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생에 첫 예식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53화




흰색 카네이션(꽃말: 내 애정은 살아있습니다. 아직 당신을 사랑합니다



생에 첫 예식


예식. '사전적 의미로 예법에 따른 각종 의식. 혹은 정례적인(관례에 따르는) 의식. 1. 예배나 성찬 등과 관련하여 곁들여지는 각종 의전적인 요소들을 일컫기도 하고, 2. 임직, 헌당, 결혼, 장례, 추모 등과 관련하여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인간 상호 간의 친교가 어우러져 진행되는 예식을 가리 키키도 한다. 이는 분명 예배와 구분된다.'라고 나와있다. 살면서 치르는 예식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 보통의 사람들의 경우 결혼과 장례식이 가장 보편적일 것이다. 자신이 주최자가 되는 예식 중 결혼은 배우자, 즉 새로운 가족이 생길 때 당사자가 된다. 반면 장례는 혈육 혹은 배우자, 가족이 떠날 때 당사자가 된다. 정작 본인의 장례식에는 본인은 의지를 갖고 예식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필수 조건이지만 예식을 치르는 당사자는 아니게 된다. 나의 첫 예식은 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새벽부터 조문객들을 맞기 위한 준비로 엄마를 포함해서 우리 형제자매들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오후가 되자 조문객들이 방문했다. 집에서 장례식을 치렀기 때문에 방문자들은 상주에게 전화로 위치를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화받고 조문객들을 안내하느라 안방과 마당을 오고 가며 움직였다. 조문객을 맞이하면 안방으로 조문객을 안내한다. 조문객은 국화꽃 한 송이를 영정사진 앞에 두고 향을 피우고 향 항아리에 꼽는다. 고인을 향해 두 번의 절과 한 번의 반절을 하고 상주와 한 번의 맞절을 하고 반절을 한다. 그리고 상주는 조문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음식을 드실 수 있는 자리로 안내한다. 일손이 부족하면 상주는 음식도 챙겨서 나간다. 내 친구들은 퇴근하고 조문을 왔다가 그렇게 움직이는 나를 보고는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도왔다.


낮에 직원들을 위해 보내주는 장례물품들이 회사 마크가 찍혀서 도착해 있었다. 회사를 대표한 화환들도 도착했다. 조문객들이 찾아와서 화환이 적은 것을 확인하고 더러 화환을 주문해 주신 분들도 있다. 식사를 하고 가시는 분들이 육개장이 너무 맛있다며 몇 그릇씩 드신 분들도 있다. 마당에 펼쳐진 자리가 불편했을 텐데도 그 누구도 불평이 없었다. 차려진 음식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더러는 울고 가고 더러는 웃으며 자리를 채워 주시고 계셨다. 오랜 투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은 여러 모습들이 어우러져 한 곳에 공존했다. 친지분들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칭찬을 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곡소리가 간혹 크게 울려 퍼지기도 했다.


우리 회사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다. 안양 합동에서 근무하시는 대부분의 외야 사원분들이 오셨다. 그리고 지점에 있는 정규직분들이 거의 다 오셨다. 본부에서도 최고 직책자와 인사과 담당인 성 선배님도 오셨다. 성 선배님은 입사시험과 면접을 볼 때 목도리를 짜는 모습으로 첫 대면을 했던 분이다. 고등학교 친구들도 심이 연락한 것인지 많은 친구들이 와 주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PC 통신 동호회 가입은 채팅 사랑이 유일했다. 가볍게 여길 수도 있는 관계였는데 활동하고 있던 채팅 사랑 멤버들이 많이 와주었다. 밤이 되자 밤샘을 해줄 조문객이 거의 없었다. 몇 년 전부터는 장례식에 밤샘을 하는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장례식은 밤을 새워주는 게 하나의 문화였다. 휑한 모습을 본 동호회분들이 돌아가지 않고 자리를 지켜주셨다.


아버지의 장례를 통해 당시 나는 느낀 게 많다. 우선 돌아가신 아빠 입장을 생각해 봤다. 인생은 유한하다.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모든 것과 헤어지는 것이다. 삶은 어떻게 채워야 하는 것일까? 인간에게 주어진 삶은 자유의지에 의해 변할 수 있는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는 동안뿐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돈으로 모든 것들을 흥정을 해야 하는데, 돈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의 의미는? 배우자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녀들에게는 어떤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할까? 행복하게 사는 건 어떤 것인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행복은 무엇인가? 등. 처음으로 겪은 아버지의 죽음은 인간의 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아빠 입장뿐 아니라 당연히 내가 보고 겪은 일들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남겨진 가족으로서 내가 느낀 감정과 교훈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해를 거듭하면서 변하기도 했다. 장례식을 통해서 나는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커졌다.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은 늘 자신의 입장이 되어야만 가르침을 얻는 것 같다. 21살의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슬픈 일에 참석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경험으로 알게 됐다. 이후 결혼식에는 축의금만 보내더라도 장례식은 참석하려고 더 노력했다.


오랜 투병으로 아버지 지인분들은 몇몇 분을 제외하고는 많이 못 오셨다. 사회생활은 전무했던 엄마의 조문객들은 친지분들과 동내 몇 분이 고작이었다. 큰언니, 오빠, 작은언니의 조문객도 많지 않았다. 아버지 생신 때 오셨던 분들의 1/10도 오지 않았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많아도 막상 정승이 죽으면 조문객이 없다'라는 옛말이 생각났다. 씁쓸한 마음과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살아 있는 동안의 인연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권력과 돈에 대한 서글픈 마음도 남았다.


생에 처음으로 경험한 예식인 아버지의 장례식 동안 눈물과 분주함과 위로가 공존하며 3일 밤낮이 지나갔다. "아부지 곧 7월이에요.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