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에서 워킹으로
prologue
대체 내게 무슨 깡이 있었던 걸까?
9월 그 날 새벽밤은 유난히도 설레고 떨렸다.
시간은 거슬러 제 작년 6월 중순으로 간다. 뭔가 도전할 수 있다는 마음에 처음 도착한 파리, 모든게 새로웠다.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 또 뭔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파리에 도착해서 바로 일을 구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폰도 개통해야하고 집세도 내야하고 이것저것 할 게 많았다.
또한 요리를 다시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정성스레 CV(이력서)를 써내려갔고
수십번의 수정 끝에 나는 이력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서야 나는 직접 레스토랑을 찾아가서 이력서를 전달하거나, 온라인으로 몇몇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보냈다.
9월 3일 운 좋게도 약 미슐랭 1스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짤렸다.
일한지 1주일만에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없다는 셰프의 답변을 받았다.
일주일간 파리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에서 일을 해본 나는 처음으로 '벽'이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열심히 하면 뭐든 된다고 믿는 사람중에 한 사람인데 처음으로 내가 열심히 했는데도 '벽'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각성했다.
그 당시에 나는 일을 하기위해 필요한 언어(영어,불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내가 결정적으로 해고를 당한 이유는 '언어' 였던 거 같은데, 팀원들과 주방에서 소통 마저 되질 않았으니.. 짤릴만도 했다.
또한 나를 뽑으신 셰프님은 내가 수셰프의 역할을 하기 바랬었고, 그 역할에선 언어가 특히나 중요했다.
그 때 수셰프는 일본국적의 여자 분이셨는데 일을 정말 잘 하셨다.
정말 위생적으로, 스킬적으로, 속도.. 리더쉽 뭐 하나 빼놓는 게 없을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 여기있나 싶어서 감탄만 늘여뜨려 놓았다.
프랩리스트를 정리해놓거나 메뉴 나가는 것도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를 해놔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이 배웠던 거 같다.
언어만 빼놓고 본다면 주방안에서의 일은 한국보다 더 뭔가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느낌이 컸다.
그리고 미장플라스 라고 불리는 전처리 작업 속도가 정말 빨랐다.
주방도 생각했던 것 보다 엄청 작았지만 그 좁은 주방에서 다양한 메뉴가 나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이 곳은 과일이나 채소의 상태가 거의 최상이었다. 엄청 신선하고 좋았다.
하지만 큰 문제점이라면 서비스 때는 불어가 하나도 들리지가 않았다.
불어 연습을 조금 했다고는 했지만 외국에서의 첫번째 일이기도 했고, 모든 상황자체가 너무 어색하고 적응이 잘 되지가 않았다.
이것은 요리사에게 치명타라고 할 수 있다. 서비스 시간에는 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를 못하고 곁눈질로 보고만 있었고,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계속 위축 되었다.
나는 겉으로만 보여지는 간절함이 느껴졌을 뿐 실전에서는 엉성 그 자체였다. 또 셰프에게 가장 큰 실망감을 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일한지 5일차 서비스의 마지막 디저트가 나갈때인데 그 때 나는 본능적으로 "이거라도 잘 해보자!" 라고 되뇌었고,
그 순간
나는 부랴부랴 까치발을 서서 찬장에 있는 디저트 과자 통을 꺼냈고, 이렇게 디저트를 잘 마무리 했나 싶었지만 사건은 이제 터진다.
디저트에 곁들여 지는 과자는 스치면 깨져버릴만큼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과자였고 그 통을 닫다가 통이 안닫기길래 힘으로 닫으려고 했는데 통의 뚜껑이 잘 맞물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과자가 들어있던 통은 넘어졌고 이내 거기 들어있던 수십개의 비스켓이 다 깨져버렸다. 그 순간 같이 일했던 수셰프가 있었는데 그 수셰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고, 얼굴이 빨개지며 한숨을 크게 쉬곤 셰프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 수셰프는 내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괜찮다고 다시 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이미 선을 넘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엉망 진창이었던 다음날 직원들의 표정이 다들 굳어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점심을 먹고 셰프는 나를 불러 이야기를 할 수 있냐 물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이거 큰일났구나.
셰프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감이지만 오늘이 너가 일하는 마지막 날이 될 것 같아. 여기서 일을 더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해"
나는 그말을 듣고 나서 다시한번 간절하게 셰프에게 이야기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느낌이었다.
당장에 돈을 벌어야 하는 나의 입장에서 못하는 영어와 불어로 더듬더듬 나는 이야기 했다.
"저 한 번만 다시 해볼 수 있을까요? 정말 열심히 할게요."
여기서 키 포인트는 열심히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완벽하게 잘 하는 게 키포인트 였고, 잘 준비된 사람만이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또 '벽'을 느꼈다.
셰프는 내가 딱해보였는지 나에게 이것저것을 조언해주었다.
"최대한 팟캐스트를 많이 듣고, 신문을 읽고 그렇게 생활해봐. 적어도 몇개월에서 몇년이 걸릴 거야" 라고 이야기를 했고 나는 수긍했다.
그 말을 듣고 와이프에게 장문으로 카톡을 보냈다. "나 정말 하고 싶었는데.. 내가 이렇게 짤렸어..''
와이프는 내게 말했다.
"얼마나 마음고생 했을까. 난 항상 자기 편이야. 이번을 계기로 해서 더 발전해보자. 고생했고, 맛있는 거 먹고 힘내자! 사랑해"
이말이 어찌 큰 힘이 되던지..
그 날 저녁 서비스에서 나는 셰프에게 이런말을 들었다. "너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그런 나의 마음 가짐 덕이었을까? 나는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 가짐으로 수셰프와 셰프만 칠수있는 서비스 종을 쳐보고, 접시에 소스 한방울도 떨어뜨려봤다. 물론 뒤지게 혼났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영영 빠이 빠이 인사를 하고 집으로 걸어갔다.
첫번째 직장에서의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나는 약 90여개의 이력서를 파리 전역의 레스토랑 곳곳에 돌렸다.
마지막 같은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몇곳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제일 눈여겨 봤던 레스토랑에 답을 보냈다.
무려 그곳은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었다.
어느날 메일 한 통이 왔다. 미슐랭 2스타의 셰프님이셨다.
"월요일 아침에 만나서 주방에서 한 번 요리를 해볼 수 있을까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누군지 보여주자고.
내일이 마지막인 것 처럼 한 번 해보자고 말이다.
그 답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입니다! 제가 가져갈 것은 있을까요?"
셰프의 답은 간단했다.
8am, Chef jacket, some knifes
Have a nice week end
나는 이내 이렇게 말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 때 뵐게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렇게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나는 한 숨을 못잤다.
유난히 어둑하고 고요했던 새벽, 그 날 따라 유독 빠르게 바뀌어 가던 밝고 쨍 하던 그 날 아침 7시 46분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