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AI 10초 vs. 내 3시간, 기획서는 왜 내가 직접 써야 할까?라는 아티클을 읽고, 제 개인적인 고민과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요즘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할 때면 제 모니터 한쪽에는 늘 GPT와 Gemini가 켜져 있습니다.
기획서 검토부터 리서치까지, AI는 제가 던진 '1'의 아이디어를 순식간에 '50'으로 부풀려줍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간혹 "이러다 내 뇌가 점점 멍청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해서 첫 기획을 맡았을 때는 요구 사항 하나를 이해하고 고민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이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정말 최선일까" 스스로에게 되물으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고민의 과정을 가져가기도 전에 AI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AI가 작성한 결과물들을 다시 AI와 함께 티키타카 하면서 디벨롭하는 과정이 습관처럼 굳어져 버렸습니다.
이런 과정 자체가 앞으로 AI 활용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고 하니 나도 잘 적응하고 있는 거겠지라며 생각하기도 하고, 지금 활용 정도는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둔 걸 AI가 다른 사람 보기 좋게 정리해 주는 정도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지난 현실을 돌아보면 저는 어느덧 기획의 사고 과정 자체가 제 것이 아니라 AI에게 외주를 맡기고 저는 그저 '검토하는 사람'에 머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서비스 운영 환경에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기존 기능을 개선하는 정도의 기획은 며칠을 밤새워 고민한 결과나 AI가 10초 만에 뱉은 결과나 상위 보고자가 보기엔 큰 차이가 없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깊게 고민하느라 시간을 쓰는 것보다, 빠르게 여러 개를 뽑아내어 공유하고 실무에 반영하는 것이 더 '일 잘하는 사람'처럼 비칠 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이러한 환경에서 '시간은 많이 썼는데 성과는 미미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읽은 이 아티클에서 '내가 지금 진짜 기획을 하고 있나?' 스스로 되묻게 하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속도'라는 마약을 얻은 대신, '깊이'라는 사고의 근육을 잃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기획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고의 근육'을 키우는 대신, 그냥 빈 페이지를 빠르게 채우는 것에만 급급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토하고 제 생각을 조금 더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그 기획안이 오롯이 제 것인 양 착각하면서요.
실제 인터뷰 현장이나 VOC 채널을 뒤지며 두서없이 적어 내려간 제 업무 노트를 보면, 정말 정돈되지 않아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가 싶을 만큼 날것의 글과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는 현장에서 부딪히며 고민한 저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AI가 정돈해 준 글보다 이 투박한 메모한 줄이 더 값져 보이는 이유는, 결국 그 안에 제가 내리는 의사결정과 논리의 시작점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끝없이 발전하고, 새롭게 출시되는 AI 도구를 단순히 '안 쓰는 것'이 답은 아닐 것입니다. 도구는 기꺼이 활용하되, 그 도구에 제 사고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도록 끝없이 경계하려 합니다.
기획자가 스스로의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AI가 주는 답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활용'이 아니라 '종속'에 가깝습니다. 앞으로는 대충 고민한 설계를 AI에게 넘겨 부풀리기보다, 제 생각이 올곧게 바로 섰을 때 비로소 AI를 수단으로 삼으려 합니다.
아티클에서도 말하듯 "기획자는 기획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기획서를 쓰면서 기획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럴듯한 결과물은 AI가 대신 생성할 수 있어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사고와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오직 기획자의 머릿속에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남들에게 일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효율에 매달리지 않으려 합니다. 빈 페이지를 채우는 '속도'보다 스스로 '사고의 깊이'를 채우는 과정에 더 무게를 두려 합니다.
그 과정이 때로는 비효율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기획자로서 하는 일들이 효율적인 결과물을 뽑아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며 진짜 답을 찾아내는 일임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