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학을 자퇴하고 회사일에만 집중하니 일이 수월해졌었다. 근무지인 영업소에 모두 여자만 있는 것에도 적응이 됐다. 주말에는 PC 통신 동호회 사람들과 여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업무에 적응이 돼서 편해졌다. 수월하게 시간을 보내며 1년이 지나자 인사이동이 있었다. 인사이동 지는 안양에서 유일하게 딱 한 곳 있었던 안양 합동 대리점이었다. 지점 내에는 열 곳 이상의 영업소가 있었다. 대부분 보험설계사로 이루어진 점포들이었다. 그러나 딱 한 곳 합동 대리점 점포가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외야 사원분들은 명칭도 특별했다. '보험 설계사'가 아니라 '대리점 사장님'이라는 명칭이었다.
보험설계사와 보험대리점은 몇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설계사의 월급날은 한 달에 한 번이었지만 대리점의 월급은 한 달에 두 번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시험도 보험설계사 시험 보다 다소 어려운 대리점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제일 다른 점은 보험설계사들은 대부분 여자였고 대리점엔 남자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여자보다도 남자의 비율이 더 많을 정도였다. 1년 동안 근무했던 영업소의 '여사님'들은 대리점 사장님들에 비해 유순한 분들이었다는 걸 합동 대리점에 근무하면서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대리점 사장님들은 남녀 구분 없이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부심이 강했다. 그들 호칭의 차이만큼 그들은 독립된 '사장님'으로 대우받기를 원했다.
당시 생명보험사에서 일하는 영업사원들은 모두 설계사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손해보험사는 개인보험뿐 아니라 단체 보험 등 특수한 보험을 취급했다. 90년대에는 우리나라에 먼저 생명보험이 진출해 있었다. 나는 당시 보험에 문외한이었고 보험회사는 개인의 건강과 관련된 생명보험만 있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회사에서 지원서류를 받았을 때도 회사 이름이 S 화재라고 해서 불을 끄는 회사인 줄 알았다. 면접준비하면서 '화재'나 '해상'이 손해보험이란 걸 알게 되었다. 생보사와 손보사의 구분도 뒤늦게 일을 하고 나서야 그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전 세계적으로 손해보험사가 더 규모가 크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언젠가부터 손해보험 회사들과 생명보험 회사들에 남자분들도 영업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97년에는 강산이 변하기 전이었다. 당시 보험설계사는 나이 든 여자분들이 일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안양지점에 소속된 수많은 영업소도 보험설계사 조직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영업소에 보험설계사분들은 중년 여성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영업소에 남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안양지점에도 보험 일을 하는 남자분들은 대리점 사장님들이 유일했다. 안양지점 500명이 넘는 외야 사원 중 유일하게 합동 대리점에만 남자분들 있었다. 첫 직장 생활을 하면서 회사에 나이 많은 여자분들만 있는 것에 겨우 적응을 했었다. 그런데 발령받아 간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이 필요해졌다.
발령지인 사무실에 출근하니 사무실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소장님은 남자 소장님이었다. 여자 소장님보다는 왠지 편안한 느낌이었다. 지점 내에서도 선임 소장님으로 남자 소장님 중에서도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소장님이셨다. 경력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사무실의 크기만큼 많은 분이 계셨다. 보통의 다른 영업소는 외야 사원이 50명 안팎이었다. 그러나 안양지점에 단 하나의 대리점 조직인만큼 안양 합동 영업소는 북적북적하고 정신없었다. 안양 합동 점포에 소속된 대리점 사장님들은 90명이 넘었다. 출퇴근을 하는 분들은 60여 명 정도였다. 나머지 30여 명은 출. 퇴근 없이 일 있을 때만 서류를 내러 점포에 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