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혁 May 06. 2024

존 윌리엄스, '스토너'

진짜 삶이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이 책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이 책은 윌리엄 스토너라는 사람의 일생을 우리에게 담담히 들려줄 뿐 눈에 띄는 스토리나 두드러진 부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스토너의 삶도 큰 성공이나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평범한 삶이다. 물론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같다고 볼 수 없기에 '평범하다'라는 말은 삶에 붙이기 어려운 형용사다. 하지만 누구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평범하다'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스토너는 가난한 시골 농부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일을 돕다가 우연한 기회로 대학에 가게 되어 농사 기술을 배우러 대학에 오고, 대학에서 문학에 눈을 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자신이 배웠던 학교에서 학생들을 40년 넘게 가르치다가 정년을 곧 앞둔 시기에 암에 걸려 일을 그만두고 머지않아 생을 마감한다. 종신교수였지만 학장이나 총장 같은 역할은 맡은 적도, 생각한 적도 없었다. 결혼을 했지만 성공적이지 않았고,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새로운 삶으로 그를 이끌지는 못하고 그 사랑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끝이 난다. 그는 그렇게 무료하다면 무료할 수 있는 대학에서의 생활과 불행한 가정에서의 삶을 담담히 살았다. 스토너라는 사람을 표현하자면 '묵묵히 살아가지만 삶의 요령이 전혀 없는 사람'일 것이다.


책은 그저 그의 인생을 보여줄 뿐이다. 평범하지만, 평범해서 우리 모두의 것과도 닮아 있는 인생을 보여준다. 우리는 화려한 삶을 원하지만 우리 삶은 대부분 평범하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처럼 화려하게 살지 않는다. 몇 만 원에 아쉬워하고 별 일 아닌 것 때문에 사람들과 다투기도 한다. 때로는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 부끄러운 일도 우리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라도 우리 삶과는 다른 화려한 삶, 무엇이든 성공하는 삶, 궁색한 어려움이 아니라 도전과 열정을 위한 어려움이 넘치는 삶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의 그런 원초적인 욕망을 채워주지 않는다. 스토너의 삶은 우리에게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닌 진짜 우리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을 읽다 보면 불편한 마음이 커지기도 한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생활 때문에 그를 악의적으로 괴롭히는 아내 이디스, 장애를 안고 있어 사회적으로는 약자로 보이기 쉽지만 대학에서는 그것을 악용해 스토너를 몰아세우는 로맥스 교수를 보면 마치 그 불의가 우리를 향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에게 강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스토너의 모습을 보며 답답한 감정이 든다. 요즘 우리가 드라마에서 기대하는 사이다 같은 장면은 없다. 그저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이 책이 평범한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자극적인 이야기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고, 답답할 수도 있다. 아니, 확실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삶의 모든 순간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화려하고 쉽게 해결될 수는 없다. Deus ex machina는 극에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기대하는 건 삶을 기만하고 회피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삶의 어려운 부분을 직시하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 책에서 스토너는 우리에게 삶을, 화려하고 쉽지만은 않고 때로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것처럼 느껴지는 진짜 삶을 대하는 한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적어도 스토너는 자신의 삶을 속이지는 않았다. 실패하고 고통받고 자신을 힘들게 할지라도 한 번도 그는 삶을 회피하지 않고 담담히 겪어냈다. 그에게 삶의 요령은 없었지만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삶의 원칙은 있었고 좋은 삶이란 그 태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다. 사회적인 성공도, 개인적인 행복도 그리 많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누구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스토너의 삶을 나쁘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