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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나장단 Mar 22. 2020

왜, 변호사 그만두고 창업했냐고요? #1

내가 만든 내 일


  돌아보면 저는 항상 ‘뭐하고 살까?’에 대한 고민도, 관심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눈과 귀를 열고 찾아다녔죠. 고민과 관심에 치열한 노력을 더한 덕분에 명문대 졸업장과 변호사 자격증을 손에 쥐게 되었고요,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후 취업 대신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다시 창업을 선택한 것도 어찌보면 그런 고민과 관심, 열정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 같기도 합니다. 그런 저에게 친구들은 말하곤 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고. 넌 항상 오늘을 살기 보다, 내일을 먼저 살아가는 아이였다고. 이 시점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먼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조 단위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유니콘 기업을 만들어낸 대단한 창업가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창업가로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통해 증명하고 싶습니다. 창업가의 삶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걸. 저에게 창업이란 세상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니까요. 저는 창업가로 살아온 10년의 세월을 통해 앙트십스쿨과 조인스타트업이라는 두 개의 서비스를 만들어냈습니다. 올해부터는 함께 사업을 일궈낸 동료들이 새로운 회사를 창업해 앙트십스쿨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창업가로 살아온 10년의 여정을 통해 제가 정의한 창업의 의미를 증명하며 살아왔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창업은 특별한 사람들만 선택하는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창업은 누군가에게는 단박에 부의 추월차선으로 들어서는 방법일수도 있지만, 내 일 하며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이든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 '창업'이라는 방식으로 내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기 좋은 시대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취업과 창업을 넘나들며 내 일을 찾아 스스로가 월급을 만들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 일 하는 삶을 만들어내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내 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고, 내 일을 만나는 방법을 서술하기에 앞서 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변호사에서 창업가로 살아가게 되었는지, 창업가로서 어떤 시행착오 끝에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취업 준비생에서 사법시험 준비생으로

대학시절, 저는 전공(식품영양학) 공부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저는 완벽한 노트필기부터 철저한 학점관리까지 척척 해내는 뛰어난 친구들을 보며 좌절하기 보다는 저는 그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기로 하고 학자 보다는 저에게 잘 맞는 직장을 찾아 취업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대신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산악회부터, 여행동아리, 합창반까지 다양한 동아리 문을 두드려 보기도 했고, 학생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학점 잘 주는 수업 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수업을 선택해서 수강했습니다. 연극 미학을 수강하며 연극을 해보기도 했고, 기업광고론을 수강하며 광고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동양음악의 이해를 수강하며 인간문화재를 찾아 인터뷰 여행을 떠나기도 했는데, 학점을 기준으로 선택하면 도저히 수강하지 못할 과목들이었습니다. 대학 3학년 때는 학과 학술대회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학술대회 운영에 필요한 후원금 모집부터 학술대회의 진행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맡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쯤이면 눈치채셨을 것 같네요. 저는 이렇게 일을 만들어내고, 해내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이러한 과정은 창업가들이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대학 시절의 저는 이런 일들이 창업가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대학생 장영화에게는 '창업'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고, 창업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인식 조차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저에게 운명처럼 변호사라는 직업이 다가왔습니다. 대학 4학년 여름 학기부터 취업을 준비하면서, 사회경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 민법총칙이라는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업이 저에게 크나큰 전환점을 안겨주었습니다.  수많은 화학식을 외우며 자연과 물질의 세계를 탐색해야 했던 전공 공부와 달리 법학은 사람과 사회에서 생겨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 법학 수업을 수강하고 보니, 사람들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 변호사라는 직업은 즐겁게 일 할 수 있는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전의 문턱을 넘어서는 일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던 저는 재빠르게 취준생에서 고시생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딸이 취업 대신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게 된 아버지는 ‘아무나 붙는 시험'이 아니라며 취업을 권하셨습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무나 붙는 시험이 아니다'며 만류하는 아버지 말에 서운함이 치밀어 올라 눈물흘리던 그 순간이. 돌아보면 아버지의 냉담한 반응이 저에게 돌파력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변호사라는 자격증을 얻기까지에는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은 아직도 제게 지루함과 불확실 속에 '포기'라는 단어를 꾹꾹 누르며 견뎌야 했던 시간으로 남아있습니다. 

 

무모해서 용감했던 첫 번째 창업, 법률사무소 겸 북카페 

  마침내 얻게 된 변호사라는 직업은 저에게 나름의 보람과 경제적 여유를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신입 변호사 딱지를 떼고 법정에 드나드는 일상에 익숙해지자 정체되는 제 모습에 불안감이 다가왔습니다. 

세상은 날마다 빠르게 변해가는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고 있는 한계와 정체감을 돌파하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중소기업 창업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글 쓰는 일이었습니다. 일을 만들어내는 창업가를 만나다 보면 나만의 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인터뷰이를 찾아 인터뷰를 진행하고 원고를 써서 잡지사에 보내는 과정은 저에게 ‘일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일'은 해야만 하는 것을 넘어서는 ‘가치’를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들은 일을 통해 세상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창업가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제 마음속에도 자연스럽게 ‘내 일’에 대한 열망이 생겨났습니다. 그 열망에 실행 버튼을 누르게 된 인터뷰이가 바로 모바일 게임 서비스 컴투스 창업자 박지영과  온라인 구인, 구직 서비스 인크루트 창업자 이광석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대학생 때 창업한 창업가들이었습니다. 학생 신분으로 창업했지만,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두 사람을 만나고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겨났습니다. 변호사라는 자격증과 경험을 활용하되, 비즈니스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생각에 법률시장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변호사를 선택하기 어렵다.


소송이라는 문제 해결 방식은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저는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위와 같이 정의하고 ‘법률사무소 겸 북카페’라는 해결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러 와서 사전 진단을 통해 나에게 맞는 변호사를 추천받고, 법률교육을 통해 내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교육서비스가 제가 찾은 해결방법이었습니다. 

 

법률사무소 겸 북카페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고 싶었던 첫 번째 창업


  하지만, 월급 받으며 살던 직장인에게 창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초보 창업가의 선한 의지는 사무실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수익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창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이 무작정 뛰어들었고, 최소한의 재무계획도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간다면 카페 같은 사무실을 운영하고, 직원을 고용하는 대신 사무실 없이 나홀로 창업 방식을 통해 콘텐츠와 고객을 창조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입니다. 무턱대고 도전했던 첫 번째 창업은 6개월을 지속하지 못한채 종료해야 했습니다. 경솔한 도전을 반성하며 변호사 생활로 돌아가 보기도 했지만, 이미 생겨난 내 일에 대한 열망은 변호사로서의 일상에 만족할 수 없게 했습니다. 결국, 시계추처럼 오가던 로펌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제 안에 머물고 있는 키워드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키워드가 협상, 경영, 교육이었습니다. 저는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의뢰인과 소송상대방을 설득해 분쟁을 판결 대신 화해와 협상으로 해결하곤 했습니다. 교육이라는 방식으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경험을 즐겼습니다. 일과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수단인 경영이라는 도구를 정복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찾아낸 키워드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되 창업보다는 취업이라는 방법으로 위험을 낮추자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세 개의 키워드를 갖고 탐색한 끝에 찾게 된 직장이 임원 대상 교육기관인 '세계경영연구원'이었습니다. 저는 세계경영연구원에 무작정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력서에는 제가 왜 협상연구위원이라는 직무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소개하려 노력했습니다. 임원을 상대로 하는 교육 기관인인 그들에게도 현직 변호사의 지원은 매력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면접과 교육 시연과정을 거쳐 세계경영연구원의 협상 교육 연구위원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협상 교육 연구위원이라는 직무는 ‘협상’과 ‘교육’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습니다. ‘협상’은 대안적 분쟁해결 절차이자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핵심역량입니다. 교육은 제가 줄곧 관심 갖고 있던 분야였고요. '협상' ‘교육' '경영'이라는 제 관심사를 그대로 담아내는 연구원 생활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흥미로웠습니다. 대기업 임원들, 중소기업 대표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면서도 저는 하나도 힘들다거나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강의를 진행하지 않는 시간에는 연구원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수업을 찾아 수강하며 경영지식을 쌓아갔습니다. 세계경영연구원에서의 직장생활은 저에게 내 일을 찾아가는데 유용한 단서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1) 나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2) 나는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다.

3) 나는 주도적으로 일 할 때 강한 열정을 발휘한다. 


  직장생활은 월급받으며 조직에 기여하며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정해진 역할을, 정해진 방식으로 해내야 하는 환경은 저에게 야생의 삶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는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결국, 저는 조직을 떠나 창업가의 삶을 다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illust by 슬지구


이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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