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직장은 신용정보사였다. 기존 회사 카드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하는 사이 문제가 발생된 것 같았다. 돈과 관련된 업무는 회사 내 규정상 모두 보증보험을 끊어야 했다. 내가 일했던 업종은 대부분의 회사에서 보증보험을 끊어야 했다. 어떤 일이 발생을 했을 때 그것을 해결할 것인가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둘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보증보험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더 이상 일을 못한다는 걸 의미했다. 돈을 벌려면 무조건 해결해야 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2주 이내에 보증보험을 끊어서 회사에 제출해야 이직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 집은 상속 절차를 밟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엄마가 살고 있는 빌라 집 명의가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었다. 당시에 상속포기, 한정승인 상속 등에 대한 지식이 우리 가족에게는 없었다. 집에 근저당과 가압류가 되어있었다. 수시로 이자가 미납되자 아버지 명의 집을 채권자들이 강제로 상속을 진행했다. 채권자들에 의해 빌라 집의 명의가 법정상속인 지분만큼, 엄마와 우리 형제자매의 명의로 변경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연도가 1997년도였다. 1998년도에 상속법이 개정됐고 아버지는 그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들은 모두 단순 상속이 확정된 상태였다. 단순 상속은 재산뿐 아니라 모든 부채도 상속된다는 걸 의미한다.
엄마와 오빠, 오빠의 어린 조카들이 그 집에 살고 있었고 집은 이미 경매가 진행 중인 상태였다. 누구 하나 나서서 부채를 해결할 수 없었다. 오빠는 가끔씩 밖에 나가는 상황이었고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작은언니가 엄마와 살 때는 여러 차례 작은언니가 나서서 부채를 갚았었다. 그러나 당시에 작은언니도 따로 나가서 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나에게 보증채무로 보증보험에서 채무 등재를 올린 것이다. 보증보험이 발급받지 못하면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당장 일을 그만둘 경우 아들과 남편, 시어머님 네 명이 살고 있는 가정에도 문제가 발생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엄마, 오빠, 큰언니, 작은언니 누구도 그 채무를 상환할 상황이 아니었다. 엄마는 대동맥 박리로 큰 병을 앓고 날로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다. 무리한 일을 할 수도 없었고 일을 시도하는 대로 그것이 다시 집안에 큰 경제적인 사고로 이어졌다. 엄마가 아프거나 다치면 그 모든 건 딸들 몫이 되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자식들을 돕는 일이었다. 큰언니는 워낙 일찍 출가외인이 됐기 때문에 큰언니에게까지 민폐를 끼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큰언니가 집안일에 모두 등한시하지도 못했다. 큰언니는 큰언니대로 친정집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빠는 새언니의 외도로 결국 이혼을 했다. 처음에 새언니는 조카들을 자신이 키우겠다고 데리고 갔었다. 그 과정에서 오빠에게 돈을 요구했다. 위자료와 양육비를 요구했는데 오빠가 당시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오빠가 다니던 회사까지 가서 난동을 피웠다. 오빠는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새언니에게 퇴직금을 포함해서 빚까지 내서 돈을 해주었다. 그러나 몇 개월 아이들을 맡아서 키우던 새언니가 남자와 살림을 차리면서 조카들을 오빠에게 보냈다. 두 명의 조카를 엄마가 키우게 되었다. 오빠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오빠가 마음을 잡고 일을 하는 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작은언니도 이혼을 하고 아이들과 떨어졌다. 처음엔 어떻게든 작은언니가 아이들을 맡아서 키우려고 했다. 그런 작은언니의 마음을 작은 형부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형부는 작은언니에게 약점을 잡은 듯 아이들을 상대로 작은언니에게 이혼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과정에서 둘이 서로 잦은 싸움을 벌였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결국 생떼같이 어린 자녀 두 명을 작은 형부가 데려가면서 이혼이 이루어졌다. 친정집은 작은언니에게 그 어떤 도움도 될 수 없었다. 친정집은 또 하나의 짐으로 작은언니에게 힘에 버거운 대상이었다. 작은언니는 조카들과 떨어진 상실감에 혼자 나가서 살게 됐다.
엄마와 우리 형제자매는 모두 각자 사는 게 너무 힘들 때였다. 보증보험 회사 채권담당자는 아마도 똑똑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모든 상속인에게 법적인 조치를 했던 건지 알 수 없다. 형제자매들 누구도 문제가 된 사람이 없다. 당장 문제가 생긴 건 오롯이 나 하나였다. 내가 해결해야 하는 내 채무가 된 것이다. 이직한 회사를 다니려면 시일이 정해져 있는 보증보험 증권을 끊어야 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나에게 닥쳤지만 어느 누구 한 명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모르게 하고 싶었는데 회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상세한 설명을 할 수 없었다. 내가 해결해야 하는 내 문제였다.
문제가 생겼고, 그 문제를 풀어야 했다. 담당자를 찾아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보증보험 채무를 모두 변제해야 한다고 했다. 채무금액이 2천만 원이 넘었다. 당장 변제할 방법이 없다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물어봤다. 채무를 온전히 나에게 옮겨와서 내가 약정을 해서 변제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이자도 상당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장 보증보험을 발급받는 게 시급했다. 나는 담당자가 알려주는 방법대로 채무를 내가 변제하는 것으로 약정했다.
나에게 새로운 채무가 생겼다. 앞으로 나누어서 채무를 갚아나가야 했다. 굽이굽이 지날 때마다 난관이 닥쳤다.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나아가야 했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풀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것이 내가 20대 초반에 하루를, 한 달을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한 줄 요약 -98년도에 상속법이 개정됐다. 이후부터 상속자는 피상속인에 채무에 대해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한정상속 혹은 상속포기를 할 수 있다. 고난은 해결해야 한다. 피하려고 하면 더 옥죄어온다. 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