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7월 17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당신이 죽으면 어디에 매장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셨다. 일종의 유언이었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드느라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땅에 아버지 장지를 마련하셨다. 5평 정도, 묏자리를 사용하고 당시 땅값의 시세를 외할아버지께 드렸다. 매장하고 때를 입히는 비용이 소요됐다. 한 달 반 정도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49재를 올렸다. 그리고 모든 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아빠가 총기 사고를 낸 후 투병이 길어지는 아빠가 '고생 그만하고 죽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막상 세상을 떠나시자 크게 상심하며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 그런 엄마가 걱정되어 고민이 될 정도였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시면서 유산을 남기셨다. 이는 당시 상속법 덕분 일지도 모른다. 당시 상속법은 단순 상속이 원칙이었다. 단순 상속이란 상속인에게 모든 권리가 대물림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엔 숨겨진 함정이 있다. 권리뿐 아니라 의무 또한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법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지금처럼 정보를 알아볼 방법도 없었다. 주변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우리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떤 사항들을 알아봐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법은 너무 멀리 있었고 우리 가족은 모두 무지했다. 사망일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 포기 혹은 한정상속을 신청하지 않으면 법정상속인의 동의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상속됐다. 아무런 자각 없이 우리는 단순 상속인이 되었다. 남겨진 법정상속인인 엄마와 우리 형제자매 넷에게 아버지의 금전적 권리와 의무가 상속됐다.
58세, 환갑도 안 돼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젊을 때는 한량으로 사셨고 결혼해서부터 청소 일을 시작해 조장, 감독 등을 역임하셨다. 58년 동안 남겨진 재산은 유산이 되어 가족들에게 남겨졌다. 아버지 명의로 된 재산은 집이 유일했다. 실평수 15평 정도 되는 빌라였다. 아버지는 서른부터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셨지만 돈에 무관심했다. 종갓집 외동아들이었고 아빠의 아버지는 부모로부터 상당한 땅을 물려받아 부유했었다. 아버지 부모가 땅이 많았으니 아버지에게도 땅이 대물림 됐어야 했다. 그러나 장 씨 집안은 특히 아들이 명이 짧은 것으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고려, 조선 시대별로 난국일 때마다 집안의 남자는 모조리 죽임을 당하는 수난이 있었다고 전해졌다. 그래서 명이 짧은 장 씨 남자들은 대를 잇는 것에 열성을 다했다.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가장 알아주는 땅부자셨다고 했다. 할머니가 검소하고 소처럼 일만 하는 분이 셨다고 들었다. 그리고 일하는 대로 하나씩 꾸준하게 모은 게 땅이었다. 그렇게 모은 땅으로 일궈낸 결과가 땅부자셨다. 대대로 부자로 살 만큼 양주 땅이 아버지의 할아버지 소유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아들 둘을 낳으셨고 큰 아들만 호적에 올리셨다. 그때는 아이 때 병치레에 죽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은 전쟁통에 끌려가는 게 수순이었기에 대를 잇기 위해 호적에 한 명만 올린 것 같다. 다행히 두 아들이 장성했고 각자 아들도 낳고 자식들이 번창했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넉넉한 형편에 한량으로 사셨다. 아버지도 그런 부모 아래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 형제자매들은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릴 적 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종갓집 종손에 외동으로 독자가 되셨다.
아빠가 엄마와 결혼한 후 할아버지는 손녀와 손자를 보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첩을 두고 한량처럼 살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건 곰방대 때문이라고 한다. 마실을 나갔다 돌아오시는 길에 넘어지면서 곰방대가 목을 뚫었다. 그로 인한 치명상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는 할아버지를 회상할 때 좋은 모습으로 기억하셨다. 며느리인 당신을 귀하게 여기고 아껴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넉넉한 살림에 인자한 품성이 있으셨다고 한다. 외모 또한 출중해서 소실(첩)을 둘 이상을 두고 사셨다고 했다. 그 때문에 할머니는 화가 많으셨고 엄마에게 시집살이를 시켰다고 한다. 아들이 귀한 집에 자녀 넷 중 딸, 아들, 딸, 딸을 낳으며 구박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할머니와의 불화가 씨앗이 되었는지 양주에 살고 계셨던 부모님은 양주를 떠나게 되었다. 고향을 등지고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 몸으로 떠났다는 것만 전해 들었다. 내가 태어나고 바로 할머니도 돌아가신듯하다. 봇짐만 들고 부천으로 올라온 부모님은 고생이 많으셨다. 이후 외지에서 사는 게 바빠 땅문서들은 관리하지 않으신 듯하다. 아버지의 작은 아버지는 살아계셨고 작은 아버지는 계속 양주에서 사셨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을 때였고 행정처리가 진행된듯하다. 아버지의 아버지 호적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버지의 작은아버지가 호적상 장자가 되어 버렸다. 그때는 모든 재산이 장자가 물려받는 때였다. 그렇다면 엄밀히 법으로는 모든 땅은 아버지가 물려받는 게 맞았다. 그러나 어수선한 세상에 얼렁뚱땅 그렇게 땅이 모두 작은 집으로 넘어가 있었다.
땅은 그렇게 전설 속 이야기처럼 없는 게 되어버렸다. 살고 있던 빌라만이 아버지 명의였다. 집에는 대출이 있었고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었다. 빌라는 아파트와는 달리 지어져서 분양되면 가격이 내려가는 마치 자동차처럼 감가상각이 되는 신기한 부동산이었다. 아버지의 오랜 투병생활 동안 집 명의를 바꿀 생각을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집이 아버지 명의였으므로 그냥 엄마가 살면 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