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혁 Sep 13. 2021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아직은 작별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그들의 이야기

작별은 마지막에 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를 알게 된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만남이 시작이라면, 작별은 끝이다.

한강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작별, 그 끝을 거부하고 있다.

작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작별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는, 아니 그 소설 속의 화자는 분명히 '않는다'는 말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아직 그들을 보낼 수가 없다는 말을.


한강이라는 작가는 그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통해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탔다. 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당시에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쏟아지는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 '어떤 글을 썼길래 그렇게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걸까?', 그 생각에 이끌려 한강의 책을 읽게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은데...?

한강은 마냥 재미있는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책은 오히려 무겁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잔혹한 사실을 아주 낮게, 또 담담한 어조로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채식주의자'가 그렇고, '소년이 온다'가 그렇고, 또 이번 책 '작별하지 않는다'가 그렇다. 한강은 우리가 잊으면 안 되지만 잊어가고 있는 어떤 사람들,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화자는 소설가다. 몇 해 전에 1980년 5월 18일 즈음 광주에서 일어났던 그 잔혹한 사건을 써낸 작가, 마치 한강 자신인 듯한 그 작가를 화자로 두고 있다. 그의 이름은 경하이다. 경하는 그 해 광주에서 벌어졌던 일을 소설로 집필했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코 그들의 삶과 충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을 쓴다는 것은 그들이 겪었던 일을 느낀다는 것이고,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잊히게 되었는지을 알아가는 일이다. 그렇게 글을 쓴 뒤 경하는 다친 마음을 쉽게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무기력하던 경하에게 친구 인선의 소식이 들려온다. 경하가 자신의 꿈에서 본 장면을 소재로 삼아 같이 영화를 찍자고 제안했던 친구다. 경하는 자신의 제안 이후에 그 꿈의 무게에 눌려 포기했었지만 혼자서 묵묵히 그 영화를 준비하던 중 인선은 다치게 된 것이다. 다친 인선의 부탁으로 인선의 작업실에 돌아가게 된 경하는 인선이 왜 그렇게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알아가게 된다. 처음 제안한 경하 자신은 그 무게에 눌렸다. 어설픈 마음으로 시도했다가는 전에 소설을 쓰고 나서 마음이 다친 것처럼 또 마음에 어떤 상처가 생길지 모른다. 경하는 그렇게 포기했었다. 하지만 인선은 포기하지 않았다. 경하가 없어도 혼자서라도 이어나갔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고 또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선은 그래야만 했다. 왜냐하면 인선이 그 마을,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나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선은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4.3 사건을 잊을 수 없었다. 제주도에서 쭉 살아왔던 그의 가족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그들에게는 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를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선은 묵묵히 준비했던 것이다. 그리고 경하는 인선의 자취를 따라갔다. 그들은 작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작별하지 않았다.


작별은 단절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의 끝에 있는 것이 작별이다. 그러니 작별도 과정이다. 그들이 왜 떠나가게 되었는지 충분히 알고, 그들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리고 어떤 감정이었을지를 알아야 우리는 작별할 수 있다. 그들을 끊어내고, 잊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그래야 한다. 그러나 1948년 4월 8일, 그때의 전후로 제주도에서 영문 모를 죽음을 당하고, 살기 위해 도망치고 숨어야 했던 그들의 삶에 대해 아직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선은, 경하는, 그리고 우리는 작별할 수 없다. 그러니 아직은 작별하지 않는다.


작가 한강은 이 책이 지극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갈 때 만남이 시작이고 작별이 끝이라면 그 모든 과정의 이름은 사랑이다.

그러니 작별할 수 없는, 작별하지 않는 그들에게 만남으로 시작되었던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이전글 공정하다는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