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

프랑스 파리 주방에서 살아남기

by Bob chef
면접 보자는 셰프님 메일

그렇게 맹렬하게 일을 하고 나서 봤더니, 어느덧 시간이 12시가 넘어 있었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는데 시간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나는 일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랬다. 시간을 자주 보곤 했었다. 언제 끝날까? 이 정도면 끝이 났을까?


그렇게 시간 계산을 자주 하다 보니 나는 시간을 보는 습관이 생겼었다. 이 습관이 안 좋은 것 만은 아니지만 또 결코 좋은 거라고도 할 수 없는 게 빠져있지 않다는 것의 반증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루에 일을 다 마치고 나니 갑자기 셰프님께서 나를 불렀다.


나는 레스토랑 말고 옆에 있는 사무실로 보이는 건물에 들어갔고, 셰프님과 이야기를 했다.

오늘 하루가 어땠냐는 셰프님의 질문에 나는 답했다.

"정말 좋았어요!, 재밌었습니다"

셰프님은 나에게 물었다. 너 여기서 일할래? 일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를 했다.

"네! 좋습니다, 저는 프랑스 요리를 정말 배우고 싶고, 한국 요리를 만드는 데에 능합니다'''... "

이렇게 내가 자기소개에서 썼던 문장을 느리지만 정확히 뱉어냈다.

Tres heureux de faire votre connaissance,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팀원 축하 메일

그러고는 이야기했다.

"셰프님 사실 제가 프랑스어를 잘 못하는데 괜찮을까요?"

셰프님은 그 말에 괜찮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괜찮아! 영어로 해도 괜찮고, 조금씩 조금씩 늘면 돼"

그리고 계약서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난생처음으로 외국에서 정식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인턴도 아니고, 정직원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내 또 이야기를 했다.

"셰프님 사실 제가 비자가 지금 워킹홀리데이 비자라서 1년 뒤에 만료가 됩니다. 더 일을 하고 싶은데 비자를 연장하는 법을 모릅니다. 어떻게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 많이 검색하고 찾아봤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1년이라 노동비자를 받으려면 회사가 지원해 줄 수도 있고, 사장님과 이야기해 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부족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더듬더듬 이야기를 했는데 셰프님께서 한참을 듣더나 나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변호사를 가지고 있고, 우리 회사는 지원해 줄 수 있어,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나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설렘과 동시에 약간 부담감도 있었다.

잘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출근 길


셰프님과 일주일 뒤에 볼 것을 약속하며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가서 와이프한테 자랑했다.

내 와이프는 나를 꼬옥 안아주며 너무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나를 보듬어 주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20명이 넘는 회사에서 일을 한 적이 없다.

최대 10명, 그리고 15명 직원 정도가 있는 곳에서 1년 정도 일을 해봤었는데 스스로 조직 생활 문화에 잘 녹아들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가 더러 있었다.

근데 내가 이곳의 직원이라니.. 믿기지가 않으면서 한편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 심지어 20명이 넘는 직원이 있는 대형 회사에서 일하는 게 나는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다.

더구나 외국에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도 잘 모르고 의사소통도 잘되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 속에 레스토랑에서의 일이 시작되었다.

직접 마련한 조리도구
불어 공부
조리복 구경

일주일 동안 나는 요리를 하는 데에 필요한 조리복과 칼을 한 자루 샀고 언어도 꾸준히 익혔다.

그리고 나의 아내는 내게 거듭 강조했다.

"오빠가 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그 팀에 잘 녹아있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 잘하려고 하지 말고, 팀원이 되려고 노력해!"

나는 그 말을 새겨듣고 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꾸준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그렇게 팀원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열심히 했고, 꾸준히 했던 것을 그냥 보여주자고 결심했다.


발효식초, 발효 식품들

첫 출근 디데이가 되고 나는 다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주방을 찾았다.

오전 8시 무거운 문을 열고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들어감과 동시에 내가 처음 테스트를 봤을 때 맡았던 향이 났다. 습한 숲, 나무 향을 맡고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라커룸으로 자연스레 발을 옮겼다. 주방 타월 한 개 조리복을 가지고 주방에 들어섰고,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아침 일찍 도착한 재료를 지하의 큰 워크인 냉장고로 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리핑을 한다는 말에 나는 무슨 일인지 싶어 1층으로 올라갔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매일 8시 반에 셰프님이 회의를 여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친구들을 따라 메모지 한 개와 펜을 가지고 자리에 앉았다.

애들이 하나둘씩 다 모이고 엄청 조용해졌다.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릴만한 고요함이었고, 셰프님이 입을 여시며 운을 떼셨다.

메뉴

#($@(#$*!* 알 수 없는 불어로 뭘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뭘 말씀하시는지 하나도 몰랐다. 나중에 JT(견습생)에게 물어보니 오늘 예약 인원과, 특이사항을 알려주는 내용의 브리핑이었고 나는 열심히 받아 적었지만 1이라는 숫자 하나만 알아듣고, 친구들과는 다른 텅텅 빈 메모지만 들고 간 채 지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연이은 허브 작업이 이루어졌다. 내가 맡은 업무는 JT라는 친구와 함께 허브를 관리하고, 각 디쉬에 필요한 허브를 손질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각 파트의 친구들이 주는 일을 조금씩 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허브손질 순서

허브 손질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는데, 내 손톱보다도 작은 허브를 자르고 조각내며 또한 세게 잡아서도 안되며 칼이 정말 날카롭게 잘 들어야 그 허브가 잘렸다. 그리고 이름도 어려웠고, 허브 이름을 다 외우느라 진짜 혼났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 이 허브 손질하러 온 게 아닌데.. 나 요리하러 왔는데.." 마치 요리를 하나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일을 내가 하고 있으니.. 나는 정말 답답했지만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한국에서 요리를 몇 년 했건 간에 나는 아예 요리를 처음 하는 사람이라고 빙의를 하고 초심을 찾으러 온 사람이다. 이렇게 말이다. 그랬더니 마음이 더 가벼워졌고, 나는 배우는 입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작업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을 먹게 되었고, 또 일을 하다 보니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지하에서 일을 했다. 키가 조금 작은데 수염이 나고, 뭔가 포스 있어 보이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일주일 동안은 허브를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아직 언어가 익숙하지 않으니 서비스는 일주일 정도 밑에 지하에서 일을 하다가 해보자고. 그 친구는 Alex라는 친구였고, 수 셰프였다. 역시 포스가 있는 게 .. 한자리 꿰차는 친구일 것 같더니만.. 역시나.. 수 셰프였구나.

그 친구의 말 한마디에 모든 친구들이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 마냥 행동했다.

나는 군대인 줄 알았다. 그렇게 나의 길면서 짧은 레스토랑 첫 근무가 끝났다

집 앞 무화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