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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나장단 Aug 20. 2022

좋아하고, 잘하고... 팔리는 일

문명특급 밍키 PD의 커리어 피보팅

직업으로서의 일은 누군가에게 '팔려야 한다' 

월급값, 물건값을 해내야 한다는 거다. 


누군가에게 팔리는 직업은 크게

1) 남들이 싫어해서 하는 일과 2) 남들이 못 하는 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모든 일이 깍두기처럼 1)과 2)로 나뉘는 것은 아니고 

양쪽이 다양한 분포도로 존재한다.

여기에서 1) 보다 2)의 비율이 높을수록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좋아서 잘하는데, 팔리기까지 하는 일은 남들이 못 하는 일에 해당한다. 

남들이 못 하는 일을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의 질이 다르다.

잘 팔리는 웹툰작가, 연예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남들이 못 하는 

나의 일을 찾는 과정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팔리는 재능을 찾아

때로는 팔리는 자원을 거쳐 

끝없이 팔리는 자산이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명특급 밍키PD의 책에는

탈락을 거듭하던 취준생에서 팔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이러한 고민과 경험이 잘 담겨있어 발췌해 보았다. 


---------

어쩌면 팔리는 재능 : '좋아하는 일'을 만나기까지 


나의 첫 번째 꿈은 디즈니 애니메이터가 되는 것이었다. 

애니메이터는 디즈니랜드에서 일하는 줄 알았고 디즈니 크루즈를 공짜로 탈 수 있는 줄 알았다.

중학생의 나이가 되어서야 품게 된 그 꿈은 너무 간절해서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이제야 비로소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던 나는 디즈니 애니메이터의 홈페이지를 찾아내 그의 메일로 질문지를 보냈다. 디즈니 애니메이터가 되는 방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매불망 답장을 기다렸는데 수신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서 비행기 표를 끊어서 뉴욕에 있다는 그의 사무실로 무작정 찾아갔다. 

하지만 문 앞의 경비원에게 막혀서 들어가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며칠 동안 마수리 앞 공원에 앉아 1달러짜리 피자로 끼니를 때우면서 저 사무실에 있는 애니메이터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내리쬐는 땡볕을 피하려 근처에 있는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제일 시원한 곳이 하필이면 이집트관이라 거기서 오래 머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이집트에 관심이 많으냐고 물어봤다. 

이집트인인 것 같아 보이길래 관심이 많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이집트의 어떤 면모를 좋아하느냐고 또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집트의 왕자>를 보고 이집트를 좋아하게 됐다고 아무 말로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자기가 디즈니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니메이터는 아니지만 음악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그런 신기한 계기로 디즈니 직원을 알게 됐다.

그에게 디즈니 애니메이터 동료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니 그는 흔쾌히 동료의 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애니메이터에게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그토록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

대학교에 복학해 심화과정으로 애니메이션 전공 수업을 듣게 됐다.

....

캐릭터의 관절을 하나하나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정말 내 적성에 맞지 않았고 심지어 그 시간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결과는 C+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 순간 대학에 진학한 이유가 사라졌다.

내가 못 하는 것들을 지워가다가 두 번째 꿈을 품게 됐다.

광고인이 되고 싶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광고 회사 두 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

가장 큰 광고 회사 두 곳에서 모두 탈락하고 나니 '광고와 나는 잘 맞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될 주식이라면 빠르게 손절하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아무런 목표가 없는 상태로 1년을 지내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스브스 뉴스 인턴 공고가 떴다.

방송인이 되고자 하는 꿈은 없었고 그저 회사가 집이랑 가까워서 지원했다.

그런데 인턴 지원에 덜컥 합격해서 보도본부 소속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소속이 그렇다 보니 온갖 사건 사고 속에서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편집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나는 더 밝은 톤의 영상을 제작하고 싶었다. 


그 시기에 예능 PD라는 세 번째 꿈이 생겼다.

보도본부에서 일을 하면서 예능국에 지원을 했다.

SBS와 MBC에 지원했고 이번에도 탈락했다.

광고 회사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능력 있는 예능 PD들에게 심사를 받은 결과였다. 


그때 부터 멀리 보지 않기로 했다.

당장 오늘 나에게 찾아온 기회만 잡으면서 살기로 했다.

꿈을 가져봤자 번번이 타인에게 까이는데 인생에 손해만 주는 꿈을 굳이 또 가져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일하고 있는 뉴미디어 분야에 더 몰입하게 된 계기다.


SBS 뉴미디어국에서 인턴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내가 쌓아야 하는 스펙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다.

어쩌다 인턴에 합격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인턴보다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에 가까웠다.

그래도 오랜만에 합격이라는 글자를 본 직후라 신나게 일했다.

그런데 방송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이 적성에 매우 맞았다.

정말 우연하고 가볍게 시작한 일이 내 적성을 찾게 된 큰 결과로 이어졌다.


2015년 초반 뉴미디어는 그들만의 리그, 살짝 민망한 규모의 아류 미디어 같은 것이었다.

사업성이 보장되지 않고 뉴미디어를 경험한 경력자도 전무했다.

선례가 없는 팀이기에 적은 돈으로 열정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 입장에서는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90년대생을 인턴으로 채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했다.


중학교 때 친구가 자신이 춘 춤을 모니터링해야겠다며 초콜릿폰으로 영상을 찍어달라고 해서, 

늘상 구경꾼 역할을 하던 나는 영상 촬영 업무를 부여받았다.

친구들의 춤이 더 잘 보이도록 넓게 풀샷으로도 잡아보고, 표정이 웃기면 얼굴을 더 가까이 잡아보고, 춤에 동선이 있으면 카메라 워킹도 하게 했다.

사물함 앞이 너무 단조로워서 장소도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친구들에게 춤을 추라고 시켰다.

구경꾼 역할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꽤 적성에 맞는 역할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중학교 때의 내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과 놀았던 그때의 감정을 지금 이 일을 하며 느낀다. 


때로는 팔리는 자원 :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아침에 눈을 뜨고 샤워를 하고 회사에 간다.

밤이 되면 가방을 챙겨서 택시를 타고 집에 온다.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이 기억밖에 없다.

사적인 일상을 포기하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7일 근무를 했다.

촬영이 없는 날엔 12시간 넘게 움직이지도 않고 편집만 했다.

안경을 써도 불편할 만큼 시력이 나빠졌고 운동 부족으로 허리 디스크가 왔다.

아마 회사는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라고 시킨 적이 없을뿐더러 근무 시간을 줄이라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나는 운동선수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마음은 좀 알겠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어마어마한 훈련을 소화하는 그들처럼 나도 훈련을 거듭해야 영상 한 편을 겨우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일하는 과정을 훈련과 연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끝없이 했다. 


'남들이 봤을 때 뭐가 재미있을까?'라는 생각보다, 

내가 시청에 시간을 투자해도 절대 아깝지 않을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했다.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생각하면 구성하는 1분 1초가 아까워진다. 

1분 이상 투자해서 시청자들이 볼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지 그것에 편집의 기준을 둔다. 


마치 오답노트 적듯이 시청자에게 받은 피드백을 기록해두었다.

다음 영상을 제작할 때는 시청자가 좋아했던 포인트를 더 살리고 지적받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회사가 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 시청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역량을 키워나갔다. 


끝없이 팔리는 자산 : 잘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중간점검을 해봤을 때, 이 직업은 내가 기본적으로 가진 성질과 잘 맞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내가 가진 원래의 모습을 억지로 바꿔야 하는 경우가 없어서 스트레스가 크지 않다.

그러니 앞으로 5년은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 살던 행운을 누렸으니 이제 싫어하는 일도 끼워 넣어야 한다. 


처음부터 문명특급 자체가 돈을 버는 일엔 관심이 없었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좋은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인데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이제부터는 돈 때문에 못 했던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프로그램이 이익을 낼 수 있도록 힘써보려고 한다.

광고주와 적극적으로 소통도 하고, PPL을 넣을 자리도 광고주의 마음에 쏙 들게 마련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청자에게 거슬리지 않아야 할 텐데, 돈 벌기가 정말 어렵다. 

좋아하는 일과 싫어도 억지로 하는 일을 단짠단짠으로 섞어서 버무리며 일하고 싶은데 황금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앞으로 남은 5년 동안은 그 비율을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일을 해봐야겠다.

좋아하는 일이 통째로 싫어지는 순간이 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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