥에 물이 많이 들어가지도 또 너무 적지도 않은 진밥과 된밥의 중간에 있는 고슬밥 이어야한다. 화룡점정으로 그 위에 참기름을 듬뿍 바르고. 아무리 프랜차이즈 김밥이 맛있다 하더라도 집에서 만든 김밥이 짱이다. (사실은 강화도 서문김밥이 개짱임)     


큰 고모도 나를 만나러 올 때 김밥을 싸온다. 그리고 여자 친구와 함께 경주며 강화도 그리고 서울의 김밥 맛집을 함께 투어하기도 했다. 이렇듯 나를 사랑하는, 사랑했던 여자들은 내가 김밥 좋아하는 것을 안다. 김밥은 나에게 있어 그리운 어머니와 따뜻함을 상징하는 포근한 여성성을 나타내는 음식이며 학창 시절 친구들과 나누었던 추억이 되기도 하고, 가난할 때의 밤, 매콤한 라면과 함께 나를 위한 한 줄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만약 내가 죽어 누군가가 나의 제사상을 차려준다고 하면 시금치 김밥과 광화문 화목 순댓국 한 그릇이면 나는 저승에서도 행복할 것 같다.     


1999년, 초등학교 5학년 때가 생각난다. 소풍가는 날은 언제나 설레기에 선잠을 잘 수밖에 없다. 내방 사이에 들어오는 희미한 부엌 불과 동시에 '사각사각' 김밥 마는 소리, 마지막으로는 코끝에 들어오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잠을 깬다. '아 엄마가 김밥을 마는구나, 드디어 오늘은 소풍 가는 날이구나' 하며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적거리며 부엌에 나오면 엄마가 김밥 꼬다 머리 한 입을 입에 넣어준다. 나는 김밥을 오물거리며 행복감에 젖은 채로 다시 부족한 잠을 보충한 기억이 난다.    

 

아저씨가 돌아가신 후 6개월 동안 엄마는 세상에 홀로서기를 해야만 했다. 나는 아주 불친절한 과외 선생이 되어 이제 첫 사회로 나가는 엄마에게 탈무드에 나오는 유대인처럼 과외를 했다. 평생을 가정주부로 살았던 엄마는 본인 인생의 첫 직장생활을 해야 했으며 인터넷, 핸드폰 애플리케이션, 관공서 서류 등 그녀에게 낯설고 불편한 것들을 온몸으로 부딪히고 배우며 감수해야 했다. 마침 동생도 5월에 군 입대를 했기 때문에 그 집엔 엄마와 5살 된 강아지만 남아있게 됐다. 평소 같았으면 사소한 것에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도와달라고 할 엄마였는데 이제는 엄마가 스스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엄마에게 있어 첫 사회생활이란 마치 김밥을 처음 만드는 사람의 과정인 것 같다. 발을 준비하고 얇은 김 한 장위에 고슬 게 지어낸 밥을 얇게 펴 올려 그 위에 계란, 당근, 오이, 시금치, 햄, 맛살 등 각종 고명들을 가지런히 올린다. 이후 끝에서부터 돌돌 말려 올려주면 김밥이 완성이 되는데, 김밥 만드는 게 처음인 사람은 이 과정에서 옆구리가 터지거나 김 끝에 물을 안 뭍여 풀리는 상황이 반복이 된다.    

 

엄마에겐 지금 남편과 아들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하는 상황이 (마치 내가 김밥을 서툴게 만드는 것처럼 홀로서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게 나는 신생아에게 우쭈쭈 하는 것처럼 작은 성취를 하나 이룰 때 ‘거봐, 별거 아니잖아’하며 의도적인 칭찬도 하며 어설픈 위로를 건넨다.     

김밥을 가볍게 먹고 난 뒤 엄마랑 덕수궁 돌담길도 걷고, 펠트 커피에서 맛있는 플랫 화이트도 마시고, 메밀 소바와 단무지가 맛있는 남대문 송옥도 가고 시청 앞 잔디밭에 비치된 소파에도 누워있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이 전에 여자 친구와 했던 모든 것들이고 나에겐 낯설지 않은 것들이었는데 엄마랑은 처음 해 봤다. 그러한 사소하고 소소한 시간이 서로에겐 어색하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몇 시간의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지하철 출구로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예전보다 단단해진 엄마를 느꼈다.     


곧 있으면 엄마의 환갑이다.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한다. 조만간 엄마를 데리고 내가 좋아하는 고성 바다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엄마를 위한 김밥 한 줄을 만들어서 가야겠다. 내가 아닌 엄마를 위해 만드는 애정 담긴 음식을.     


바다를 보며, 김밥을 먹으며, 무슨 말을 할까. 아니면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아마 미안하다고 말을 할까. 아마 자존심이 세고 부끄러워서 그런 말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건넨 김밥에 그 진심이 다 담겼다고 생각한다.     


오래오래 엄마가 만든 김밥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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