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니가 가라, 하와이~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110화

별별챌린지 3기 -23일 차




분꽃(꽃말: 소심, 후회)



니가 가라, 하와이


"니가 가라 하와이~"는 영화에서 나온 대사다. 영화 <친구>에서 고등학생 때 친구였던 두 사람이 성인이 돼서 조폭으로 만나 나누는 대화였다.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아는 느낌'의 말이 되었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하와이 같은 좋은 여행지를 너에게 양보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대한민국 전 국민이 알 것이다. '하와이가 그렇게 좋으면 너 나가라'라는 느낌이었다. 영화에서 강력하게 메시지 전달이 됐다. 덕분에 영화 속 대사가 하나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코미디에서도 많이 패러디됐는데 다소 웃기고 과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영화 <친구>는 2001년 작품이다. 곽경택 감독이 부산 지역의 유명 조직폭력단체 칠성파의 행동대장, 1993년에 칠성파 조직원에게 살해된 20세기파의 정한철 등과 학창 시절 때 경험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자서전적인 내용이라고 한다. 장르는 범죄, 드라마, 액션, 느와르이고, 각본과 감독을 모두 곽경택이 맡았다. 주연배우로는 유오성, 장동건, 서태화, 정운택, 김보경이 열연했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등의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역대 한국 관객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엄청나게 흥행했지만 2001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7개 상에 노미네이트 됐을 뿐 단 한 개의 상도 받지 못했다. 2001년 최고로 흥행한 영화에 대한 마뜩지 못한 결과였다.


영화 <친구>가 흥행하고 이후 한국 영화계에 조폭영화들이 범람했다. 영화가 너무 잘 만들어진 탓일까? 일부 청소년들의 경우 조직폭력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왜곡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영화가 개봉된 후인 2001년 10월 13일 실제로 부산의 모 고등학교에서 일진인 같은 반 학생에게 폭력을 당한 한 학생이 영화의 일부 내용을 여러 차례 돌려본 뒤 수업 중에 교실로 난입하여 동기생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누군가는 살인도 저지르는데 나는 영화를 봤는데도 당시에 히트 친 '니가 가라 하와이~'라고 속 시원하게 말 한마디 못한 일이 있었다. 그날의 아쉬움을 글을 쓰며 해소하려고 한다.


2002년 12월 방송대 4학년 기말고사를 보러 갔다. 마지막 기말고사를 잘 치르기 위해 새벽시간까지 공부했다. 여름동안 월드컵으로 뜨거워진 열기는 가을까지 계속 이어졌다. 겨울이 되고 찬바람이 불면서 열기가 차츰 식는 것 같았다. 새해가 되면 일 년 계획을 세우듯이 매달 월초에는 한 달 계획을 세웠다. 매일 아침에는 그날의 계획을 세우며 지냈다. 당시 나의 노트에는 돈에 대한 메모가 많았다. 몇 개월 후면 전세 만기가 될 터였다. 미리 전셋집은 얼마나 되는지 계산을 해놓은 장이 있었다. 당시 살고 있던 집이 다행히 전셋집이라서 2년 동안 원리금 상환 방식으로 전세자금 대출금을 일부씩 상환하고 있었다. 다시 얻는 집도 전세자금 대출을 받는다면 이사가 가능할 것 같았다. 목표금액을 설정했고 부족한 돈을 모으고 있었다.


남편이 독수리 오 형제와 술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던 터라 약속이 있는 게 차라리 좋았다. 덕분에 늦게까지 편하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12시쯤 전화 통화를 했었다. 새벽 2시 전에는 들어온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2시가 넘어가도 집에 오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술을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는 탓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술이 과한 날은 마치 인생을 그만 살 것 같이 이야기하는 탓에 나는 그가 술을 마시는 게 무섭고 싫었다. 그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있을 독수리 오 형제 중 한 명인 상 0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상 0 선배(그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걱정이 커져서 다시 그에게 전화를 계속했다. 그가 술에 잔뜩 취해서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와 연락이 안 되는 동안 겁먹고 화가 나서 그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화를 냈다. 걱정하는 사람 생각은 안 하냐고 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나와 통화 도중에 전화기를 가로채간 것인지 상 0 선배(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압적인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왜 자꾸 전화를 하냐고 말하는 그녀에게 기분이 상했다. 내 전화를 안 받아서 그녀는 집으로 갔는지 알았는데 남편과 함께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더 화가 났다. 그가 정신이 없이 취했으면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야지 지금까지 뭐 하는 거냐고 말했다.


상 0 선배(그녀)는 독수리 오 형제들과 같이 있으니 걱정 말란 식이었다. 아직까지 여자 넷, 남자 한 명 중 한 명(현 0만)만 집에 가고 총 네 명이 모여 있다고 했다. 어서 그를 집으로 보내달라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는 절규로 바뀌었다. 술 취하면 집에 잘 들어오지도 못하는 사람을 그렇게 취하게 두면 어쩌냐는 말도 했다. 정말 힘들어서 못 살겠다는 말도 했다. 취한 여자(독수리 오 형제인 그녀들)들의 목소리가 어수선하게 전화기를 통해 전달됐다. 이후 상 0 선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니네 같이 살지 마~ 이혼해~" 나는 그 말에 더 화가 났고 "선배가 그런 말을 무슨 권리로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내가 데리고 살 거니까, 니네 이혼해~"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뚜뚜뚜~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차가운 전자음 소리에 나는 멍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다시 남편에게 전화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시엔 왜 그렇게 화가 나고 그 말이 청천벽력 같았을까? 지금 그날 일을 회상하며 기록하다 보니 나란 사람도 참 진상이었다. 역시 2,30대의 나는 재미없고 진지하고 바보 같았다. 고지식하기 이를 때 없는 나는 그때 고작 25살(앞으로 만 나이로 표현)이었다. 이혼이란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실패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46살인 2023년에 글을 쓰며 당시가 안타깝다. 2001년 영화 속 대사를 떠올리고 '니가 가라 하와이~ '라는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듯싶다. 혹은 '어이쿠~ 감사합니다'라며 양보해도 좋았을듯싶다. 2002년 겨울에 양보했더라면 이후 일들은 겪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뭐든 너무 열심히 하는 건 옳지 않다. 물 흐르듯 두고 가만히 지켜보고 천천히 생각해 봤으면 좋았을듯싶다.


그날 못한 말을 하고 싶다.

"고마 씨리~ 니 해 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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