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을 만나는 커리어 가이드
“변호사를 안 하신다고요?”
변호사를 그만두고 창업가로 살아오는 동안 줄곧 들어온 질문입니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로펌 대신 기업이나 공공기관 취업을 선택하는 변호사들이 많아졌고, 최근에는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 취업을 선택한 변호사들도 늘어났거든요.
소송과 자문 업무를 벗어나 다양한 선택지를 향하는 변호사들이 늘어난 배경에는 법률 시장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09년 1.1만 명 남짓이던 변호사 수는 2019년에 이르러 2.6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건 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클릭만 하면 내 사건과 유사한 판례를 검색할 수 있고, 법조문을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법률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전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필요한 만큼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변호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는 지인들에게 스스로 정보를 찾아 해결해 보라고 조언하곤 합니다. 절대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비용도 아끼고, 법률 공부를 해볼 수 있으니까요.
지난 10년 동안 법률시장의 서비스 제공자는 2.5배 늘어났고, 사건 수는 소폭 증가에 그쳤습니다. 변호사들은 전문 분야를 특화하거나,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증권 소송 전문, 교통사고 전문, 이혼 소송 전문 등으로 전문 분야를 특화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합니다. 최근에는 법률시장의 니즈를 IT와 접목해 해결하는 서비스들이 법률시장의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용하거나 추천하는 서비스로는 변호사와 고객을 연결하는 변호사 중개 서비스 로톡, 법인등기 등 정형화된 법률행정업무를 저렴한 비용으로 처리해주는 헬프미, 집단소송 참가자 모집부터 수익금 분배까지 집단소송과 관련된 일련의 절차를 돕는 집단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변호사라는 직업을 시장적인 관점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법률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갈등 해결의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니까요. 법률전문가들이 법을 위반하는 경우 초래되는 사회적 혼란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크고,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변호사에게는 사회적으로 높은 공익적 책임감이 요구됩니다. 또, 변호사라는 자격증을 갖게 되면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정치나 경제, 사회 영역 전반에 진입이 쉬운 것도 장점입니다. 그래서 국회로 진출한 법조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법률시장의 변화를 고려해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할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면,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금전적 기대감을 따져보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로스쿨 지원자들이 과거의 기대감에만 의존해 로스쿨을 선택한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적,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후회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로스쿨 입학 준비 부터 시작해 연평균 15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3년 동안 부담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대 졸업생의 90% 이상이 합격하는 의사고시와 비교했을 때, 로스쿨 졸업생들의 변호사 자격시험 통과율은 서울대학교 로스쿨의 경우도 78%에 불과합니다.
서울 소재 로스쿨인 서울시립대의 연도별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살펴보면, 제 1회 시험 합격율이 83.72% 였지만 7회에 이르러 45.33%로 떨어져 해를 거듭할수록 합격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합격률 하락의 원인은 응시 회수를 5회로 제한해 응시생 수는 누적되고 있지만, 응시자 대비 합격자 수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9회(2020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가 1768명으로 결정되면서 대한변호사협회는 합격자수가 과도하게 많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응시자 3316명을 기준으로 산정한 합격률은 53.32% 입니다.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2명 중 1명은 변호사시험에서 불합격해 변호사 시험 준비를 위한 무한루프를 타거나, 다른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입니다.
어려운 난관을 뚫고 변호사 시험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신입 변호사들은 다시 구직난에 놓이게 됩니다. 제가 변호사로 일하던 10년 전 무렵에는 공공기관을 선택한 변호사들의 경우 행정고시 합격자와 동일하게 5급 사무관 직급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공공기관들도 채용하는 변호사의 직급을 7급으로 낮춰 채용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기업의 경우도 직급은 물론 연봉 조건도 지속적인 하향 평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법률서비스의 대중화라는 로스쿨제도 도입 취지에 맞게 방송통신대학 및 야간대학에서도 로스쿨 운영이 가능해 진다면 변호사들이 누리던 기득권은 상당 부분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변호사라는 자격증 보유자의 숫자를 통제하기 보다는 시장에서 실력을 검증받는 방향으로 제도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아래와 같은 내용을 미리 살펴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 변호사라는 직업의 사회적 가치는 변함이 없지만 경제적 가치는 크게 변화되었다.
-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경제적 가치 변화를 사전에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 변호사 자격증 자체 보다 변호사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직업이 갖고 있는 경제적 가치의 변화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의사, 회계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와 지식노동자들 대다수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개업하는데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변호사들에 비해 개원시 막대한 설비 투자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의사들은 병원 경영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폐업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지식노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교수 임용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교수 임용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는 박사 학위 소지자들은 늘어가지만, 교수 임용의 진입 장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학령 인구 감소로 대학의 재정상황이 악화되다 보니 신규 교수 임용을 극도로 자제하는 현실입니다.
취업준비생 대다수가 선망하는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막상 직장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기업이 제공하는 안정감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합니다. 글로벌 경쟁의 가속화 속에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한 중공업 분야는 지속적으로 구조조정 소식을 전하고 있고, covid발 경제재앙은 여행, 항공사업을 단 시간에 초토화시켜 버렸습니다. 현재로서는 대한민국 간판 기업으로 버티고 있는 현대, 기아 자동차도 자율주행 기술의 일반화와 전기차 시대의 등장 앞에 5년 후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오프라인 중심의 고비용, 저효율 운영구조로 운영되고 있는 은행 역시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상황이고요. 이제 우리는 전문직 자격증, 대기업 취업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전방위적인 불안과 불확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