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인생의 갈림길이 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오빠가 아내가 될 사람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내방이 없어졌다. 신혼방이 된 방. 오롯하게 생겼던 혼자만의 방에서 나왔다. 있을 곳을 생각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쉬고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고민하던 끝에 생각한 곳은 독서실이었다.
독서실은 24시간 개방으로 잠을 잘 수 있는 곳이었다. 독서실에 상주하겠다고 생각한 건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다. 투병 중인 아버지가 계신 집 거실에서 지낼 수도 있었지만 거실에서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특히 학원을 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상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므로 대입시험을 스스로 공부해야 했다. 학원을 다니기엔 학원비가 만만치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취업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는 고집을 피웠다. 이기심을 낸 만큼 공부를 하는 건 내 몫이었다. 다행히 TV EBS에서 수능대비교육을 해주었다. 집에서는 마음대로 TV를 볼 수 없었다. 부모님께 독서실 비용을 부탁했다. 교복과 몇 가지 세면도구를 챙겨서 학교 근처 독서실에 월정액을 끊었다. 독서실에서 씻기가 불편해서 아침에 친구 영이네 집에서 등교준비를 하고 학교에 갔다. 영이 어머니는 딸이 넷이었는데 내 도시락까지 다섯 명의 도시락을 싸주셨다.
독서실에서 생활한 지 수개월이 되었다. 혼자서 하는 공부는 쉽게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저 하는 것.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어릴 때부터 센스 있고 똑똑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효율 있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요령껏 공부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특히 벼락치기는 재주가 없었다. 무식하고 단순하게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교과서도 별도로 구매해야 했다. 책과 문제집만 반복해서 보며 익혔다. 해답을 봐도 이해가 안 되면 답답했다. 모르는걸 선생님에게물어볼 수 있었던 중학교 때 생각이 났다. 주변에 입시공부를 하는 친구가 없다는 것도 아쉬웠다.
미래에 대한 절실한 마음과 달리 꽃봉오리도 찬란하게 피는 18세 청춘의 마음은 미풍에 흔들렸다. 독서실총무오빠에 대한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소문이 들렸다. 몇몇 여자아이들은 총무가 잘생겼다며 키득거렸다. 무성한 소문의 주인공인 독서실 총무오빠는 네 살 많은 대학생이었다. 그는 취업준비 공부를 하면서 독서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독서실 입구에 칸막이 안에 있던 그가 사물이었다가 사람으로 인식됐다. 그를 처음으로 찬찬히 보았다. 제법 착해 보이고 준수해 보였다. 무관심에서 은근히 신경 쓰이는 존재로 바뀌고 있었다. 관심. 그 가벼운 감정에 짜증이 밀려왔다. 초등학생 때 이후 몇 번의 관심? 혹은 짝사랑경험이 있었다. 짝사랑이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할 정도의 짧고 얕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서까지 누군가에게 혼자만의 관심을 주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저녁 늦은 시간 총무오빠에게 쪽지를 남겼다. '오후 8시 자판기 앞에서 봬요. 할 말이 있습니다' 오후 8시 자판기 앞으로 갔다. 청바지에 셔츠차림의 말끔한 그가 있었다. "간단하게 용건 말할게요, 나는 짝사랑 같은 감정소모는 하고 싶지 않아요. 총무님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는데 감정정리를 하고 싶어요. 나랑 사귀고 싶은지 아닌지 말해주세요. 아, 지금 당장은 말고요, 일주일 시간드릴게요. 생각해 보고 알려주세요." 일처리를 하듯 떨지도 않고 용건만 간단히, 완벽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와서 문제집을 풀었다.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그가 쪽지를 주었다. <밤 9시 반 ㅇㅇ편의점에서 보자> 반듯하게 쓴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편의점은 독서실에서 학교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했다. 경사가 가팔라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터벅터벅 바닥과 신발이 닿는 소리가 울렸다. 도착지까지 가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마음은 잠잠했고 편안했다. 거절당하더라도 후회는 없었다. 어차피 깊어진 마음이랄 게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 단계에서 끝나는 감정이라 후련할 뿐이었다. 편의점에 도착하니 그가 도착해 있었다. 그가 미리 사놓은 따뜻한 음료수와 간식을 건넸다. '친절한 거절인가?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건가?' 의문의 마음이 가득했지만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음료수를 한 모금씩 홀짝 거렸다.
상업고등학교의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했지만 어찌 보면 끝까지 저항하는 학생이었다. 취업이 아닌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기에 존재자체가 에러였다. 2학년때까지 성적에 신경 썼고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 정보처리 기능사 2,3급, 워드프로세서 2,3급, 주산 1급, 한글타자 2.3급 영문타자 3급, 부기 2.3급, 펜글씨 3급까지. 자격증게시판을 전부다 채운 1인이 되었다. 학교 성적 전체등수는 1등급. 전교 1등을 했었고 전교 석차 5등 이내로 꾸준하게 지켜냈다. 그리고 2학년때는 학생회장선거에도 출마했다. 회장선거는 낙마해서 임원활동을 맡았다. 취업을 하기 위해 최고의 조건을 모두 완벽하게 달성했다. 그러나 취업 관련 상담하면서 겁도 없이 대입시험준비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취업전담선생님이 마뜩잖게 생각하며 소위 찍히게 되었다.취업과 멀어진 채 대입공부를 했고 시험을 치렀다.
대입 시험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취업을 해야 할 것 같다." 몸이 편찮으신 아빠가 말했다. 나는 다음날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께 집안사정을 말씀드렸다. 며칠이 지나도 담임선생님은 취업 원서를 주지 않았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담임이나 취업담당 선생님이 아닌 타반 선생님이 한 회사 원서를 주셨다. 서류전형에 우리 학교 학생 셋이 지원했다. 나와 우리 반 친구 한 명이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그리고 면접일이 되었다. 나는 총무오빠와 사귀게 된 지 100일이 되면서 100일 선물로 목도리를 뜨개질하고 있었다. 면접일에 대기시간에 뜨개질을 했다. 세명에게 주어진 원서중 나만 회사에 합격했다.
첫 직장에서 입문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안양지점에 발령을 받았다.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야간대학교에 입학원서를 넣었다. 대학원서는 두 곳에 안양과 서울에 넣었다. 두 곳 다 합격했지만 회사 근처에 등록했다. 직상생활과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한 학기 동안 학교, 회사 둘 다 어중간한 성과로 채워졌다. 매일 시간이 없었고 일처리, 숙제, 늦지 않게 학교 도착하기 등 뛰어다니다 보면 하루가 지나갔다. 욕심 많은 흑수저에게 남자 친구의 존재는 사치였다. 공부와 일을 따라가는 것이최우선이었다. 설렘이나 연애의 감정에 시간과 정성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구질구질한 집안 사정을 말하기 싫었다. 마지막날까지 그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뒤통수를 치듯 안녕을 고했다. 어리고 이기적인 마음은 풋사랑의 당사자 둘에게 모두 상처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