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김장할때나 쓰는 말이지
alex라는 수 셰프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일에 있어서 정말 어느 누구보다 탁월하게 잘했다.
콩을 손질하더라도 정말 대충 손질하는 거 같은데 엄청 빠르게 잘 손질했고, 관자는 2박스를 항상 아침을 먹기 전에 손질했는데 2박스를 30분 안에 끝냈다. 알고 보니 미슐랭 3스타 출신이었고, 그 친구는 심지어 나보다 1살 적었다.
내가 미슐랭 3스타는 2스타와 많이 달라라고 물어봤을 때, 비교를 해준 적이 있었다.
나는 관자 10박스를 혼자서 깠고, 그냥 기계처럼 일했다. 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체감이 확 되었다.
참고로 야닉 알레노 라는 프랑스 3스타 유명 셰프님 밑에서 일을 했었다고 한다.
요리 학교를 따로 다닌 적은 없고, 생계를 위해 요리를 어린 나이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대단하다. 정말. 어나더 레벨.
내가 언어가 안되니 평소에는 잡일 아니면, 허브, 집기 치우기 설거지를 도맡아 했었는데 그때 나에게 알렉스가 한마디 건넸었다.
"너 생선 손질할 줄 알아?"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일식집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당연하지! 할 줄 알아!"
수 셰프는 나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그러면 여기 있는 대구 2마리 손질해 줘"
나는 자신 있게 손질에 나섰고, 2마리를 깔끔하게 손질했다고 생각했다.
알렉스(수 셰프)는 나에게 다시 와서 물었다.
"너 잘하긴 하는데 조금 느리더라"
그리고 이틀 뒤 알렉스가 나에게 생선 손질 시연을 보여줬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정 반대로 생선 필렛을 떴고, 내가 손질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깔끔했다.
거기서부터 나는 어떤 '벽'이 느껴졌고, 알렉스를 나의 상사로 숭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나는 고기파트장(엉기)이나 스낵파트장(마문),가니쉬 파트장(링웨이), 가드망저 파트장(리카도)이 시키는 간단한 작업 (재료 진공포장이나 야채 손질 따위)의 일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는데
전복 손질을 할 기회가 주어졌고, 거의 3일에 1번 꼴로 전복 60마리 정도를 손질했었다.
근데 여기 레스토랑에서 전복 손질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전복을 솔로 진짜 검은색이 절대 보이지 않게 빡빡 닦아야 하고, 이 많은 것을 30분 1시간안에 무조건 끝내야한다.
처음에는 2시간 정도 걸렸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나중에는 40분 정도 걸렸다.
심지어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두꺼운 망치 같은 걸로 두드려야 했는데 너무 세게 두드리면 다 찢어지고, 잘 두드리지 않으면 육질이 질겨진다. 내가 60개 중에 1개를 찢어 먹었는데 그 순간 알렉스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너 그럴 거면 하지 말래?"
나는 당황했다. 59개를 잘했고, 1개를 찢었었는데.. 그게 잘못된 거라고?
그렇다. 미슐랭 2스타는 한 치의 오차도 용납을 허용하지 못하고, 실수란 절대 없다.
그렇게 나는 숨을 죽이면서 매일을 보냈고, 언어는 모를지언정 열심히 땀 흘려가면서 피나게 노력했다.
이 레스토랑에서 물건 정리나 설거지만큼은 1등으로 잘해보자. 내가 잘하는 청소를 어느 누구보다 잘해서 이 팀에 꼭 있어야 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자고 다짐했고, 그 결과 알렉스한테 설거지를 인정받았다. 빨리 끝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혹은, 급히 정리를 해야 할 때는 알렉스는 나에게 부탁하고 요청했다. 나는 알렉스 말은 무조건 들으려고 했다. 또한 고기 파트장(엉기), 스낵 파트장(마문) 친구의 말도 꼭 무조건 하루 안에 다 끝내었고, 동료들에게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언어는 부족하더라도 성실하고 빠르고 부지런하게 일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이다.
한국인은 그렇다. 근성이 있다. 깡이 있고, 나 또한 해병대 사령부 의장대 출신이라 이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 있어봤고, 더 힘든 훈련도 버텨냈고 해왔기에 이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 마인드가 여기에서 제대로 먹힌 것이다.
일주일 중 4일을 거의 16~18 시간 근무를 했다. 수요일인 하루는 유일하게 오후 1시에 출근하고 주말을 제외한 평일은 아침 8시 출근해서 새벽 1시 정도에 퇴근하기를 반복하는데 이게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외국인이고, 일을 함에 감사하고 심지어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지치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고,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일을 했다.
그렇게 2달 정도 일을 했을까, 알렉스는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아직 언어가 잘되지 않아서 서비스는 무리가 있을 거 같아. 서비스는 셰프님이 있어서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다 혼나거든, 그러니까 영어를 조금 더 공부해 봐."
알렉스가 나한테 부탁을 한 것이다. 나는 기를 쓰고 밤낮으로 팟캐스트를 듣고 서비스를 공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2달이 지나서야 나는 지하에서 위 1층으로 신분이 상승되었다. 그렇지만, 서비스는 정말 어마 무시 했다.
정말 예민의 끝, 디테일의 끝,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먼지 한 톨, 지문 하나까지도 신경 쓰는 셰프님의 그런 날카로움과 카리스마에 나는 기가 죽었고 내가 음식을 만지는 것마다 셰프님은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수 셰프(알렉스)와 CDP(엉기,마문) 한테 뭐라고 했고 나는 두 차례 세 차례에 걸쳐 동료들한테 미안함을 샀고, 서비스를 하는 게 너무 불편하고 너무 두려웠다.
몇 분 안에 요리가 나와?라는 말을 계속 말하며 커뮤니케이션과 정리 이 두 가지가 그냥 숨 쉬는 것 마냥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언어가 되지 않는 이상 나는 이 모든 게 정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한국에서도 긴박한 상황에서 한국말로 하더라도 꼬이기 일 수인데 미슐랭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서 그것도 2스타의 레스토랑에서의 서비스란.. 정말.. 밥도 제대로 못 먹게 긴장했었다. 하지만 정말 이를 악물고 혼나더라도 또 시도하고, 그러다가 접시도 깨버리고.. 그러면 또 지하에 내려가서 청소하고, 또 일주일 지나서 1층에 올라가서 서비스하다가 또 혼나서 내려가고를 반복하고 마침내 나는 조금씩 서비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안 들리던 불어가 들리나? 찰나에 또 실수를 하고, 정들었던 스타지 친구 JT 가 나가고 또 새로운 스타지 친구가 들어오고, 또 다른 직원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주말을 지나 3달째 되던 날 아침 브리핑에서 셰프님이 나한테 이야기했다.
"밥 다음 주부터 가드망저니까 일 잘 배워놓고, 시작하면 될 거 같아."
그 말을 들은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친구도 진급을 했다. 기존에 가드망저였던 리카도라는 친구는 가니쉬 파트로 이동을 했고,
링웨이는 고기 파트 장으로 진급을 했고, 기존에 고기 파트 장이었던 엉기는 2달 뒤 고기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서 이 곳을 그만둔다고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수 셰프인 알렉스도 마찬가지로 조금 쉬려고 나간다고 했다.
이별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라는 노래 가사처럼 언젠가는 다시 만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나는 그 친구들이 떠나기 전 많은 기술들을 배우고자 마음먹었다. 특히 알렉스에게 말이다.
알렉스가 한말 중에 이런 명언이 있었다.
always lavette until die.. 항상 행주와 함께해라, 죽을 때까지.
그만큼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위생관념을 가지고 있어라는 말처럼 느껴졌고
그 뒤로 나는 항상 행주를 몸에 지니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또 가드 망저의 리카도가 한 명언이 있는데
내가 한 손으로 일을 하면서 다른 손은 다른 것을 만지고 있었는데 소스를 크게 흘렸었다.
그때 리카도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Always work your two hands
항상 일은 너의 두 손으로 해라.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 뒤로 나는 어떤 일이든지 두 손으로 일을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튼
나는 로렌조라는 가드망저 파트장과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리카도에게 가드망저의 일을 인수인계받게 되었는데, 미슐랭 주방에서 인수인계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일이었다. 너무 힘들고, 언어도 안되고 심지어 수많은 소스의 레시피와 방법들을 바쁜 상황 속에서 하나하나 다 배우고 숙지해야 하고 연습이 아니고 실전이니 이것을 적용하는데 엄청 애를 먹었다.
그렇게 또 로렌조라는 친구와는 큰 다툼이 생기게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