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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Sep 04. 2021

공정하다는 착각

공정함은 옳은 사회를 보장하는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댈의 세 번째 책, 공정하다는 착각은 우리 사회에 널리, 그리고 깊이 퍼져 있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흔듭니다. 아마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사회는 공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겠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은 우리 사회를 기대감에 들뜨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그만큼 큰 실망감과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달성 여부를 떠나서, 여기에 걸었던 기대감, 그리고 실망감의 크기 자체가 우리 사회가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함을 얼마나 많이 원하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듯합니다. 그만큼 요즘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은 중요한 주제입니다. 사회 정의 담론의 핵심을 차지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죠.


샌댈은 이 책에서 우리 사회와 같이 기회의 평등에 목마른 미국 사회를 바라보고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기회가 평등하다면 정의로운 사회가 될까요?' 질문을 던졌다는 것 자체에서 느낄 수 있듯, 샌댈은 이 명제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분열하고 혼란에 빠지는 이유가 기회의 평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기회의 평등이라는 개념은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얻은 것을 모두 향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이룬 것의 결과를 얻을 자격이 있다와 같은 '능력주의'를 가져와 사회를 부정의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구성원에게 본능적인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평등한 기회 아래에서 자신의 노력을 통해 능력을 발휘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 문제라는 말일까요.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는 말로 들릴 듯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의해 얻은 결과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사회주의적인 발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듣자마자 본능적인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단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본능적인 거부감을 잠시 젖혀두고 샌댈의 주장을 들어본다면 그가 말하는 능력주의의 한계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샌댈의 책은 우선 능력주의가 만들어내는 결과를 떠올립니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졌고, 과정이 공정했다고 하더라도 일단 능력으로 서열화되는 사회는 사람들에게 성공이 미덕으로 이어지는 가치관을 심어줍니다. 성공한 사람은 나의 성공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게 됩니다. 나는 노력해서 성공했고, 나의 능력으로 내 삶을 지금의 자리에 놓았다는 것이죠. 기분 좋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샌댈은 이러한 생각의 반대편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가치관을 지적합니다. 성공했다는 것이 나의 미덕이 된다면, 즉 내가 성공할 만해서 성공했다면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할 만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능력주의가 자리를 잡은 사회에서는 성공한 소수의 엘리트를 제외한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도덕적인 부담을 느끼게 된다는 뜻이죠. 성공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깔보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깔보는 엘리트 집단에 분노를 느낍니다. 성공이 자신의 미덕으로 이어지는 사회,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결과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샌댈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기회의 평등, 공정한 과정이 모두 충족되더라도 능력주의 사회는 정의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당신이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라는 말은 전혀 정의로운 사회를 이야기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는 실패한 사람을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게 되는 사회가 됩니다.


이 책은 미국과 유럽 사회를 보고 쓴 책이지만 우리나라에 비춰봤을 때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미국 못지않게 능력과 성공에 대한 신앙적인 믿음이 강한 사회입니다.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의 한 단면이 학력주의라고 이 책에서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 과정에서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져 있고, 입시 절차는 공정하게 이뤄질 테니 당신이 노력해서 공부만 한다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서 많은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기회나 공정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드러나는 문제도 종종 불거지지만 이러한 문제를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학력주의가 말하는 바는 변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엘리트가 되라는 것이죠. 하지만 성공이 학력, 부, 신체 능력 등의 몇 가지 기준에 따라 평가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이 과실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 엘리트입니다.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은 실패의 책임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한 자리는 점점 더 좁아져서 거기에 속하게 된 사람들은 자신이 자격 있는 사람이고, 열심히 해서 남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나는 성공했으니 옳다고 믿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깔보게 됩니다. 이러한 경향은 그들이 성공한 그룹에 속하게 되면 자신과 비슷한 기준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더 많아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할 가능성은 늘어나기 때문에 더 강해집니다. 일단 대학 입시에서 성공한 엘리트층은 그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성공을 더욱 미덕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 한편에 성공은 상이고 실패는 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그 선입견은 더욱 강해지는 것이죠. 직접 만나지 못하고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적으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뉴스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접할 때 좋은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경우는 많지 않죠. 이렇게 엘리트층의 선입견도 더욱 강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고방식이 더 공고해지고, 반대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도 자신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엘리트층에 대한 분노는 더욱 커집니다. 사회는 분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수의 엘리트층을 제외하고 남은 수많은 사람들은 능력주의를 배척하게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워낙 묘하고 강한 개념이라 능력주의의 희생자들이 오히려 능력주의를 더욱 신봉하게 만듭니다. 능력주의의 '당신이 노력하면 뭐든 될 수 있다'라는 개념은 그 속에 내포하고 있는 능력주의, 서열의 개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상태에서는 너무나 좋은 말로 들립니다.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은 그 자체로는 정의로운 개념이기에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능력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문제는 능력주의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이라는 조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아무튼 과정이 공정했다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내가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능력주의가 실패의 책임을 나에게 돌릴 때 그저 수긍하게 됩니다. 내 잘못이라고 여기게 되고 나도 더 노력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문제는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을 지키지 못한 사례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샌댈이 지적하는 바는 그게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다면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기회를 평등하게 갈고닦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승자와 패자로 사회가 분열되고 갈등이 발생하고, 승자는 멸시하고 패자는 분노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공을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능력주의의 비판은 성공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거부감을 줍니다. 그러나 이 책은 성공 자체를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는 성공해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성공 자체를 부정한다면 공산주의 사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샌댈이 지적하는 점은 성공의 존재가 아니라 성공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지점입니다. 물질적인 가치와 도덕적인 가치는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장자본주의가 거대해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공해서 많은 돈을 버는 것과 도덕적으로 옳은 것을 혼동하게 되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좋은 사람, 실패한 사람은 뭔가 잘못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샌댈은 지 연결고리를 지적합니다. 성공한 사람이 자신이 얻은 것을 오로지 자신의 몫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실패한 사람도 자신의 결과를 오로지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공은 미덕, 실패는 잘못이나 죄로 치부됩니다. 그래서 나의 성공에 공동체의 기여가 있다는 생각을 빼놓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물론 이 외에도 샌댈이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더 많습니다. 능력주의가 본질적으로 가진 한계는 성공과 실패를 승자와 패자의 논리로 만든다는 것뿐 아니라 누가 성공을 할 것인지 조차도 임의적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사회가 인정하는 가치는 시시각각 변하기에 내가 성공한 것은 내가 살아가는 시기에 내가 가진 장점이 가치가 되었다는 임의적 요소도 존재합니다. 하나하나 모두 짚어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샌댈이 이야기하는 능력주의의 부정에 대해 처음 보자마자 느껴지는 왠지 모를 거부감을 이겨내고 바라본다면 분명히 생각해볼 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능력은 존재하되 성공과 실패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로 이어지지는 않도록 만들어갈 수도 있겠죠. 또 성공한 사람도 자신의 성공이 임의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또 다른 임의적인 요소에 의해 실패한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마음가짐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문제는 성공의 존재 여부가 아닙니다. 성공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에 대한 이야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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