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있다.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는 법과 질서, 정의, 인간성, 도덕성, 가족, 책임감, 친구, 사람, 의리, 자존감, 규칙과 규율 등이다. 살면서 스스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들이다. 남은 알지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알 수 있다. 내 마음속의 일렁임 조차도 나는 알 수 있다. 행동으로 실행하느냐 안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떠오르는 온갖 생각들에도 옳고 그름을 나름대로 판단하면서 살아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규칙은 선명해지기도 하고 어떤 원칙은 무너지기도 했다. 스스로 만든 원칙을 허물어 다른 원칙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변칙을 허용하더라도 다음 세 가지 원칙은 마지노선이 된다. 첫째 타인에게 피해는 없는가? 둘째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셋째 기쁘게 혹은 기꺼이 하는가?
열 살 미만일 때 우리 동네는 다세대와 다가구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었다. 1980년대 대부분 초등학생의 엄마들은 2,30대가 주를 이루었다. 늦둥이 정도가 있는 엄마가 40대였다. 엄마들은 천편일률적인 패션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는 단발 정도에서 그보다 짧은 편으로, 모두가 뽀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어느 미용실 빠마가 덜 풀리더라'라는 소문이 돌면 그곳에 아줌마들이 몰렸다. 바지도 단체복을 입고 다녔다. 이름하야 몸뻬 바지. 알록달록하고 화려하고 안 입은 것 같이 편한 몸뻬 바지는 동네 아줌마들의 단체복이었다.
작은 동네였지만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낮에는 야채며 과일 생선 등 차가 오면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들었다. 고물장수 엿장수가 다닐 때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서로 우리 동네에 누가 사는지, 그 집 형편이 어떤지 알고 지냈다. 낮 동안은 대부분의 어른들은 일터에 가고 아이들은 동네 구석구석을 자신들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놀이터는 별도로 있는 게 아니었다. 공사를 위해 모래를 쌓아 놓으면 그 모래 더미가 놀이터가 됐다. 공터는 바닥에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여러 가지의 놀이터가 됐다. 기둥만 있어도 고무줄을 연결하면 놀이터가 뚝딱 만들어졌다. 저녁이 되면 메밀묵과 찹쌀떡, 혹은 두부 장사가 목청을 높였다.
집은 대부분 단층이 많았기 때문에 떠오르는 풍경 속엔 건물보다 사람이 먼저 생각난다. 동네별로 미친년이나 미친놈이 있었다. 옛날에는 모든 어른들이 대명사처럼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아이들은 모두 따라 불렀다. 그게 욕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몸이 아픈 사람, 장애인, 치매 노인도 있었다. 그들이 동네를 돌아다녀도 동네 사람들이 집으로 안내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들을 챙겼다. 현대사회는 풍경 속에 아파트와 큰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많아 보이지 않는다. 특정 장소에 가면 그제야 북적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모여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건강한 사람들이다. 동네마다 있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집집마다 방음도 잘 안 됐던 건지 시끄러운 소리는 자주 들렸다. 부부 싸움을 하는지 어른들의 과격한 말싸움이 여가 없이 들려왔다. 가끔은 낮에도 동네 사람들끼리 싸우는 소리가 널리 퍼졌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싸움 구경을 하기도 했다. 말리는 사람들이 더해지면 싸움은 더 볼만해졌다. 당장 우리 집에도 욕이 난무했다. 어릴 때는 욕이 그저 말의 표현인 줄 알았다. 사람이 화가 나면 하는 대화, 정도라고 생각했다면 나만의 비약이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어린 시절 욕은 그렇게 나에게 친숙했다. 친숙했으니 어린 시절에 욕은 나에게 일종의 언어였다. 그런데 학교를 가고 교육을 통해 욕이 나쁜 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0살에 어느 날 욕의 단어를 스스로 파헤쳐 보다가 놀라게 되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97년 안양 합동 영업소, 다른 장소도 아니고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나에게 욕을 하는 사람이 앞에 있었다. 대리점 사장님이 영수증을 가지고 실랑이를 하다가 터져 나온 말이다. 나는 원칙을 지켜야 했으므로 영수증을 두 권째 잃어버렸다는 분께 다시 새로운 영수증 책권을 줄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수기용 영수증을 사용했고 한 권에 10개의 영수증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절차상 영수증 책권을 잃어버리면 공증을 서거나 다른 조치를 해야 했다. 절차대로 진행하고 최소한의 문제 여부를 확인하고 영수증 책권을 관리하는 것도 총무의 책무였다. 그런데 후속 조치 없이 무작정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안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두 차례 거절당하자 화가 난 대리점 사장님의 육두문자가 융단폭격처럼 날아온 것이다.
한동안 안 하고, 안 듣던 욕이라서 정신이 멍~해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회사에서 욕이라니 뭔가 현실감이 없었다. 얼굴은 빨개지고 당황하고 창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