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첫 작장(S사 안양지점)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31화




칼리 릴리(꽃말: 환희, 열정, 순수)



첫 직장(S사 안양지점)


1995년도 12월 발령받은 곳은 안양지점이었다. 10년 후쯤 지점은 지역단으로, 영업소는 지점으로 변경되어 지금까지 그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안양은 부천이랑 비슷한 느낌이 많은 도시였다. 내 생각엔 부천이 좀 더 발전한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그건 아마도 내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일으킨 착각일 수도 있다. 부천 번화가는 당시 부천역 부근이었고, 안양은 안양 1번 가라는 곳이 있었다. 아직 발전이 안 된 곳들이 많았고 공사가 한창인 곳이 많았다.


출근할 곳 주소를 받아서 대중교통을 알아보니 범계역까지 전철을 타고 가야 했다. 우리 집은 부천 안쪽이라서 부천역까지 나오는데도 40분이 넘게 걸렸다. 집ㅡ부천 역까지는 버스로, 부천역ㅡ구로 역ㅡ금정 역ㅡ범계 역 은 전철을 타야 한다. 출근시간 편도 2시간 이상이 걸렸다. 왕복으로 무려 다섯 시간가량이었다. 본사는 개혁적으로 7,4 제로 운영한다는 방침을 내세웠지만 지점이나 영업소는 현실적으로 9,6제를 운영했다. 첫 출근일에 범계역에 내리니 뉴코아백화점이 있고 횡~한 게 다른 건물들은 없었다. 맞은편으로 좀 더 걸어가면 S사 안양지점 건물이 보였다. (얼마 전 범계역을 갔다가 달라진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출근을 위해 정장도 두벌 장만했다. 아직 학생 티가 났지만 나름 옷을 갖춰 입으니 직장인 테가 났다. 정장을 입고 출근길에 나섰다. 안양지점에 도착해서 인사를 하는데 낯익은 아이가 보였다. 입사 면접 보러 갔을 때 키가 작고 예쁜 학생이 있었는데 그때 인사 나눈 친구가 나와 같은 안양지점에 있었다. 반가워 인사를 나눴다. "와우, 여기서 보네" 반가운 얼굴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쩐지 넌 합격할 것 같았어" 내가 둘이 있을 때 소영이에게 건넨 말이었다. 소영이를 그렇게 만났다. 소영이는 키는 작은데 좋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아이였다. 얼굴도 예쁘고 야무지게 보이는 인상이다. 실제로 똑똑하고 일을 엄청 잘하는 친구였다. 우린 발령지가 정해질 때까지 한 달 정도 지점 창고에서 영수증 작업을 함께했다. 둘 다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주어진 일에 열정을 다해서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줄 맞춰서 깨끗하게 정리를 마칠 때마다 둘이 함께 뿌듯해했다.


첫 출근 날 지점에 선배 언니가 신입인 우리 둘을 맞아주었다. 지점에 새 식구가 왔다며 환영해 주고 이곳저곳 안내해 주며 인사를 시켰다. 지점, 영업소, 보상과 등 생각보다 많은 분야로 나눠져 있었다. 우리가 입사했을 때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교체되는 시점이라서 분위기가 왠지 이상함 한 점도 느껴졌다. 지점 선배들 중에서 비정규직 언니들 몇 명은 시험을 통해 자격시험을 거친 후였다. 우리 동기들은 증원 인원 일부와 비정규직을 대체할 정규직 인원이었던 셈이다. 시험을 치르고 합격 여부를 기다리는 선배들도 있었고 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선배들도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고 그런 와중에 그들이 우리를 맞이한 것이니 분위기가 그럴 만도 했다


당시만 해도 결혼한 여자 직원이 회사를 다니는 일은 많지 않을 때였다. 불과 2,30년 지난 일인데 아주 까마득한 옛날 같다. 요즘은 어떤가? 우리 나이 때 사람들이나 우리 선배들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많다. 결혼을 했다고 그만두는 사람도 거의 없다. 결혼 적령기도 늦춰졌고 30대는 아직 결혼하기에 이른 축으로 여겨진다. 내 또래 친구들은 아직도 첫 회사에 장기근속하는 친구들이 많고 또래들은 대부분 일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20세기말이었고 시대와 생각들이 구식이었다. 회사에 여직원 대부분은 이십 대였고, 지점에 서른이 넘은 선배 여직원은 노처녀 취급을 당하는 분위기였다. 지점에 최고령자 언니가 그때 33살이었는데 엄청 왕선배 같은 이미지로 기억된다.


일하게 된 지 한 달이 안 돼서 첫 월급을 받았다. 입사 당시에도 S사는 대기업 중에서도 거의 1,2등으로 연봉이 높은 회사였다. 당시엔 S 전자보다 연봉이 높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때는 그랬다.) 첫 월급은 예로부터 부모님 내복을 사는 거라고 들었다. 아버지는 내복을 사고 엄마는 내복은 싫다고 하셔서 속옷을 사드렸다. 식대비와 차비 일부를 남기고 월급을 부모님께 드렸다. 내 친구들도 부모님께 월급을 전부 드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돈 관리를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친구들 돈을 관리해 주고 저축해 주는 부모님이 많았다. 내 월급은 여타 대부분의 아이들과는 달리, 우리 집에서는 당연하게 혹은 평범하게(?) 언니 오빠가 그랬듯이 저축이 아닌 엄마의 생활비로 쓰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