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상처가 남긴 자국들(수두, 욕)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46화




금자난(꽃말:화려한 상처)



상처가 남긴 자국들(수두, 욕)


사무실에서 쌍욕을 들으며 당황했지만 나의 꼴통 같은 원칙은 지켜졌다. 사무실이 온통 시끌벅적해져서 소장님께 결정권을 넘겨주게 됐다. 소장님은 노련한 대응으로 상황을 정리해 주셨다. 우선 대리점 사장님의 편의를 고려해서 모든 문제가 발생 시 소장님이 책임지는 것으로 하고 급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영수증 책권을 발급하도록 했다. 다만 한 장만 사용하고 나에게 바로 반납하도록 대리점 사장님께 지시했다. 다음날 소장님은 조회 시간을 빌어 총무가 제1차 영수증 담당자인 것과 고유 권한임을 대리점 사장님들께 당부했다. 그리고 영수증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설명했다. 이번 같은 경우처럼 잃어버렸을 때는 어떤 절차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꼼꼼히 하셨다. 대리점 사장님은 그날 바로 공증절차를 밟으셨다.


스무 살에 첫 직장은 보험영업소 총무직이었다. 보험회사 총무는 할 일이 많았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대부분의 업무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총무 스스로의 실수는 물론 외야 사원들의 실수도 없애야 하는 중대한 업무들이 가득했다. 그중에 영수증 관리는 아주 중요해서 교육할 때 늘 나오는 말들이 있었다. '영수증은 한 장 한 장이 일종의 백지수표다.' 그 말이 나에겐 무거운 책임감으로, 때론 무서운 시한폭탄으로 여겨졌다. 수기 영수증 책권에는 각 열 장씩이 묶여있었다.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금전사고는 그 파장을 감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욕을 듣자 창피하고 당황했지만 스스로 원칙을 지켰으며 소장님의 노련함으로 해결 방안도 옆에서 지켜봤다.


욕을 먹은 일은 나에게 '태도'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도 알게 해 주었다.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은 무수히 많다. 상대방이 적어도 '또라이'가 아니라면 직장 내에서 계속 봐야 하는 사람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도 상스럽게 욕을 했다는 것은 대리점 사장님도 감정이 앞섰다는 걸 알 수 있다. 상황과 사람을 이성적으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은 의도하지 않은, 사고에 가깝다. 나를 괴롭히고 싶었다면 보다 교묘하게 괴롭혔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폭망 하는 발언은 피했을 것이다. 그 일후 나는 내 태도와 말투에 대해 곱씹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


욕을 들은 것에 대해 대리점 사장님께 사과를 들었지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한쪽만의 잘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태도와 표현력에 대해 사과드렸다. 그리고 나이가 어리다는 게 방패가 되어 미숙한 사회생활로 노련하지 못함에 대한 나의 사과는 상대방에게 너그럽게 받아들여졌다. 며칠 후 욕한 죄로 대리점 사장님이 거하게 회식을 쏘셨고 나에게 거듭 미안하다며 맛있는 걸 사 주셨다. 각자 입장 차이라는 것에 공감을 해주었기 때문에 잘 넘어갈 수 있었다. 다른 대리점 사장님들도 어른답게 나에게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사장님들께 감사함과 친숙함을 느꼈다.


몇 달이 지나서 겨울 어느 날 몸이 너무 무겁고 두통이 심한 날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출근길에 오한이 심해서 간신히 사무실에 도착했다. 머리가 쭈뼛쭈뼛 뒷골이 땅기고 기분 나쁜 통증이 전해져 왔다. 몸에 기운도 없고 통증이 컸지만 쌓여있는 일로 콜록거리면서 업무를 했다. 목도리로 얼굴을 돌돌 말고 사무실을 지켰다. 그냥 감기는 아닌 것 같았고 독감이 의심될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대리점 사장님들이 병원에 가라고 신신당부하는 바람에 점심시간에 잠시 병원에 다녀왔다. 증상을 한참 살피던 의사가 얼굴과 손, 팔까지 살펴보며 진단하셨다. "수두입니다." "네? 수두요?" "네, 수두입니다. 증상을 보니 심한 것 같은데 예방접종 안 받으셨습니까?"


약 처방을 해오고 사무실에 와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보니 얼굴과 팔에 뭔가 올라오는 게 있었는데 의식하지 못했었다. 병명을 듣고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데 통증이 더 심해졌다. 머리는 더 아파지고 열이 계속 나는지 떨림 현상이 더 커졌다. 유일하게 총무는 한 명이라서 내가 없으면 그대로 일 처리가 미결이 되는 상황이었다. 일이 많아서 자리를 비울 수도 없으니 아프다고 집에 갈 수가 없었다. 통증이 심해지자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몇몇 대리점 사장님이 밖에서 일하다가 사무실에 들어와 나를 발견했다. 울고 있으니 왜 그러고 있는지 물으셨다.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수두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어서 집에 가야지 왜 그러고 있냐고 야단하셨다. 일이 아직 안 끝났다고 말했더니 부랴부랴 택시를 불러서 기어코 집으로 가라고 떠밀어 주셨다. 안양에서 부천까지 택시비가 3만 원 가까이 나올 때인데 여자 대리점 사장님이었던 따봉 사장님이 택시비까지 내주셨다.


오후 5시가 안 돼서 집에 도착했고 바로 잤다. 아니 누워있었다. 밤새도록 고열과 통증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돼서 다시 출근했다. 총무 일은 하루도 빠지는 게 쉽지가 않을 때였다. 점심에 병원을 갔더니 상태가 더 심해졌다며 입원을 권유했다. "수두로 입원을 해요?"라고 물으니 성인은 그만큼 통증이 있고 내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나는 여건상 입원은 안된다고 하고 통원치료를 받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조기 퇴근을 했다. 21살에 앓은 수두는 엄청난 통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통증만큼 많은 상처들을 남겼다. 21살 처자 얼굴이 난장판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수두를 앓으며 고집스럽게 내 업무를 책임지고 해냄으로써 영업소에서도 소장님이나 대리점 사장님들이 대견해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수두는 삼주 정도 후에 나았다. 좀 더 정확하게는 삼주를 괴롭히다 상처를 남기고 지나갔다. 마치 토네이도가 지나간 폐허같이 나의 얼굴은 상처로 초토화되어 있었다. 한참 동안 사는 게 바빠서 상처를 돌볼 시간은 없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그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해 피부과에 갔다. 오래된 상처 자국일수록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자세히 보면 수두자국들이 남아 있다. 수두는 나에게 곰보자국만 남긴 건 아니다. 내 일에 대한 무게감과 책임감을 남겼다. 그리고 아팠을 때 배려해 주는 주변 사람들을 남겼다.


옛날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요령 없고 답답했던 내가 생각난다. 무대뽀로 버틸 줄 만 알았지 문제해결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요령도 별로 없고 원리원칙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몸소 부딪히고 깨지면서 문제 해결능력은 예전에 비하면 일취월장했다. 센스를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책으로 연애를 배웠어요.'라는 분들이 계시던데 나도 그와 비슷하다. 센스에 관한 책을 보며 혼잣말로 따라 하고 수차례 연습해 보곤 했다. 내 생각엔 나름대로 요령도, 센스도 생긴 듯하다.(물론 내 생각이다 ㅎㅎㅎ)


나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도 결국 감사하게 되는 건 이런 일들도 다 해당된다. 욕을 먹은 일도, 수두를 앓은 일도 내게 분명한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면서 딱쟁이가 생기고 그 안에서 무르고 헤집어진 내피에 살포시 새살이 들어찼다. 시간이 지나서 딱쟁이는 떨어져 나가고 새살은 좀 더 단단해지며 외피가 되었다. 외피의 모양은 각양각색으로 제멋대로 자리 잡느라 미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게 흉터가 남았다. 그러나 흉터에는 더 이상의 고통은 남아있지 않다. 예쁘지 않은 자국을 볼 때마다 그것에서 느끼는 바가 있다. 그렇게 모든 일은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각자의 역할이 있고 존재 가치가 있다. 난관을 만나고 그것과 헤어질 때는 늘 배움과 감사함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