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그 문을 열었을 때, 난 알았다.

그게 내게 기회였다는 것을

by Bob chef

이게 도파민 인가?


출근 전날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문장을 달달 외웠었다.

하트만 보이는 나
아내님의 첫 출근 꽃 , 편지

출근 10분 전 설레는 레스토랑 문을 열었을 때, 나무로 된 문이 참 무거웠고, 뭔가 끼익 소리가 났다.

나무와 숲 냄새가 나를 반겼다. 이 냄새가 낯설지 않았지만, 처음 맡아보는 그런 냄새라 굉장히 신선했다.

불은 다 꺼져있고, 노트북 불빛에 의존해 작업하고 계신 셰프님이 앉아있었다.

사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몇 번이고 그 셰프님이 어떤 분이신지 검색하고 찾아봤었다.

그의 자서전엔 어려서 농부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시골 출신인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왠지 모르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의 첫 모습을 봤을 때 나는 Bonjour chef 한마디 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짧은 인사와 함께 악수를 했는데 손이 참 두껍고 따듯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일찍 왔냐는 말을 들었다.

한국 주방에서는 첫 출근이 아니더라도 출근시간 10분 전, 20분 전 오는 것이 ‘예의’였는데 나는 금새 알아챘다.

프랑스는 8시 출근이면 8시에 와도 되구나. 그때 이후로 나는 절대 일찍 들어가지 않고 시간을 정확히 딱 08:00에 맞춰서 출근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건 지키고 있다.


셰프님과 짧은 인사를 나눈 동안 나는 그의 눈을 봤다. 그렇게 눈이 파란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눈이 선한 사람, 눈망울이 촉촉한 사람, 눈을 제대로 마주치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이 모든 것이 충족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숨이 막혔다.

그리고 그 짧은 몇 분에 나는 머리가 번뜩였다. 드디어 내가 스승으로, 멘토로, 셰프님으로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났구나.

제대로 찾아 왔구나, 기회구나 싶었다.


미슐랭 2스타

그리고 보이는 주방은 온통 대리석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입구에 선명히 새겨진 미슐랭 2스타 간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옆에 뭘 할지 몰라 서 있는 태국 국적으로 보이는 여자애.


곧이어 뒤에 어떤 친구가 한 명 들어왔다. 대머리에 콧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쓴 그런 친구였다.

셰프님은 그 친구에게 잘 부탁한다는 짧은 말과 함께 노트북 앞에 다시 앉으셨고, 나는 그 친구를 따라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그 좁고 어두운 라커룸에 여러 친구들이 Bonjour, Salut… 난생 처음 보는 인사를 했고, 나는 프랑스에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로 자기 이름을 이야기하며 악수했다. 라커룸은 정말 왠지 모르게 어두웠는데 휴대폰 후레시를 다들 켜놓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되게 피곤한데 뭔가 또렷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언어는 안 되지만 보여주자’라는 생각만 되뇌었다.


두 번째 출근을 축하하는 아내님, 장인어르신의 카톡 메시지.



나를 안내해준 대머리 친구의 이름은 JT였다.

친구들이 내 라커룸을 대충 알려주고 나는 가방과 옷을 벗어 그곳에 던져 놓고 얼른 환복을 했다.

JT는 옆에 앞치마와 함께 린넨(주방에서 쓰는 타월)을 챙기라고 했다.

문을 열고 이제 주방으로 가려고 하는데 나는 그 옆 거울에서 내 모습을 정돈하고 내려갔고, 계속해서 주방으로 오는 친구들과 인사하며 눈을 어디에 둬야 되는지도 모른 채 밑 지하주방으로 내려갔다. JT는 이후로도 나를 안내했다.

디쉬마다 필요한 허브를 친절히 정리해준 JT


허브 도감들

작업장에는 허브 도감이 도배되어 있었다.

여기 레스토랑에는 지하에 큰 워크인 냉장고와 건재료, 정말 많은 식재료들로 차 있었고 그 틈새에 CAVE라고 써진 와인 동굴도 있었다.

“뭐지 여긴…” 정말 놀라웠다. 이게 투스타인가?


무튼 나는 가자마자 일을 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무수한 작업들.

MISE EN PLACE. 이게 말로만 듣던 미장 플라스구나.

사실 한국 주방에 있을 때는 미장, 프랩이라는 말을 자주 썼었다.

근데 그 말을 그냥 작업 준비라는 뜻으로 알고 있었는데 요리하면서 제일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는 것을

이곳에서 정말 뼈저리게 깨달았다.

상상 이상으로 요리를 만드는 것보다 재료 준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쉬는 시간 JT가 직접 그려준 도감


무수한 허브들….


미장 플라스라는 말을 직역하면 ‘모든 것이 항상 제자리에 있다’라는 말이다.

즉, 요리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바로바로 쓸 수 있게 만들어 놓는 그런 일련의 준비 과정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나는 늘 일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외국인 신분으로서 먼 곳 이국에서 일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비록 테스트였긴 했어도 나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처음으로 내가 맡은 일은 허브 다듬기였다.

난생 처음 보는 수십 가지의 허브들. 잡초 같이 생긴 것도 있고, 한국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쳐빌, 프리셰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불어로 불렸다.

보니까 파슬리도 있고 친숙했지만 뭔가 조금 달랐다.

프리셰, 무롱


무롱이라는 크래숑(물냉이) 비슷한 게 있는데 뭔가 더 고급스럽게 생기고 맛도 굉장히 단 느낌의 씁쓸한 맛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참 특이한 방법으로 허브를 손질하거나 보관하고 다듬었다.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나는 그 방법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금새 적응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길 나는 스펀지 같다고 이야기했다. 적응력이 빠르고 뭐든 잘 흡수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래서 이름도 Bob이라고 지었다. 스펀지 밥.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밥, 그리고 밥을 좋아해서 밥.


한글 이름도 좋긴 한데 내 장점을 모여줄 한 단어가 뭔지 곰곰이 생각해보다 지은 외국 이름이었다.

이름으로도, 성격으로도, 실력으로도 나를 각인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은 사라졌고 어느새 훌쩍 3시간이 흘러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게 되었고, 밥이 정말 꿀맛이었다.

근데 보니까 나만 조리복이 검정색 반팔이었고 다들 흰색 옷을 입고 있어서 너무 당황했다.

오늘 하루 일하니까 그 뒤에 나는 합격될지도 불합격 될지도 모르지만 흰색 조리복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고,

좋은 칼이 없어서 칼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제 숨이 좀 트였나 생각했는데 그때부터가 진정한 시작이었고

이것은 일이었고 테스트가 아니라 실전이고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