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아버지는 빌라한 채의 집을 남기셨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며 감가상각이 되는 안타까운 부동산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엄마는 이런저런 일을 시도했다. 그리고 시간은 더 흐르고 자식들에게 의탁하게 되었다. 엄마에게 하나뿐인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길을 잃은 사람처럼 안갯속을 헤맸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는 세상 밖으로 빼꼼히 나왔고 지금은 일을 하고 있다. 큰언니, 작은언니, 나는 빌라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하지 말아야 했을지 모른다. 그나마 작은 노력이든 큰 노력이든 노력한 모든 것들은 우리들에게 뼈 아픈 경험으로 교훈을 남겼다.
둘. 법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거의 10년이 지나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다. 갑자가 나타난 보증채무였다. 그건 정말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라서 눈앞이 캄캄했다. 그 일은 내 앞에 큰 벽으로 나의 길을 막는 일로 커져 있었다. 무려 10년이 지난 후에 발생된 일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아버지가 97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98년에 상속법이 개정되면서 채무의 경우 채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로 개정되었다. 97년도에는 무조건 사망 후 3개월 안에 자동 상속되는 것에서 개정된 것이다. 예를 들면 망자가 빚이 없는 줄 알고 상속포기나 한정상속을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자동 상속되었다고 해도 채무 사실을 알게 됐다면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바뀐 것이다. 이법은 98년도에 개정됐고 아버지의 경우엔 해당사항이 없었다. 고통스럽게 경험한 덕분에 법을 아는 것에 적극성을 띠게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교훈을 살벌하게 경험했다.
셋. 돈 관리에 관한 사항이다. 아버지는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돈 관리는 못하셨다. 젊을 때는 노름도 하셨다. 유일하게 산 부동산은 하필 빌라였다. 일하는데 필요했던 오토바이는 고가로 사셨지만 주식이나 부동산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적극성도 없었다. 결국 부모의 땅조차 친지들에게 빼앗겼다. 취미로 낚시를 즐기셨는데 낚싯대 용품에 상당한 돈을 썼다. 사람 좋고 인심은 좋아서 살면서 선행을 베풀 줄은 알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에는 해태했다. 저축하지 않고 쓰는 것에 열중했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 걸 싫어해서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사셨지만 남겨진 자녀들에게 빚을 남겨주었으니 자식들에게 민폐가 되었다.
넷. 건강관리. 아버지가 아프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건강은 자신의 삶만 무너트리는 게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삶도 무너트릴 수 있다. 몸 건강, 마음건강에 게으름을 허용해선 안 되겠다. 인간이 살면서 제일 중요한 건 무엇이 있을까? 인간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재난이나 사고 같은 경우는 신의 영역이다. 다만 건강관리는 인간 스스로 어느 정도는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이 참 좋아졌다. 이 좋은 세상을 더 즐기려면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은 필수요건이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키우는데 절대 게으르면 안 되겠다. 이건 알면서도 지키기 힘든 부분이다.
다섯. <실손보험>, <상조> 살면서 꼭 필요한 것으로 각인된 것들이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살아지지 않는다. 수많은 변수들은 모두 리스크가 된다. 우리가 헷지 할 수 있는 리스크는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이런 걸 준비할 수 없었다. 그때는 세상에 없던 것들이다. 지금은 실손보험으로 병원비 걱정을 없앨 수 있다. 아빠 세대에도 실손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의료기술도 지금처럼 발달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조도 있었으면 망자를 앞에 두고 상술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좋은 세상이 되어 많은 장치들이 생긴 것이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할 따름이다. 있는 걸 잘 활용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여섯. 사람. 나는 사람이 좋다. 혼자 살 수 없으니 더불어 살아가려면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살아야 한다. [복]도 사람한테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배운 건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 조문객으로 깨달은 것이다. 가족에 대한 소중함도 느끼게 되었다. 살다 보면 사람들에게 상처받을 때도 있고 뒤통수 맞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어쩌랴.' 으레 생길 수 있는 불상사는 어쩔 수 없다. 조심해야겠지만 이미 생긴다면 걷어내야 한다. 구더기 밭이 되어 영 못 먹겠다 싶으면 새로 조심하며 담으면 된다. 이것저것 다 조심하다 보면 좋은 인연도 놓칠 수 있다. 계속해서 나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게을리하면 안 된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니 내가 좀 더 분발해서 좋은 사람이 되자.
일곱. 철학. 죽음을 가까이서 봤기 때문일까?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던지게 되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PC 통신 동호회 산 사랑에 가입했다. 산행을 하면서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 한남정맥 종주점에 지리산 종주를 2박 3일간 했었다. 3일째는 이미 발에 여기저기 물집이 여러 겹 생겨서 진물이 나고 피가 났다. 마지막 날 종착지인 고지를 몇 시간 앞에 두고 일행들과 간격 차이로 혼자 걷게 되었다. 그때 나는 마음껏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 입장에서 아버지 없는 설움과 처지에 아버지의 부재가 슬펐다. 그런데 산행을 하면서 그냥 아버지 입장에서 아버지가 가엽고 안된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선물로 다시 사춘기를 겪는 아이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아버지의 삶은 자식인 나에게 교훈으로 남았다. 사실 일곱 가지보다 더 많은 걸 배웠다. 아버지에 좋은 부분은 잘 계승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행착오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는 인생길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나름을 길을 찾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은 너무도 크다. 유산은 큰데 돈이 아니라서 재산세를 한 푼도 안 냈다는 것이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