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휴학하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여가 시간에 PC 통신을 좀 더 자주 하게 됐다. 집에서 PC 통신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자정 늦게나 가능했다. 전화선으로 연결된 PC 통신은 접속을 하면 통화 중으로 바뀌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만 허용됐다. 채팅하느라 밤늦게 잠들고 한 달 이상 열심히 PC 통신에 빠져있었다. 다음 달이 되자 전화 요금 폭탄을 맞았다. 무시무시한 전화 요금을 낸 후에야 집에서 PC 통신을 자주 하지 않았다. 중독성이 강했지만 전화 요금이 무서워서 회사에서 일할 때 짬 내서 잠깐씩 하는 것으로 허기를 달랬다. 어느 날은 맘 맞는 사람들이 오프라인을 통해 만남을 가졌다. 번개모임이 몇 차례 진행되고 모임을 만들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나의 첫 PC 통신 모임은 그 이름도 오글거리는 <채팅 사랑>이었다.
<채팅 사랑>이라니 시간이 지나서 떠올릴 때마다 심하게 간지러웠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뽀송뽀송하게 움틀 거리는 숨 터 같은 곳이었다. PC 통신 동호회 덕분에 틀에 박힌 일정으로 회사ㅡ집, 시계 추같이 반복됐던 나의 20살에 화려한 일탈이 생겼다. 생에 첫 동호회는 많은 경험과 추억을 남겼다. 직장 생활 속에 동료는 거의 없고 사람이라고는 부모뻘만 가득했기 때문에 동호회 사람들이 더 특별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유분방하고 발전성이 무한한 사람들과 인연이 되는 것이 좋았다.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면서 좋은 추억들이 한 페이지씩 늘어났다.
채팅 사랑의 최초 창단 멤버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2학년 오빠 둘이 주축이었다. 방장은 그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경희대 한의학과를 나온 오빠가 곧 한의사 개업을 앞두고 있었다. 대학생 언니 한 명과 직장인이었던 나 이렇게 다섯이 시작했다. 곧바로 대학생 동갑 친구들이 여럿 가입했다. 그리고 나보다 12살 많은 띠동갑 오빠 세 분이 같이 가입했다. 세 분은 서로 친구 사이였다. 멤버가 늘어나자 오프모임으로 술자리만 참여하는 것에서 놀이 문화로 발전했다. 덕분에 나는 대학생들이나 가는 MT도 가게 되었다. 당시 MT의 성지는 대성리와 강촌이었다. 기차를 타보기도 하고 배를 타보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그리고 캠프파이어, 낭만적인 캠프파이어라니 젊음을 누리는 기쁨이 충만했었다.
동호회 모임은 단 한 개뿐인 나와 달리 취미별로 동호회에 가입한 띠동갑 오빠가 여러 모임을 알려주었다. 산을 좋아하는 내게 산사랑이란 동호회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채팅 사랑 동호회에서 가끔 포켓볼을 치러 갔었는데 재밌어하니 포켓볼 동호회도 알려주었다. 새로운 장소에 가는 건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가지고 가게 된다. 경험한 게 미미했던 당시에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온라인에서 우선 가입을 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살폈다. 각 동호회별로 오프라인이 잘되어 있는 듯 보였다. 포켓볼 모임은 각 지역별로 참여할 수 있었고 부천에도 있었다. 등산 모임은 대부분 한 장소에 모여서 버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듯했다.
처음으로 산 오프모임에 참여했다. 당일 등산인데 아주 이른 아침에 서울역까지 가야 했다. 서둘러 전철을 타고 서울역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길치라서 헤맬 뻔했는데 다행히 대형버스가 눈에 띄었다. 버스가 세 대나 가는지 버스에 이미 많은 인원이 타고 있었다. 명단 체크를 하고 버스에 탔다. 처음 참여한 등산은 산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겁 없이 참여한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날씨가 좋은 날 참여한 가을 산행이라서 준비 없이 산을 가도 무탈하게 산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다.
가을 산은 알록달록 예쁘고 화려했다. 멀리서 볼 때와 막상 산을 오르는 건 딴 세상이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익숙하다가 땅을 밟는 기분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흑 냄새, 풀 냄새는 짙은 감동을 주며 산행하는 동안 다리 아픔을 잊게 해 주었다. 햇살과 나무, 하늘, 꽃, 풀잎은 길을 따라가는 동안 온몸의 세포들을 자극했다. 발길을 내디뎌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오르막길이 한창이면 땀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 그늘을 만나거나 잠시 쉴 때 땀을 식히는 바람이 솔솔 불어와 시원함을 선사했다. 이후 등산 모임에 자주 참여했다. 산행에 갈 때마다 장비들이 늘어났다. 등산화, 등산복, 등산 가방 등 그밖에 필요한 게 많았다. 1박으로 진행하는 산행도 해 보고 비박이란 것도 해보고 무박 야간 산행도 참여했다.
산에 자주 참여할 즈음 동호회에서 종주 산행을 진행하는 걸 알게 되었다. 태백산맥 종주, 한남정맥 종주, 한북정맥 종주 등 이름도 여러 가지였다. 말로만 듣던 산맥을 지도를 보며 유심히 본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여러 개의 산맥들에는 제각기 이름이 지어져 있었다. 종주산행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런데 일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종주 산행은 산맥을 다 타는 것으로 지리산 종주 같은 경우 보통 2박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맥 종주는 다르다. 최소 20일 가까이 진행되는 긴 여정이었다. 직장인들을 위해 종주코스는 주말로 쪼개서 짜여 있었다. 구간을 잘라 주말만 산을 타는 거라서 아무리 짧은 종주산행도 15번 이상 진행되었다.
각각의 종주산행 계획을 살펴봤다. 봐도 잘 모르겠지만 참하고 싶은 마음에 일정이 맞는 곳에 참석 명단을 올렸다. 내가 참여한 곳은 한북정맥 종주였다. 총 참여인원이 30여 명으로 정해졌다. 참여한 인원을 5명에서 6명씩 조를 나누었다. 산맥 종주는 최소 인원이 조를 이루어 산을 타게 되어 있었다. 산맥을 다 돌기 위해 구간은 주말 1박 동안 탈 수 있는 거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 주마다 가야 하는 만큼의 길이 있고 그곳에서 하산하며 마무리한다. 그리고 다음 주에 다시 그 자리까지 치고 올라가서 다음 코스를 따라간다. 이렇게 산맥을 잘라서 산행을 하게 되면 길이 없는 곳을 가는 건 필수가 된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산에서 쉽게 터지지 않을 때였다. 각 조별로 햄을 이용해서 무전기가 사용됐다. 핸드폰이 있는 지금이야 GPS 지도로 알 수 있겠지만 당시엔 지도와 각도자로 위치를 파악했다.
미리 알고 산행에 임하지 못했고 참여해서 하나씩 배워나갔다. 조별로 출발시간에 텀이 있어서 길 찾는 건 조별 과제가 되었다. 저녁시간이 되면 같은 곳에 모여서 밥을 해 먹었다. 야간산행에 필요한 장비며 숙박을 위한 장비들이 상당한 무게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웬만하면 취사는 물이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단체생활을 하며 산에서 협동정신을 제대로 경험했다. 하루는 한 조가 취사 장소로 합류하지 못했다. 각자 무전기로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고 그 조는 적절한 장소를 정해서 숙박했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그런 일이 종종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이나 다음 주에 만나기도 했다. 종주산행 이후 임시응변이 능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몇 주에 걸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북정맥 종주를 마쳤다. 참여자들이 모여 쫑파티도 했다. 종주 산행을 마쳤다는 것에 감사하고 각자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당시 결혼 정년기에 있었던 많은 언니 오빠들이 종주 산행이 끝나고 줄줄이 결혼식을 올리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분들이 잘 살고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모두들 잘 계시지요?
스물한두 살에 PC 통신 동호회는 내게 너무도 감사한 존재였답니다. 그때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