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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Jan 15. 2023

유이카와 케이, '어깨 너머의 연인'

두 종류의 여자에 대해

이 책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니, 두 종류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모에와 루리코, 둘 다 여자고 다섯 살 때부터 친구였으며 서로에게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친구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오래 친구였지만 둘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루리코는 여자를 이렇게 나눈다.


'여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무기로 삼는 여자, 그리고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약점으로 여기는 여자. 이 두 종류의 여자는 전혀 다른 생물이다.'


루리코가 이야기한 두 종류의 여자 중에서 전자가 루리코, 후자가 모에다. 둘은 종류가 다른 여자인 만큼 모든 면에서 다르게 살아간다. 루리코는 예쁘고 몸매도 좋다. 자신의 그런 장점을 루리코는 십분 활용하면서 살아간다.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받아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여러 남자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비싼 선물도 받는다. 쉽게 말해 루리코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상품화하는 것을 즐긴다. 자신의 상품성을 증명하는 것을 여자로서의 삶의 이유로 생각하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남자들을 통해 이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스스로 가치를 찾지 못하는 삶의 방식은 항상 한계를 드러내고 그때마다 루리코는 모에에게 찾아간다. 스물아홉, 이제 곧 서른인 나이지만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을 했고 서른이라는 나이는 자신의 상품성을 깎아 예전처럼 새로운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기도 쉽지 않다. 루리코는 그런 여자고 그런 고민을 안고 있다.


모에는 루리코와 반대다. 루리코처럼 외모가 눈에 띄지 않고 여자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은 기억이 더 많다. 좋아하던 남자에게 상처받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도 원하는 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모에는 남자도,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 자신이 아닌 무엇인가를 믿고, 의지하지 않는다. 끈기 있게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남자에게 의존해서 살아가고, 가볍게만 느껴지는 루리코에 비해 모에가 훨씬 나은 종류의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저자가 두 종류의 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유가 한쪽이 옳고, 한쪽이 그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 같은 모에에게도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모에가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말은 모에가 어떤 일에도 자신을 온전히 던지고, 빠져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모든 일에 냉소적인 사람, 그게 모에다. 모에는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마음에 들 것 같은 무엇을 발견하면 반드시 트집을 지으려 한다. 자신에게는 그런 버릇이 있다.'


누군가가 좋아지려 하면 모에의 마음속에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생겨난다. 가볍게 만나는 것은 괜찮지만 진지한 관계가 될 것 같다 싶으면 발을 뺀다. 루리코의 결혼식에서 만난 유부남과 가끔 만나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괜찮지만 그가 아내와 이혼을 했다는 말을 들으니 이전과는 다른 관계가 시작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연락을 끊는다. 자신을 상대에게 내어주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약점을 상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상대에게 의지할 수 없는 사람, 그게 모에다.


모에는 루리코의 줏대 없고 가벼운 모습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루리코가 불쑥 찾아온다거나, 루리코가 자신이 만나던 남자를 빼앗는다거나, 시비 거는 모든 일에도 루리코를 끊어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왜 모에가 루리코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친구로 지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실 모에는 루리코의 그런 모습을 스스로에게 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가벼운 모습을 동경했다고 할까. 그녀와 반대인 자신의 모습을 모에도 좋아하지 않기에 루리코가 가벼운 사람이고 짜증 나게 느껴지더라도 곁에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루리코도 모에가 자신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종류의 사람이기에 모에가 때로는 자신에게 모질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모에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둘은 서로의 연애를 지켜보고, 서로 같은 남자를 만나기도 한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종류의 두 여자는 자신이 가진 문제를 풀어간다.


사실 모에도 루리코도 조금은 극단적인 설정이다. 세상에는 모에처럼 여자라는 것을 약점으로만 삼는 사람,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루리코처럼 여자라는 것을 무기로 삼고, 누구에게도 가볍게 의존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 아니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기보다는 두 가지 성향 가운데 어느 곳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정도에 따라 누군가는 전자로 분류될 수도 있고, 후자로 분류될 수도 있지만 한쪽으로만 치우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리고 모에와 루리코에게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건 어느 한쪽이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벼운 여자를 더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제삼자인 우리의 시선일 뿐이다. 루리코는 누군가의 눈에는 헤프게 보일 수도 있지만 모에보다 더 행복한 순간을 산다. 그녀들 자신의 삶과 행복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사실 가벼움이나 무거움은 어느 하나가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성질이다. 그래서 이 책은 두 종류의 여자가 겪는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두 종류의 여자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조금은 치우쳐있는 게 아닌가에 대한 의문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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