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MlgD3nOndxw&ab_channel=PieroPiccioni
지난 6월,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잠깐의 휴식 겸, 새로운 여행이 필요해서 장 그르니에 산문집 [지중해의 양식]을 아주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이다. 까뮈와 장 그르니에 그리고 더 앞선 시대에 살았던 앙드레 지드까지. 그들의 책에서 자주 나오는 지역은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도 알제와 스페인 남부 도시 말라가, 프랑스 니스까지, 아우르는 '지중해'가 나온다.
약 10년 전,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횡단을 했을 당시, 나도 지중해를 지나 고대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였던 에게해까지, 깊고 푸른 바닷물을 끼고 다녔지만, 단 한 번도 그 바다를 즐길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 그것을 담을 '마음의 양식'이 없었기 때문에 감히 그 문명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소화할 수 없었다.
그리 멀지 않는 미래, 그르니에와 까뮈의 체취가 남은 북아프리카 알제에 가보고 싶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단추 세 개를 푼 흰색 포플린 셔츠를 입고 아라빅 음악이 들리는, 그늘진 카페테라스에 앉아 산미 강한 커피와 오리지널 카멜 담배를 피우며 저 멀리 건물 사이에서 짙은 남색 파스텔 톤의 지중해의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
2023년 7월의 마지막 즈음, 현재, 나의 관념 속 그리운 '바다'는 이렇게 생겼다. 작년 8월, 이별 후 지금껏 앓은 깊고 푸른색을 띤 우울감과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계획의 좌절, 갑작스레 찾아온 코로나라는 병마와 몸속에 있던 복숭아뼈만 한 어떤 '덩어리'를 제거함으로 인한 한 달간의 강제 고립으로 인해 깊고 어두운 내면의 병이생겨 '반대의 세계'를 찾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청량한 분위기와 푸른빛. 바위에 부딪혀 철썩일 때마다 들리는 생명의 외침, 포말로 남은 파도의 잔상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고민과 상처는 어느새 캄캄하고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서 창백한 푸른 점으로 보이는 지구처럼 느껴진다. 이 행성의 푸른빛의 근원인 바다는 지금 이 순간이 거대한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한다.
바다를 마주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나를 느낄 수 있다. 바다는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모두의 마음속에 그려진 바다는 각기 다를 것이다. 바다가 다른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다의 모습은 결국 삶의 아름다움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바다는 순우리말로 '물이 모이는 곳'을 뜻한다고 한다. (국어 어원사전, 2001) 바다는 그 자체로 언제나 존재한다. 최초의 생명체도 바다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바다는 모든 고민과 생각들을 따스히 품어줄 것만 같다. 끊임없이 왔다가 끊임없이 가버린다. 그래서 더 미련 없이 상처들을 내던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인간으로서 삶을 살았던 피카소도 다르지 않다. 피카소는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기쁨의 춤으로 표현했다. 바다는 마음을 오롯이 보여주는 거울 같은 존재다.
피카소는 노년기에 접어든 1945년부터 62년까지 프랑스 남부 지중해에서 생활했다. 당시 피카소는 30대의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았으며 79세에 다른 여성과 또 한 번 결혼하기도 했다. 평범한 노년의 일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생의 즐거움에 가득 차 있었던 덕분인지 당시 그의 작품들은 기쁨과 활력, 여인들과 새로 태어난 자식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피카소의 알록달록한 화풍과 달리 사람들에게 잘 안 알려진, 고독과 우울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청색 작품을 그리던 시절이 있다. 절친의 자살과 가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짓눌린 삶. 그래서 이 시기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비관주의, 실의와 절망 등을 담아내고 있다. 주제도 대게 거리의 거지, 빈민들, 절망한 사람 등이다. 후에 사람들은 이를 피카소의 '청색 시대'라고 명명한다.
‘청색 시대’의 작품들은 당시에는 외면받았지만 입체주의로 각광을 받은 피카소가 청년 시절 푸른 색채로 그려진 작품 속의 인물들의 리얼리티로 인해 최근에는 피카소의 작품 중 가장 고가의 인기 있는 작품이 되고 있다.
청년 시절의 고난이 없었으면 지금의 피카소는 없었다. 가난과 추위, 방랑과 외로움을 푸른빛의 색채로 승화시킨 피카소의 젊은 날. 고독하고 우울했던 청색시대가 있었기에 그 후에 찾아온 장밋빛 인생이 더 화려해 보이는 것이 아닐까. 피카소와 여름, 지중해 바다와 여인,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소년과 같은 얼굴.
언젠가, 지중해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쓸 때, 나의 주제는 무엇이 될까, 나이 마흔이 지난 나이에서 지나간 것에 대한 소회일까 아니면 또 상실과 쓸쓸한 감정을 바탕으로 쓴 것일까.
현재 이 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함이 아닌 멋진 미소로.
지질하고 삐딱하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지금, 이 순간,을 회상하고 싶다.
피카소의 여름 사진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