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소 ‘말’에 대해 정말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제가 쓴 기획서를 보고, 같은 팀원이 짧게 질문을 보내거나, 피그마에 코멘트를 다는 순간마다 “마침표로 끝내면 너무 딱딱해 보이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내 의도와 다르게 너무 강하게 들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썼다 지웠다를 수차례 반복하곤 합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면 표정이나 톤이 같이 전달되니 괜찮은데, 메시지로 전달할 때는 내가 원하는 온도를 어떻게 담아야 할지 혹은 괜한 것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어렵습니다.
한동안은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좀 답답하게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진짜 실력이 있었으면 내용 자체로 그냥 깔끔하게 설득했을 텐데, 괜히 말투나 어조 같은 부수적인 것만 붙잡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말을 예쁘게 하는 건 훌륭한 재능이다.”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을 예쁘게 하는 건 엄청난 재능이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건, 내가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세련되게 표현할지를 아는 것이다. 이런 잘 배운 다정함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큰 자산이 된다.”
뭔가 이 글이 제게는 “너 그거, 괜한 집착 아니야. 그 자체로도 꽤 괜찮은 능력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평소 말을 할 때 내 표현이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지, 혹은 내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되지는 않을지, 심지어 상대가 지금 피곤한 상태는 아닐지 같은 것들을 꽤 집요하게 신경 쓰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이걸 그냥 제 실력 부족으로 인한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읽고 나서는 함께 협업하는 환경에서는 이게 하나의 자산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회사에서는 누구나 “너만 바빠? 나도 바빠”인 순간이 많습니다. 미팅을 연달아 다녀와 이미 지친 상태에서 메신저를 열면 확인할 것들은 쌓여 있고, 그 와중에 의견까지 엇갈리면 저도 모르게 말투가 퉁명스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정작 필요한 피드백보다는 제 신세한탄이 먼저 튀어나올때도 많습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각자 자리에서 이미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고, 저만 힘든 것도 아니고, 저만 바쁜 것도 아닌데, 내가 힘든 만큼 상대도 힘들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게 때로는 말할 때 잘 반영되지 않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말을 예쁘게 하는 능력”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예쁘다는 건 포장이 아니라, 함께 제품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덜 지치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기획자로 일하다 보면 결국 “말로 하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걸 점점 더 느끼게 됩니다. 이슈를 정리해서 공유하는 것도 말이고, 사용자의 목소리를 팀에 전달하는 것도 말이고, 우선순위를 조율하고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결국은 다 말로 하는 일이니까요.
특히 기획자는 실제 고객과 팀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으로서 요구사항뿐 아니라, 사용자들이 느끼는 좋은 경험들, 개발자분들이 직접 듣기 어려운 긍정적인 피드백,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누군가에게 왜 의미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전달해 주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엔 “내가 실력이 없어서 말투에 집착하는 건 아닐까?”라는 제 자기 의심에서 시작된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말하느냐”만큼 “어떻게 말하느냐”도 하나의 실력이라고 믿으려 합니다. 제품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통과하면서 만들어지고, 그 대화의 온도가 팀의 분위기를 만들고, 다시 제품에도 스며든다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전히 제 머릿속에는 “실력”이라는 단어가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획 역량, 문제 해결 능력, 데이터 분석, 도메인 이해 같은 것들을 계속 갈고닦는 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게 찾아올 당연한 숙제일 것 같습니다. 다만, 오래 잘 일하기 위해, 그리고 함께 잘 일하기 위해 '어떻게 말하느냐'에도 계속 신경 쓰는 것은 괜한 집착이 아니라 기획자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능력임을 알고, 앞으로도 이 부분을 꾸준히 노력해 나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