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꿈꾸는 사람
아름다움과 사랑의 욕망을 관장하는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를 불러본다. 그녀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신중 한 명이다. 카오스에서 가이아로 시작되는 신들의 계보를 보면 가이아는 우라노스를 낳고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18명의 자식을 낳는다. 18명의 자식 중에 크로노스가 제우스의 아버지다.
신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제우스는 들어봤을 정도로 그의 이름은 익숙하다. 제우스는 올림포스에서 신들의 제왕의 자리를 차지한 존재이다. 나는 최고 권력자 제우스보다 태생이 신비로운 아프로디테를 동경했다.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못 받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의 여신, 사랑의 욕망을 관장한다는 신, 비너스를 만나면 묻고 싶었다. "아프로디테여~ 위태롭고도 치명적인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4살에 사춘기 소녀였던 나는 그리스로마신화책을 읽으며 그녀의 모습을 책 속에서 그림으로 만났다. 조개 위에 서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대답해 주기를 기다렸다.
아프로디테의 탄생과 그녀의 가족관계를 알아보자. 아프로디테는 우라노스의 잘린 남근에서 튄 피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거품이 생기고 그 거품 안에서 탄생했다고 알려졌다.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 올림푸스에서 미의 여신인 아름다운 그녀의 남편이 어떤 존재일지 궁금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남편은 신들 중 가장 못생겼다는 대장장이신인 헤파이스토스다. 그리고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는 큐피트라고 불리고 사랑의 화살을 가지고 다니는 사랑의 신이다.
신비로운 이야기가 있는 그리스로마신화 속 이야기가 유럽에는 실존한다. 나는 십 대 성장기에 신화를 읽으며 꿈을 꾸었다. 신들의 일화는 재밌기도 하고 잔혹하기도 한 인간의 삶과 매우 닮아있다. 나의 유년시절 생활은 상상력이 단절된 생활로 다채롭지 못했다. 동네에서 아이들과 뛰어노는 게 가장 비중이 큰 놀이였다. 단조로운 일상에 상상력을 심어준 건 만화나 책이었다. 그중에서도 신화로 된 이야기는 어린 시절에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기폭제가 되었고 나는 그 상상 속에서 유랑하곤 했다.
14살 사춘기 소녀는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었다. 20대, 30대에 돈을 벌었지만 사는 것에 급급해서 유럽으로의 여행은 꿈으로만 기록되는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염원일 뿐이었다. 그런데 36살, 20여 년 동안 줄곧 해바라기 하던 여행을 떠났다. 20살 이후부터 매년 새해가 되면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유럽으로의 여행은 올해의 계획이 아니라 내년에 하고 싶은 것 1위로 기록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1년 안에 유럽여행을 간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스스로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꿈을 꾸더라도 염치를 생각했기에 올해의 버킷리스트에 기재될 수 없었다. 내년 혹은 살아생전에는 반드시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였던 곳, 신화 속 지명이 살아 숨 쉬는 곳이 바로 유럽[YOU LOVE] 여행이었다.
꿈에서조차 꿈꾸던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풍경, 랜드마크,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유럽은 연합국으로 되어있어서 국가별, 도시별 이동이 기차로 가능하다. 유래일 패스는 기간별로 금액이 차등으로 책정되어 있다. 만약 2주짜리 유래일 패스를 끊으면 그 기간 동안 유럽의 도시들을 이동할 때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탈리아나 몇몇의 특정나라는 유래일 패스가 있어도 예약비가 별도로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는 예약비 없이 유래일 패스하나로 이동가능 하다. 기차로 특정도시에 도착한 후에는 그 지역 대중교통을 카드를 이용하면 대중교통비용을 다소 절약할 수 있다. 지구상엔 신비하고 아름다운 여행지가 많다. 각자 나름의 멋이 있어서 여행객은 그 생경함에 감동하게 된다. 유럽은 옛것과 새것이 함께 공준 하는 곳으로 그만의 매력이 있다.
유럽의 한 도시에 도착하면 보통 대중교통인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하루에 2만 보 이상을 걷고 밤에는 야경을 보겠다고 다시 길을 나서기도 했다. 너무 많이 걸어서 발 뒤꿈치가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길을 잘 모르는 길치인 나는 유럽에서 길을 헤매는 때도 종종 있었다. 한참을 길을 헤매다 보면 겁이 나고 무서운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도 나는 내가 유럽에 있다는 것이 마치 상상 같고 꿈을 꾸는 것 같았다. 36살에 처음으로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이후 세 번 더 유럽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네 번의 여행으로 다녀온 도시는 30여 곳 정도다. 여러 도시를 짧게 경험했기 때문에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많고 한 달 이상씩 살아보고 싶은 도시들도 많다.
유럽의 도시들은 모두 멋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로마다. 로마는 마치 도시 전체가 박물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바티칸시국이 로마도시에 있는 것도 신비로웠다. 바티칸은 그저 작은 공간인데 독립된 국가라고 했다.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처음 유럽여행을 갔을 때 영국을 가든, 독일을 가든 각 나라의 도시에 가면 박물관과 미술관을 필수코스처럼 갔다. 남들이 다 가는 곳이니까 들어간 게 이유다. 그런데 예술품과 그림을 봐도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어떤 그림이 멋있는지, 왜 비싼지, 왜 아름다운 건지 똥눈이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 다만 유명한 작가나 그림을 본다는 게 다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곳만은 달랐다. 로마 속 바티칸에서 일이다. 그림에 일자무식, 문외한이지만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보며 오열했다.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이후에도 로마에 가면 바티칸 박물관에 들른다. 미켈란젤로와 마주하기 위해서,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꿈은 꾸는 것인가? 살면서 이루어 가는 것인가?
배낭여행, 대학생 새내기나 할 법한 배낭을 메고 2012년 삽 십 대 중반이었던 나는 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왕복티켓값이 70만 원대인 저렴한 비행기였다. 첫 도착지는 런던, 마지막도시는 로마로 되어있었다. 여행기간은 한 달이고 무려 22개의 도시를 방문하거나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한 달 전에 갑작스럽게 알아보고 여행사에 가서 일정을 확인하고 사고 치듯 결정하고 계약금을 송금했다. 여행사에서 비행기, 숙박, 유레일패스, 야간열차예약을 해준다고 하고 코스도 짜준 자유여행이었다.
예약금 결제가 완료된 다음 날 회사에 가서 팀장 자리는 사표를 냈다. 당시엔 영업을 하고 있었고 팀장 자리는 팀원들을 관리해야 하는 자리라서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유럽 여행은 까마득한, 신기루 같은 꿈이었다. 어린 시절 막연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 여행이었고, 여행한다면 설렘 가득한 유럽으로 가고 싶었다. 소원하던 버킷리스트를 저지르고 여행 준비를 하며 깨달았다.
앗, 나 영어??? 어? 나 길치잖아?
한 달간의 여행은 나의 36년 인생에 없었던 다른 공간 '숨'을 주었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일까?' 사춘기에 했던 사색을 성인이 된 이후에는 별로 한 적이 없다. 일반적인 기성세대가 그렇듯, 단지 하루를 채워가는데 충실했었다. 한 달 동안 지출되는 금액(한 달 생활비)을 채우기 위해 하루하루가 존재하는 듯 생활했다.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그 순간을 즐기려 했고, 재밋거리를 찾아서 뭔가를 하며 살았기 때문에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공허감이 있었다. 30일 동안 혼자 하는 여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 '숨'으로 인해 내 삶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 들어왔고 여행 이후 그 바람결을 타는 생활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