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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Jul 03. 2021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는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입니다. 18세기 프랑스는 전제 군주 정권의 폐해가 극에 달하던 시기였으며 첫 번째 시민혁명인 프랑스혁명이 이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져 있듯 프랑스혁명의 사상에 루소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모든 철학이 그렇듯 루소의 철학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지만 특히 루소의 경우 제 생각이지만 그 시대적 배경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중 하나인 인간 불평등 기원론 또한 제목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어떻게 기원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논의를 통해 루소가 말하고 싶었던 바는 불평등의 기원과 그것이 고착화되는 과정이 자연적이 아니라 인위적이었고, 따라서 우리 시민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루소의 책은 논리적으로 그의 주장을 서술하고 있지만 철학을 담고 있는 책인 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에 대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핵심적인 내용만을 간단히 정리해보려 합니다.


우선 루소는 인간 불평등이 언제 시작되었는가를 밝히려 합니다. 그 말이 함축하고 있는 바는 인간은 태초에, 루소는 이를 자연 상태라고 부릅니다만, 불평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루소는 우선 진화적 관점에서 언제 인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모습을 갖췄는지는 차치하고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춘 초기 인류를 떠올립니다. 이때 인류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존과 후손을 보존하는 것이며 본능적으로 나와 같은 종족인 타인이 고통을 받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개인이 자유롭게 수렵채집을 통해 살아가며 그 과정에서 다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악한 행동, 범죄와는 거리가 멀지요. 누군가를 단순히 해하기 위해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누군가를 위해 행동하지도 않지요. 이 점에서 루소는 사회에 대한 논의를 펼치는 다른 사상가들과 차이를 드러냅니다. 사회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수도 있는데요, 루소 이외에도 로크, 홉스도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논리를 비교한 것을 배우게 되는데 로크는 성선설, 홉스는 성악설을 이야기했다고 하지요. 학창 시절에 이 비교를 들었을 때는 왜 사회 이론을 주장한 학자들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의 도덕관념이 함께 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로크와 홉스의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루소의 경우 그가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선하지도,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다고 이야기한 것이 불평등의 기원을 쫓아가는 그의 논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리 언급한 것과 같이 이 불평등에 대한 논리가 그의 사회 계약설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자, 다시 돌아오면 루소는 그렇게 자연 상태의 인간에 대해서 선도, 악도 모르는 상태라고 이야기합니다. 성무선악설이라고 부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초기 인류, 자연 상태의 그들은 불평등하지 않습니다. 독립적으로 살아가며 누군가를 복종시켜 자신의 일을 하게 만들려 하지 않기 때문에 계급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인은 그저 스처지나가는 존재일 뿐이지요. 이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소유한다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고 하룻밤 만나는 것이 전부입니다. 타인에게 감정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없습니다. 그랬던 자연 상태의 인간이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교류하기 시작합니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자주 만나게 되고 함께 사냥을 하기도 하지요. 이렇게 나와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다른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면서 그들에게 자신과 상대방을 비교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서로 간의 다름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름을 이해하기 시작한 그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함께 다니는 무리가 생겨나면서 가족이 생겨나고 자신들의 오두막에 '울타리'를 치게 되는 것이죠. 즉, 내 것과 다른 사람의 것을 구분하게 됩니다. 용어를 바꿔 표현하자면 '사유재산'개념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이 '사유재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하루만 살아가던 수렵채집인들에게 비교의 개념이 발생하고,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겨나면서 타인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게 됩니다. 또 자신의 것을 지키고 타인의 것을 뺏고 싶은 마음도 생겨나지요. 가난한 누군가는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의 것을 뺏지 않으면 자신의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게 됩니다. 이렇게 사유재산이 발생하면서 더 많이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더 많이 가지게 되는 사람들은 힘이 강했거나 똑똑했거나, 그 외에 어떤 기회를 통해 많이 가지게 되었지요. 그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 가진 것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가진 것의 차이를 만들어 낸 그 이유라는 것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하거나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 무너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오늘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의 것이 모두 지켜지는 것이 아니지요. 누군가 나보다 힘이 강한 사람이 나타나거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내 것을 뺏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당시의 많이 가진 자들, 기득권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자신의 것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그만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알아서 자신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바로 사회 계약입니다. 사회 계약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의 기본적인 권리, 사유재산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 나아가 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내가 가진 것은 자연스럽게 지켜져야 하는 것이 되며 내 것을 뺏으려고 하는 자들은 사회와 국가가 알아서 막아준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자연 상태에서 출발하여 불평등의 발생, 그리고 사회의 출현에 대한 루소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루소는 여기에서 당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게 됩니다. 전제 정권이라는 것은 이렇게 시작된 사회의 불평등이 가장 극단적인 상태로 심화된 결과하는 것이지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얻고 다른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게 되는 과정이 점점 더 강화되어 전제 정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의 발생에서 루소가 주장했던 것이 무엇이었냐 하면 사회는 계약에 의해 성립했다는 것입니다. 그 계약이 가진 자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라 할지라도 우선은 계약이지요. 계약이라는 것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가진 자가 주도했더라도 못 가진 자 또한 계약의 한 부분입니다. 즉, 우리는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계약 상태가 너무나 불평등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의 계약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주장으로 루소는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루소는 이렇게 자연 상태, 불평등의 기원과 사회 계약에 대한 철학을 제시합니다. 앞에서 루소의 철학을 이야기할 때 한 가지 빼놓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루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평등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자연적인 불평등, 또 하나는 사회적인 불평등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사유재산에서 발생하게 된 불평등은 후자를 이야기합니다. 즉 초기에는 없었지만 인류가 삶을 살아가며 발생하게 된 불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첫 번째 불평등이었던 자연적 불평등은 우리가 가진 신체적, 혹은 지적 불평등을 이야기합니다. 선천적으로 태어나면서 가지게 되는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 두 가지 불평등에 대한 구분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등과 공정에 대한 이슈는 오늘날 아주 중요한 논의이며 첨예하게 대립하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평등하고 공정한 것이냐에 대해 세부적인 면에서 부딪히게 됩니다. 단순히 대학 입시에서 모든 사람이 모든 학교에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평등한 것인지, 혹은 학업이나 소위 스펙이라는 것을 쌓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이에 대한 지원을 조금 더 제공하는 것이 평등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견의 여지가 있습니다. 또한 요즘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는 남녀평등에 대한 문제도 있지요. 사회적으로 좋은 환경에 놓여 있는 남성들과 공정한 경쟁을 위해 여성에게 일정한 자리를 지켜줄 수 있도록 하는 할당제에 대한 논의도 있으며 반대로 평등을 원한다면 여성들도 징집제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물론 어떤 것이 우리 사회에서 공정함과 평등함의 기준이 될지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다만 그 논의의 과정에서 단순히 나의 이익과 손실, 그리고 자로 잰 듯한 평등함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루소의 불평등에 대한 구분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경제, 사회, 성별 등 모든 면에서 나와 완전히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자연적 불평등은 서로 보완해줘야 하는 다름입니다. 나와 상대가 자연적으로 다를 때 내가 상대방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면 상대가 나와 같은 것을 누릴 수 없도록 잘라내는 것보다는 내가 상대방을 도와 나와 비슷한 것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공정함입니다. 반대로 루소가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이 만들어 낸 불평등, 즉 사회적 불평등은 해결해야 하는 불평등이지요. 진정한 불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입니다. 가끔 논의가 심화될 때 우리는 이 두 가지를 헷갈려 자연적 불평등을 가져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해소 논의를 흐립니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싶다면 자연적 불평등도 똑같이 해소하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주장은 논점을 흐릴 뿐입니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싫은 기득권 층이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것이지요. 그들의 논리에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 루소의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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