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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Oct 16. 2021

제프리 삭스, '지리 기술 제도'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고, 어디로 흘러가는가

'지리, 기술, 제도'는 인류가 처음 지구 상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총균쇠나 사피엔스와 같은 책과 같은 느낌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그리는 만큼 특정 민족이나 지역의 시각에서만 역사를 바라보지 않고, 모든 인류의 관점에서 역사를 이끌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되는 것을 키워드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책의 제목을 통해 본다면 저자가 잡은 인류 역사의 키워드는 지리, 기술 그리고 제도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가장 중요한 인류 역사의 키워드, 혹은 방향은 '세계화'인 듯합니다. 아마 저자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부제 '7번의 세계화로 본 인류의 미래'를 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책의 목차는 7번의 세계화 각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리, 기술, 제도의 역할은 이 7번의 세계화를 이끌거나, 혹은 세계화가 된 대상이 바로 그것들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세계는 가까운 지역 위주의 지리적 세계화를 거치고, 기마 기술이나 항해 기술 등을 활용해서 가까운 지리를 넘어선 세계화를 이루고, 이러한 과정에서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던 제도가 널리 퍼지게 됩니다. 문자, 화폐, 종교, 정치 체계 등이 제도의 세계화의 예시가 될 수 있겠죠. 세계화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조금 더 멀리 있는 나라와의 교류가 이어지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산업화를 통해 더 급격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발달한 운송 수단, 증기기관이나 증기선은 더 멀리 있는 지역을 연결했습니다. 산업화가 빨랐던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는 다른 나라보다 더 강한 힘을 얻게 되었고, 이 힘을 바탕으로 전 세계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식민지가 만들어졌고, 식민지에서 자원, 인력을 추가로 공급해 더 많은 부를 창출하게 되었죠. 이 과정 또한 세계화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서로 영향을 미치기 어려웠던 나라들이 영향을 미치고, 자원과 인력이 영향을 주고받게 된 것이죠. 물론, 당시의 세계화 방향은 유럽의 특정 국가들이 부를 얻는 한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초기 산업화 과정을 거치고 세계대전 이후에 유럽의 식민지들이 독립하기 시작하면서 세계화는 또 한 번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선진국 위주로 얻었던 세계화의 과실을 이제 그 외의 국가들도 누리게 된 것이죠. 선진국의 기술과 제도를 모방해서 아시아의 신흥국이나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 현재의 인류는 또 한 번의 세계화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바로 데이터 기술을 통한 세계화입니다. 과거에는 지리적으로 먼 나라가 서로 연결될 수 있다 하더라도 운송 수단을 통해서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 수준이 급격히 달라집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전송한 데이터가 우리가 있는 곳까지 도착하는데 몇 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연결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구 상에 어느 날 나타나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던 인류는 각자 자신이 생활하던 영역에서 더 넓은 영역으로 영향력을 넓혀 갔고, 지리적으로, 기술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반대로 지리나 기술, 제도가 그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인류는 과거 어느 때와 비교해도 수준이 다른 초연결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앞으로 인류 역사의 방향은 어디로 가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는 점점 더 연결되는 방향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면 앞으로도 이러한 변화가 이어질까요. 긴 시간 동안 흘러왔던 관성에 의존한다면 세계화의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정보화시대는 인류가 연결되는 것의 궁극적인 수준을 보여주게 될 것 같습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결되는 것뿐만 아니라 드론 기술의 추가적인 발전을 통해 개인용 항공 운송 수단이 상용화된다면 물리적인 연결 또한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선형적인 사고관이 언제나 옳지는 않듯, 앞으로의 인류 역사가 단절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 또한 배재할 수 없습니다. 기술은 여전히 인류를 연결하려 하겠지만, 인류가 가진 나와 타인,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는 사고관이 인류의 연결에 한계를 부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름을 아주 예민하게 인식하는 인류는 같은 종이더라도 약간의 차이를 통해 서로를 구분합니다. 최초에 사피엔스가 비슷한 종이었던 네안데르탈인 등의 여타 종을 밀어내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와 전혀 다르게 생긴 종들은 살아남았지만 오히려 인류와 가까운 종은 사라졌습니다.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다른 인간 종을 제거한 것이 우리 종, 사피엔스라고 이야기합니다. 굳이 이러한 옛날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요즘 우리는 조금의 차이만 가지고도 엄청난 갈등을 일으키는 인간의 특성을 볼 수 있습니다. 지역, 종교, 성별, 정치 성향에서의 차이는 서로를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만들기도 하죠. 오히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보다 같은 지역, 바로 옆에 살고 있는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을 더 배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 포퓰리즘은 이렇게 미세한 차이를 통해 서로를 구분하고 다투는 인간의 성향을 더 부추기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인류 역사가 더 강한 세계화를 향해 나아갈지, 혹은 현재 수준에서 멈추거나 과거의 단절된 상태로 돌아가게 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측하기 어려운 인류의 미래 역사와 달리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즈음에서 저자도 이 부분을 상당히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로 인류 앞에 놓인 과제가 더 이상 개인이나 특정한 집단이 혼자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문제인 환경오염은 더 이상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나의 국가가 개발을 위해 오염물질을 배출하게 되면 다른 국가도 질세라 개발을 통해 오염물질을 배출합니다. 자율적으로 두게 되면 오염이 가속화되는 방향으로 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규제는 특정 국가나 지역에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 국가가 일률적인 기준을 정해서 모든 국가가 따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어떤 국가는 과거에 발전을 이루면서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한 전력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외의 국가는 이제 막 발전을 이루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환경오염 문제는 모두가 모여서 의논해야 합니다. 우리와 그들의 논리로 생각하지 않고 모두 하나라는 생각 하에, 우리 모두의 터전인 지구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고민해야 합니다. 개인이나 몇몇 국가적인 관점으로는 최선의 방안을 도출할 수 없습니다. 환경오염뿐 아니라 핵무기의 확산이나 불평등 문제 또한 인류적 단위에서의 고민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더 이상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개별적이지 않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했던 인류의 역사는 연결의 역사, 세계화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의 끝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는 더 연결되고 하나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혹은 반대로 단절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이야기합니다. '연결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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