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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Aug 28. 2021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여러분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요즘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정도, 사랑도 사려는 장면을 보게 되죠. 그러면서도 결국 인간관계까지는 돈으로 살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돈으로 산 관계는 진심 어린 관계가 될 수 없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그만큼 요즘 우리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증거이겠죠. 인간관계가 완전히 돈으로 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맛있는 음식 사주고 좋은 선물 사 주는 사람과는 금방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 많은 것들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요즘 세상입니다.

여기서 질문을 조금 바꿔서, 그렇다면 돈으로 살 수 없어야 하는 것이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앞의 질문은 결과를 묻는 것이고, 뒤의 질문은 우리의 생각을 묻는 질문입니다. 시장은 자연이 아닌,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묻는 질문은 중요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타인의 생명을 살 수 있다면 내가 돈을 주고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인데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죠. 타인의 생명을 살 수 없다면, 타인의 생명보험은 어떨까요. 위중한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사람은 예전에 생명보험에 가입했습니다. 보험료도 꼬박꼬박 내고 있었죠. 그런데 자신이 위중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허망해졌습니다. 죽고 난 뒤에 받는 보험금보다는 당장 남은 시간을 아낌없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보험 증권을 타인에게 팔게 됩니다. 구매자는 남은 기간 동안 보험료만 내면 환자가 사망한 뒤 그 보험금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대신, 보험 증권을 사면서 환자에게 목돈을 줍니다. 목돈을 많이 주더라도 구매자는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망보험금이 1억이라고 하면 5000만 원을 주더라도 환자가 금방 사망한다면 짧은 기간에 100%의 수익률을 얻게 됩니다. 판매자는 남은 시간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게 되고 구매자는 높은 수익률을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서로 좋은 거래를 한 것이죠. 이러한 거래는 어떤가요, 생명 자체는 아니지만 생명과 관련된 것을 거래합니다. 또 거래 당사자 모두가 원하는 거래입니다. 왠지 이러한 거래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하죠. 다시 사례를 조금 바꿔서 내가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 돈을 거는 도박을 생각해봅시다. 나는 A라는 사람이 곧 사망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A가 올해 사망한다는 것에 1억을 걸고 또 다른 사람은 A가 올해 사망하지 않는다는 것에 1억을 걸고 내기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삼자인 A에게 어떤 영향도 없고, 거래 당사자인 나와 상대방은 자유롭게 동의한 거래입니다. 이러한 거래는 어떤가요. 타인의 생명을 가지고 도박을 한다니 뭔가 이번에는 안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도덕과 정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어떤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 거래를 해도 될지, 막아야 할지를 결정한 것이죠. 하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기준에 따라 판단했는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존엄하기 때문에 거래를 하면 안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다른 거래는 그저 죽이지 않았으니 괜찮았던 것인지 모호합니다. 이 문제를 지나가더라도 다른 질문에서는 또 어떤 근거를 가지고 판단해야 할지 애매합니다. 공항의 VIP이거나 추가 요금을 내는 경우 입국 수속의 긴 줄을 지나쳐 먼저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어떨까요, 자본주의 시대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물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놀이동산에서 추가 요금을 내면 긴 줄의 앞으로 보내주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겠죠. 안된다는 생각도 들고, 안될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에는 버스 전용차로를 자가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한다고 생각해봅시다. 국가는 추가 재원을 확보해서 복지에 사용할 수 있고,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막힌 도로에서 기다릴 필요 없이 버스 전용차로를 사용해서 시간을 아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없는 정책이지만 미국에서는 비슷한 예로 카풀 차로를 추가 요금을 내고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뭔가 버스전용차로를 부자들만 이용하게 된다면 화가 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이동산의 슈퍼패스와 공항의 VIP 입국심사도 결국 돈을 내고 새치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판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기준이 점점 모호해집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지금 이야기한 것 이외에도 돈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인센티브, 대학의 기여 입학, 전쟁 용병, 스포츠 구장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 모든 곳에 침투하고 있는 광고까지 돈으로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책에서 마이클 샌댈이 던지는 질문을 하나하나 같이 고민하다 보면 우리는 과연 어떤 기준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그려집니다. 한 가지 기준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거래 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지, 그 쟁점은 분명해집니다. 마이클 샌댈은 그 쟁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결국 우리가 시장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막고 시장의 영역을 적절히 규정하기 위해서는 '좋은 삶'에 대한 논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좋은 삶에 대한 논의는 가치에 대한 논의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거래하고자 하는 그 재화에 부여하는 가치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명의 가치는 돈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생명에는 우리가 오랜 세월 합의를 거쳐 이룩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버스전용차로에는 우리가 함께 만든 사회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공동체 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스포츠 경기장에는 그 고장의 팬들이 부여하는 정신적인 가치가 있고 대학에는 학문의 발전과 학생의 인격 수양을 이룬다는 가치가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는 돈으로 거래하는 순간 훼손됩니다. 돈으로 거래할 수 있다면 생명의 존엄성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겠죠. 대학이 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우리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감정은 지금의 감정과 다를 것입니다. 그저 고급 스포츠카나 고급 요트를 샀을 때의 기분과 같겠죠. 샌델은 이렇게 돈이 아닌 다른 가치로 평가되는 재화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두면 안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주장은 이 한 마디로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시장은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자유로운 거래로 서로의 효익을 늘릴 뿐 재화 자체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포도를 샀다고 해서 포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죠, 포도는 그저 포도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재화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고, 거래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재화의 가치를 깎아내립니다. 시장은 그렇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모든 상황은 그때그때 평가됩니다. 재화에 부여하는 가치라는 것이 모두에게 동일할 수는 없죠, 누군가는 해당 재화를 정신적인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샌댈이 하는 이야기는 더 의미 있습니다. 우리가 그 가치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죠. 논의하지 않고 그냥 둔다면 시장은 점점 더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서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모든 것의 가치를 훼손하고 거래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우리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들의 가치는 어떠한가요, 그리고 그 가치는 거래하더라도 잃지 않는 것인가요 혹은 잃게 되는 것인가요. 이제는 우리가 시장에 대답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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