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성인식? 성년의 날

쉘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41화




흰색 장미(꽃말:순결함, 청순함)



성년식? 성년의 날


'그대여 뭘 망설이나요~ 그대 원하고 있죠. 눈앞에 있는 날

알아요. 그대 뭘 원하는지 뭘 기다리는지 그대여 이리 와요.

나도 언제까지 그대가 생각하는 소녀가 아니에요 이제 나

여자로 태어났죠 기다려준 그대가 고마울 뿐이죠 나 이제 그대 입맞춤에 여자가 돼요.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그대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요. 그대 기다렸던 만큼 나도 오늘을 기다렸어요.'


2000년도 가수 박지윤의 <성인식> 노래가 히트를 쳤다. 도발적이고 섹시한 춤을 선보이며 2000년도에 대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아 냈다. 전 국민이 그녀의 춤을 따라 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매력적이고 당당한 성인이 되고 싶었던 20대에게 더욱 큰 사랑을 받았다. 노래방에 가도 방방마다 성인식 노래가 들려왔다.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다 같이 춤을 추며 노래와 어울리지 않게 떼창을 불렀다. 장난기 많은 남자들이 따라 하면 순식간에 인싸가 되곤 했다. 우리에겐 성년식이 따로 있었을까? 멋들어지고 섹시한 성년식은 각자의 상황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21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성년의 날이 생각났다. 연상 작용으로 노래 성인식도 생각났다. 요즘 성년의 날은 어떻게 지나갈까? 만 스무 살을 맞은 동갑내기들에게 5월 셋째 주 월요일은 공식적이 성년의 날로 지정되어 있다. 2021년도 5월 17일 성년의 날을 맞는 내 아들은 이틀 후인 5월 19일 군대에 입대했다. 아들은 코로나 시국이 한참 일 때 성년의 날을 맞아 이렇다 할 행사도 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내가 맞은 성년의 날은 아들보다는 화려했다. 97년도에 77년생 들은 성년의 날을 맞았다. 당시 성년의 날은 세 가지를 선물 받아야 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꽃다발, 향수, 첫 키스.


1997년 5월 셋째 주 월요일, 만 20살 성년의 날을 맞이한 나는 오전에만 일을 하고 회사 행사에 참여했다. 본사가 서울 을지로에 있었는데, 본사에서 97년생을 위해 성년식 행사를 진행했다. 본사에 가니 동갑인 동기생들이 많이 와 있었다. 북적북적한 행사장에서 꽃다발과 향수를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백화점 상품권도 받았다. 당시 어린 여직원들이 정장을 입으려면 그것도 부담이라고 생각했던 회사에서 자주 백화점 상품권을 주곤 했다. 당시 받은 백화점 상품권으로 구두나 옷을 살 수 있어서 많은 보탬이 됐었다. 축하 자리에 왔던 사회자가 농담으로 '남자친구 만나서 키스도 꼭 받으세요~'라고 했던 게 생각이 난다.


당시 남자친구가 없을 때라 친구 심이랑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잡았다. 부천에서 안양으로 출퇴근하다가 오래간만에 서울로 나들이를 하는 거라 설레기도 했다. 심의 회사와 우리 회사 본사가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자리를 종로로 옮겨서 친구가 추천한 음식을 먹었다. 종로에는 맛집이 너무 많았다. 당시 유명했던 파파이스도 가고 유명한 스파게티 집도 갔다. 서울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맥주도 마시고 노래방에도 갔다. 심과 나는 둘이 노래방 지붕아 날아가라 고함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당시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춤이 빠질 수가 없었다. '아들 낳고 딸 낳고 아예, 막갈래나. 에~ 막갈래나~' 전 세계에 유행을 일으켜 마카레나 율동을 따라 하며 노래방을 펄쩍펄쩍 뛰고 막춤으로 그곳을 찢어 버렸다.


맥주 기운으로 기진맥진해진 탓인지, 들고 다니던 꽃이 거추장스러웠다. 심도 회사에서 받은 꽃다발이 손에 한가득 들려 있었다. 노래방에 꽃다발을 버려두고 노래방을 나왔다. 꽃은 너무 예쁘고 향기로웠다. 그런데 부피가 크고 무거웠다. 꽃 말고도 우리에겐 종이 백이 들려 있었다. 본사에서 받은 서류와 선물이 종이 백 안에 들어 있었다. 버려진 꽃이 아쉽지만 막상 손이 가벼워지자 홀가분함을 느꼈다. 우리는 종로에서 한 시간가량 전철을 타고 부천으로 돌아왔고 헤어지며 각자 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성년의 날은 하루 동안 꽉 찬 스토리를 남겼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연장으로 출근하며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마련한 특별한 장소에 가서 행사에 참여했다. 사회자, 회사에 높은 직급자들에게 축하받고 자리에 모인 이들끼리 서로 축하해 주었다. 이후 친구를 만나서 맛집을 찾아서 만찬을 즐겼다. 낯설고 설레는 서울에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노래방에서 열성을 다해 노래 부르고 감성에 빠지고 소리 지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이 더라도 거추장스럽다면 과감하게 버리고 뒤돌아섰다.


그날 하루 동안 나는 버릴 줄 알았다. ㅡ뒤돌아 생각해 보니 21살에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ㅡ 부족함에서 온 기억 때문일까? 아니다, 그저 욕심에서 온 습관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버리는 것에 아직도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비워야 채워지는 게 있다는 걸 안다. 무거우면 내려놓고 싫은 건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늘 이야기하곤 한다. '좋은 만큼만 하자. 참지 말자. 기꺼이 하는 것에 불평이 있을 수 없다. 나 좋은 대로 하며 살자.' 내가 나를 배려하는 방법이다. 무의식적인 반복으로 나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나 스스로에게 온 마음과 신경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늘 생각하려고 하는 게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인가?'

yes, 대답이 나온다면 다 괜찮다. 그냥 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no. 가 나온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안 할 방법을 생각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노래 <성인식>처럼 아찔한 성인식은 나에겐 없었다. 다만 성년의 날 무겁고 거추장스러웠던 꽃을 버릴 줄 알았다는 걸 기억한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건 버리고 살자. 이미 마이 므으따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