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아버지의 보상금 2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62화.




자미오쿨카스:금전수(꽃말: 행운, 번영, 금전, 돈)


아버지의 보상금 2


아버지의 질병으로 소송을 진행했던 것은 법 절차상 필요한 시간만큼의 날들이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에도 우리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일들을 하며 보냈다. 1차로 보상금이 일부 나왔다고 들었다. 이후 2차는 더 많은 금액이 보상될 예정이었다. 엄마는 보상금 이야기를 물어보면 지금도 얼마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없으시다. 조금 보상금이 나왔다고만 이야기하신다. 늘 뭔가 결정적인 건 말을 흐린다. 분명한 건 일부 보상금을 엄마는 확실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알린 적이 없어서 우린 언제 보상금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엄마는 늘 자신의 권리는 잘 기억한다. 예를 들면 자녀들이 흘리는 말로 "엄마 다음 달에 월급 받으면 용돈 조금 더 드릴게요"라고 말하면 그런 건 이미 엄마의 수입으로 여겨 반드시 챙겨간다. 며칠 전에도 엄마가 기운도 없고 입맛도 없다고 해서 내가 뭐 드시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봤다. 작은언니가 한 달 전 사다 놓은 누룽지 해물탕을 데워드렸는데 그게 맛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언니한테 주문해서 엄마 해드리고, 나에게 청구하라고 했다. 그런데 작은언니는 당장 시킬 돈이 없었는지 월급을 타고 시킬 예정이었나 보다. 나는 언니가 돈을 먼저 보내라고 하지 않아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랬더니 손자에게 몇 번이나 그거 내가 사 준다고 했는데 왜 안 사 주냐고 거듭거듭 말했다고 한다. 나한테 말하면 쉽게 해결될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에둘러 말하는 것도 엄마의 특징이다.


반면에 의무는 잘 기억하지 않는다. 누군가 '엄마가 이런 거 안 했잖아'라고 말하면 늘 그럴만한 핑계와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엄마는 자식들 도시락을 거의 싸 준 적이 없다. 자식 네 명 모두 학창 시절에 거의 매일 굶고 다녔다. 20년 전부터 엄마는 자식이며 손주들 밥은 잘 챙겨주신다. 그런데 가끔 뭔가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자신이 식모냐고 불평할 때가 있다. 그럼 작은 언니는 "옛날에 안 챙겨줬으니까, 지금 챙겨줘야지."라고 말한다. 어쩌다 보면 옛날이야기가 불쑥 나올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배고픔을 견뎠는지도 각자 말을 하게 된다. 굶고 다니며 그걸 견뎌낸 시간들이 각자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런 때면 "그때는 내가 아파서 그랬지"라고 얼버무리는 게 전부다.


재밌는 일도 있었다. 어릴 때 바나나는 엄청 비싼 과일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젊었을 때는 더 그런 면이 있었다. 비싼 걸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그걸 사랑하게 된다. 집착이 생기고 그걸 못하면 인생이 의미 없어진다. 여하튼 어릴 때 내가 분명히 기억하기로 엄마가 혼자서 바나나를 먹다가 자식인 나에게 딱 들켰다. 그렇다고 그걸 미안해하거나 당황해하지도 않았다. "이건 어른들만 먹는 거야~"라고 얼버무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바나나가 대중화가 되고 저렴해지자 엄마는 바나나를 잘 먹지 않았다. 옛날이야기인 바나나 이야기를 꺼내면 "그땐 그게 그렇게 맛있었어. 그런데 맛이 변했나~?"라며 넘어간다. 우리는 그런 에피소드가 그저 웃기고 재밌어서 낄낄대며 웃어대기만 할 뿐이다.


엄마의 그런 면이 이제 상처가 되거나 별반 새롭지 않다. 우리 자식들은 이런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좀 많이 유별났던 엄마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사람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자식을 낳으면 부모님을 이해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아들을 낳고 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자녀에게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이 머물면 그게 곧 무기가 되어 나를 해쳤다. 한동안 그 공격에 많이 다치고 아팠다. <이해가 되지 않는 엄마, 남들의 어머니와 다른 우리 엄마> 이것 자체가 엄청난 상처가 됐었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 생각을 하면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다른 부분 때문에 꺼이꺼이 가슴이 타들어가고 헤집어서 숱한 눈물을 흘렸었다.


사십이 넘어서야 알게 됐다. '나 같은 부족함이 많은 인간은, 어차피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거구나!' 하긴 사실 나 스스로도 내가 온전히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하물며 무슨 타인을 이해하겠는가? 나는 이제 안다. 나는 이 세상 그 어떤 누구도, 타자를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더 성숙해져도 그건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타자가 그러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그 후부터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저 웃긴 희극을 보듯이 웃음이 난다. 어릴 때 있었던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이젠 더 이상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 모든 일들이 결과적으로 모두 고맙다. 진짜로 그렇다. 그저 감사하다. 모든 사건들은 그 존재 이유만큼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 아버지의 보상금은 얼마나 나왔을까? 드라마의 역전 말루 홈런이 이루어졌을까?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에라도 가족들에게 금전적인 유산을 남겨줬을까? 우리 가족은 구사일생, 돈의 구원을 받았을까? 흥부의 선행처럼 까치가 전달해 준 박 씨는 결실을 맺었을까? 풍성해진 박이 터지며 돈방석에 앉는 경사가 생겼을까? 옆집 아저씨는 우리 가족에게 '까치' 였을까? 안타깝지만 아버지의 보상금은 엄마도 우리 자녀들도 그 실체와 마주하지 못했다.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은 건 아니다. 분명히 지급됐다. 1차 지급 시 엄마는 그 돈 일부를 받았다. 그리고 2차는 이미 확정된 돈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모든 걸 엄마가 옆집 아저씨에게 위임한 게 잘못이었다.


타인의 선행이 오롯이 선행으로 이루어지는 건 판타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러나 옆집 아저씨는 좋은 사람이 결과적으로 아니었다. 보상금을 엄마에게 주지 않았고 중간에 가로챘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수 없다. 자식들 중 그 누구도 그걸 신경 쓴 사람이 없다. 권리가 권리인 줄도 몰랐다. 모르니 찾으려고 노력한 사람도 없다. 법을 알고 그나마 이웃집의 권리를 찾으려고 노력한 옆집 아저씨가 우리 집의 권리를 가로채 갔다. 어리숙한 엄마를 속이는 건 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보상금은 옆집 아저씨의 권리가 됐다.


지금 같았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지금의 작은언니와 나였다면, 당시 우리가 조금 더 어렸을 때라도 언니와 내가 개입됐다면, 아마도 우리의 권리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건 그 일이 있고 나서 10년도 넘어서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것도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만 기억하는 엄마가 어느 날 그 옛날 빌라 옆집 아저씨를 욕하면서 알게 됐다.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엄마를 파악했고 꼬치꼬치 물어서 실체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아빠 보상금이 나왔다는 것도 그때 들었다.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가족이든, 자녀든 상의하면서 알아봐야 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 일도 그저 얼버무리듯 이야기하는 게 다였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ㅎㅎㅎ)


정확하게 실체를 듣게 된 시기가 이미 너무 지난 일이 된 후였다.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본 예링(Rudolf von Jhering)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지키려고 하지 않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도 침해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기였든 보상금을 챙겨가면서 무슨 일이 있었든 모든 금전적인 책임에 대한 권리는 소멸시효가 있다. 돈과 관련된 소멸시효는 개인 간은 더 짧다. 받을 돈이 있다면 반드시 3년 안에 권리를 주장하는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엄마는 모든 권리를 찾을 기회조차 가족들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보상금은 신화 속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도깨비처럼 신기루가 되어버렸다. 옆집 아저씨의 사기행각은 그저 우리 집의 옛날이야기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 아버지의 보상금을 가로채간 옆집 아저씨? 잘 살고 계시나요? 사기 치셨으면 죗값만큼 잘 사십시오. 저는 좋은 사람으로 살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1인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