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엄마의 생일날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43화




양귀비(꽃말:붉은색-위로, 위안, 몽상 주황색-약한 사랑, 덧없는 사랑 흰색-잠, 망각 자주색-허영, 사치, 망각)



엄마의 생일날


우리 엄마는 음력으로 생일을 보낸다. 엄마는 주민등록상으로 53년생이다. 그리고 실제 나이는 그것보다 4살가량? 많다. 늘 이랬다 저랬다 하느라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실제 생일은 음력 생일을 보낸다. 음력으로 날짜가 1월 5일이다. 전 국민이 알다시피 음력 1월 1일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설날이다. 설날은 어떤 날인가? 1년 중 한번 세뱃돈을 주거나 받는 날이다. 아이들도 부모나 친지 어른들께 공식적으로 돈을 받아 풍족해진다. 우리들이 어릴 때는 없었던 개념인 용돈이 두둑이 생기는 날인 것이다. 그런 필연적인 날이 설날이고 설 연휴가 끝나면 바로 엄마의 생일날이 있다. 그 덕분에? 어릴 때부터 우리 형제자매들은 엄마의 생일을 그냥 지나친 적이 한 번도, 단 한 번도 없다.


1997년 1월, 우리 집에서 막내딸인 내가 21살이 되었으니 모든 자녀들이 다 성인이 되었다. 설날에 더 이상 부모님께 세뱃돈을 받는 날이 아니게 되었다. 성인이 됐으니 응당 드려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모든 자녀들이 설날 새해 인사를 드리며 세뱃돈을 봉투에 넣어 드렸다. 그리고 며칠 후가 엄마의 생일날이었다. 나는 당시 2천만 원에 대한 대출금 이자를 납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월급의 1/3을 이자로 납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12개월 할부 중 마지막 두 달에 대한 등록금 카드깡 비용이 남아 있을 때였다. 남은 월급은 1/3 정도로 교통비와 식사비 등 용돈으로 사용할 때였다.


모든 가족들이 여느 때와 비슷한 금액대로 엄마의 생일 선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겨울 엄마에게 갖고 싶은 게 생기셨다. 나름대로 누구에게 그 선물을 받아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무려 대기업을 다니고 있던 막내딸이 당첨됐다. 엄마는 나에게 생일 선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무스탕 갖고 싶어.' 엄마의 요구사항이었다. '무? 뭐?' 당시에 너무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게 뭔데?' 뭐가 뭔지 모르지만 엄청 비쌀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당시 무스탕은 엄청 비싼 가격이었다. 가격을 알아보니 너무 비싸서 놀랐다. 처음엔 그냥 해본 소리겠거니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꼭 갖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나타났다. 그러나 너무 큰돈이라 엄두가 안 났다.


당시 엄마가 원하는 무스탕 가격은 보통 50만 원 이상 100만 원 가까이 됐었다. 거의 한 달 치 월급을 넘는 큰돈이었다. 월급 받아서 10만 원도 안 남을 때였고 이미 명절비와 세뱃돈을 드리느라 남은 돈도 없을 때였다. 직장 생활이 진행되면서 신용카드를 만들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을 때다. 엄마는 늘 갖고 싶은 걸 가져야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한번 갖고 싶은 건 누구에게라도 받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내 형편은 그만한 선물을 해줄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당장 선물을 산다는 것 자체가 빚을 내는 거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망설이고 못 해 드릴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벽에 부딪히자 결정적으로 엄마는 강수를 던지셨다. " 무스탕 한 번도 못 입고 죽으면 서러울 것 같아. 언제 죽을지도 모르잖아. 평생에 그런 옷 입어보는 게 소원이야. 생일선물로 무스탕 꼭 갖고 싶어." 노래를 부르는 건지, 기름을 내리는 건지 모르는 엄마의 레퍼토리가 나왔다. 그리고 쐐기를 박으며 강조했던 말이 있다. "평생 생일선물 이걸루 끝내. 앞으로는 생일선물하지 뫄~"


이쯤 되면 그건 그냥 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나로서는 엄마의 강짜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무스탕 없이는 마치 인생이 의미 없다는 듯 생각하는 엄마의 요구를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결국 엄마가 원하는 무스탕 파는 곳에 같이 방문했다. 60만 원이 넘는 무스탕이 선택되었고 나는 결재하는 것으로 그냥 정해졌다. 처음으로 신용카드 6개월 할부로 물건을 구매했다. 다음 달부터 매달 상당히 높은 이자와 함께 무스탕 비용이 청구됐다. 다행히 한 달만 겹치고 다음 달부터 등록금에 대한 카드깡 비용이 빠져서 생활에 곤궁은 피할 수 있었다.

매년 돌아오는 엄마의 생일날이면 나만 생일선물을 안 한다. ㅡ 그랬으면 반전이겠지만 반전은 없다. 모든 자녀들은 매년 비슷한 금액으로 여전히 선물이나 현금을 드린다. 21살 이후로도, 여전히, 평생 그랬던 것처럼, 단 한 번도 엄마의 생일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 다만 나는 무스탕의 교훈으로 너무 무리한 선물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많이 비싸지도 않고 크게 호응받지 못해서 왠지 무스탕이 짠~해졌다. 나는 엄마의 허영심? 과욕? 여하튼 그런 마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예전 이야기를 일부러 할 때가 있다. 97년도엔 밍크코트만큼 비쌌던 무스탕에 대한 우리 집만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툭 꺼내본다.


"엄마~, 그때 앞으로는 생일 선물 무스탕이 마지막이니까 이후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 묘?"

그러면 엄마는

"그 무스탕 잃어버린 게 언젠데?"

라고 응수한다.


그 비싼 걸 잃어버리는 울 엄마의 클라스~♡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만한 건 인기 떨어진 무스탕을 잃어버린 건지 누굴 준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