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영 Sep 11. 2023

소나티네

https://www.youtube.com/watch?v=3pmY_MIcZeU&ab_channel=JoeHisaishi-Topic












작은 소나타라는 뜻의 소나티네는 규모가 작으며 연주하기가 쉽다. 통상적인 소나타가  3~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연주시간은 20~40분이라면,  소나티네는 2~3악장에  6~10분이면 완주할 수 있는 곡이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가요 및 미뉴에트 형식, 3악장은 빠른 론도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타노 타케시의 영화를 보면 바다가 자주 나온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소나티네>, <하나비>, <기쿠지로의 여름> 등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회색빛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 악장 같다. 바다가 나오는 장면은 참 서정적이면서도 조용하다. 그러나 그 악장이 끝나면  일상이던 폭력이던 거칠고 빠르게 몰아친다. 


나의 바다 또한 소나티네와 닮은 것 같다. 강원도 고성의 바다는 혼자 가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어떤 상념을 내려놓아야만 했던 깊고 푸른 바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따뜻한 윤슬이 비치는 바다, 마지막으로 친구와 함께 한 미뉴에트와 같은 재잘거리는 바다와 같다. 


지난 1년간 끊임없이 쉬었기 때문에 사실 나는 쉼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푸른색 상()을 그리고 싶었고 만지고 싶었다. 푸른색은 심화되면 될수록, 그만큼 인간을 더 무한의 세계로 이끌어 들이고, 순수에 대한 동경과 드디어는 초감각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인간에게 이끌어준다고 러시아의 화가 칸딘스키가 말했다. 


사실, 고백하자면, 봄-여름에 준비했던 책 (그리운 그해, 함께하지 못 한 여름)은 결국 출간되지 못할 것 같다. 3월 말에 우연히 출판사와 계약을 했지만 그곳에서는 자기 계발서와 같은 책과 제목을 원했다. 6월 말, 원고를 다 완성하고 나서 계약 해지를 위해 출판사를 찾아갔다. 


"자기 계발이 되지 않는 사람한테, 자기 계발서를 내는 것은 모순이라 생각됩니다. 성격도 잘 안 맞고요. 그리고 제 이야기가 진짜 30대가 쓴 글 같지 않고 노인이 쓴 글 같다고 하셨고 또 저의 사랑 이야기가 청승 떤다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


언어와 문자는 손가락을 가리키는 달과 같다. 출판사 대표는 달이 아닌 손가락을 봤던 것 같다. '30대 남자 + 에세이' 아마 이런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실제로 대표가 제안했던 제목이 '30대 중반에 서서 인생을 돌아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타인에게 교훈이 될 만한 인생을 산 것도 또한 반면교사 할 정도로 특이점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절대 아닌 그냥 이상하게 사는 멍청이다. 


출판사 대표를 욕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무한 경쟁 사회에서 출판사가 픽업할 '글'이란 잘 팔려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구구절절 사랑과 이별 등 무명인인 나의 청승 떠는 일기장은 팔리기가 힘들 것이다. 


이후 20여 군데 정도 내 취향에 맞는 출판사에 이메일을 돌렸다. 현재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 받은 답장은 김영사를 포함한 4~5통. 편집자는 마음에 들어 했으나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대표의 냉철한 눈에는 들지 못했다. 이메일의 내용은 다들 대략 비슷했다.  "(팔리는) 방향을 잡아서 다시 썼으면 좋겠어요" 


다 똑같은 것은 아니나 현재 출판 시장은 대략 이러하다. '유명인'이 쓴 책이거나 혹은 소재가 독특하거나. 

비록  나의 시도가 책으로 출판되지 않아도 원망이나 절망은 전혀 하지 않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고 반성하고 주제를 잡고 다시 쓸 생각은 없다. 


오뉴월, 북악산에서 아카시아 꽃내가 진동할 즈음, 정독 도서관 혹은 국립현대미술관 열람실에서 때로는 울컥하며 왼쪽 눈에 맺힌 눈물을 억지로 참아내며 한 줄, 한 줄 담아내서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썼던 나의 시간은 절대 지워지지 않을 테니깐.  사랑의 달콤함과 이별의 쓸쓸함 등 내가 가진 감정을 가지고 쓴 나의 글은 현재의 나이며, 소나티네의 한 악장이다. 


글에는 글을 쓴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현재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앞으로 전개될 그만의 풍부한 내면세계가 한 줄, 한 줄 글에 글에 담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치열하고 가장 아름답게. 그래야 한 해, 한 해 삶을 살아가면서 내면에는 깊이가 쌓이고 언젠가, 지금, 이곳에서 방황하며 찾지 못했던 당신만의 방향성, 당신만의 울림이 있는 글을 쓰게 될 것이다. 

 

비록 나는  바다를 건너가기 위한 뗏목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소나티네를 들으며 수영은 실컷 했다.  


그리운 그해, 함께하지 못 한 여름 



































작가의 이전글 무스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